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을 탈레반이 지배하던 시절은 문화파괴의 암흑시대였다. 세계 最古 最大인 바미안 석불을 로켓포로 쏘아 산산조각 부쉈고, 카불국립박물관에 있던 미술품 2천7백여점을 불태워버렸다. 사람과 동물의 형상을 조각이나 그림으로 나타내거나 사진으로 찍어두는 것은 우상숭배라 해서 그림, 조각, 영화필름 등을 샅샅이 찾아내 없애버렸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목숨 걸고 미술품과 영화테이프를 지켜낸 사람들이 있다. 국영영화사 직원 8명은 1천여개의 영화필름을 땅속에 파묻어 살려냈다. 카불시민들은 요즘 그 영화들을 보려고 연일 영화관을 채운다. 카불국립박물관 현관에 붙은 “문화가 살아 있어야 나라가 존재한다”란 글귀가 필름들을 살린 힘이었다.
내과의사이자 화가인 ‘무하마드 아세피’는 극적으로 그림들을 살려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카불시내 풍경, 들판을 노니는 가축들과 목동들을 그린 유화들은 탈레반시절엔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었다. 종교경찰들이 이런 미술품을 찾아내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을 때 ‘무하마드 아세피’는 교묘히 이런 그림들을 살렸다.
그는 그 그림들에 덧칠을 했다. 수채화물감으로 인적 없는 거리풍경, 넓은 들판과 산, 사람과 동물이 전혀 없는 풍경화로 개조한 것이다. 종교경찰들은 그 그림들을 검렬한 후 ‘문제 없는’ 그림으로 판단, 통과시켰다. 탈레반이 물러간 후 아세피씨는 이 그림들을 꺼내 물묻은 스펀지로 덧칠을 닦아내 본래모습의 그림을 회복했다.
문화파괴적 검렬은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다. 70년대말에서 80년대 초반까지 모든 출판물은 검렬을 받았다. 그 때 고우영씨의 만화 ‘삼국지’ 10권은 만신창이가 됐다. ‘혐오감을 조장하고, 폭력과 선정성이 짙은 장면’을 다 잘라버렸다. 그의 장기인 ‘즐거운 에로티시즘과 기발한 상징성’은 다 처형당했다.
그는 최근 ‘죽은 부분’들을 부활시켰다. “삼국지라는 아이를 낳아 불구로 만들고, 24세청년이 되기까지 앵벌이를 시켰는데, 많은 전문의를 동원해 대수술을 잘 마친 기분”이란 그의 ‘복원소감’에 한이 스렸다. 문화가 살아야 나라가 존재하니, 문화 예술에 대한 이해가 없는 대통령을 뽑아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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