최근 중국이 우리의 역사인 고구려(高句麗) 사(史)를 자국의 역사인양 왜곡하는 억지 정책을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더욱이 일부 학계에 의해 저질러진 우연한 착오가 아니라, 정부에 의해 계획적으로 주도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심각한 국가관계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간 중국에서는 지도자의 인식과 국민의 역사의식 그리고 문헌을 통해 고구려는 한민족의 과거 역사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고, 아무런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었던 사실로 미루어볼 때 어떤 의도인지 더욱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다.
-고구려와 중화사상
중국의 주장은 고구려는 현재 자국의 영토인 만주에 위치한 지방 정권이었기 때문에 주속(主屬)관계뿐만 아니라,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것이 중국역사권에 속했다는 것. 그들의 터무니없는 억지주장이 최근에 제기되고 있는 정확한 이유를 중국 당국만이 알고있을 것이다. 다만, 국제관계에서 대외관계는 철저한 국가이익의 관점에서 시행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고구려사 왜곡이 장차 일어날 수 있는 중요한 국가이익의 한 부분이 될 것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외교정책임은 분명하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동양정치 무대의 중심에 위치하면서 북쪽의 세력을 적(狄), 남쪽을 만(蠻), 동쪽을 이(夷), 서쪽을 융(戎)이라 하여, 이 모두를 오랑캐, 야만 민족으로 인식하고 중국민족을 중앙으로 한 국가관계를 설정했다. 이것이 ‘중화사상(中華思想)’이다.
또 수천년간 중앙에 군림하면서, 주변 국가와의 관계를 ‘패권정치’와 ‘조공정치(朝貢政治)’로 일관했고, 주속의 관계로 인식했다. 그래서 수천 년 동안 주변과의 마찰을 일으키고, 국가세력이 왕성했을 때 침략전쟁을 서슴지 않았다. 이 역사적 사실을 감안해 볼 때, 현재 국위상승의 시기에 있는 중국이 그들의 중화사상에서 오는 패권주의적 외교정책의 하나로 고구려사를 왜곡, 한반도와의 관계를 유리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은 21세기의 국제관계가 다자간의 동맹관계로 상호균형을 이루려는 경향과 여러 가지 요소에 의해 매우 빠르게 세계화·다양화하고 있다는 현실에 비추어 본다면, 다분히 고전적인 주장 같아서 설득력이 미약하다.
-소수민족문제와 중국의 합리화
중국은 냉전이 종식되기 전부터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도입, 개혁 · 개방정책을 수행하여 현재 괄목할만한 수준에 와 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그들이 처하게 된 취약한 부분들도 노정(露呈)되고 있기도 하다.
그 중 하나가 그들이 항상 고민하고 있는 주변 소수민족 정책이다. 그들의 개혁개방정책 수행은 지역간 심각한 불균형 현상을 초래했다. 이 같은 현상을 없애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광활한 지역을 대상으로 한 추진에 한계가 있고 중심과 주변부의 격차 해소는 지역적으로 소수민족문제와 직결돼 복잡한 갈등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중국은 서쪽의 인도, 남쪽의 인도차이나 반도, 북쪽의 몽고 및 러시아, 동쪽의 한반도, 해양 쪽으로 턱 앞의 대만, 일본과 미국 등 무시할 수 없는 세력과 접하면서 국제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국제관계에서 국가이익에 상충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소지가 있음은 물론, 실제 발생하고 있기도 하다.
중국은 이처럼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로 인한 국가손실을 사전에 예방하고, 소수민족으로 현재 만주지역에 조용히 살고 있는 한민족들을 유지하고 합리화시키려는 국가정책으로서의 고구려사 왜곡은 그들의 절박한 현실일 수 있다.
최근 일어나는 탈북 한민족의 동향, 중국내 한민족의 한국 취업열풍, 한국기업의 중국진출, 한류 문화열풍 등의 영향력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중국은 강력한 힘으로 장차 가능성이 보이는 미래문제에 대비하려는 의도에서 고구려사 왜곡을 선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같은 예측을 토대로 우리 정부는 차분하고 조속한 대응을 해야 한다. 다만, 졸속한 대응이 중국과의 밀접하고도 상호 우호적인 관계를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
현상을 유지하면서 당면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 어려움은 있지만, 이 문제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국가간의 감정적 대립을 피하면서, 외교적으로 국제여론을 동원해 정치적 · 학술적으로 풀어나가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
정 봉 화(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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