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천자교인(貧賤者驕人)’이라 했다. 가진 것이 없으면 잃을 것도 없으니 비천한 사람이 오히려 교만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전국시대 전자방(田子方)이라는 빈털털이 현자가 어느날 길에서 높은 벼슬아치를 만났다. 관리가 수레서 내려 공손히 인사를 했는데도 전자방은 뻣뻣이 서서 인사를 받았다. 화가 치민 관리는 “도대체 부귀한 사람이 교만할 수 있는 겁니까. 빈천한 사람이 교만할수 있는 겁니까” 물었다. “빈천한 사람은 교만할수 있지요. 제후가 교만하면 나라를 잃고, 대부가 교만하면 지역을 잃습니다. 그러나 빈천한 사람이야 마음이 틀어지면 다른 곳으로 이사가면 그만입니다. 그러니 빈천한 사람이 교만할수 있지요” 전자방의 대답이었다.
‘富’는 돈이 많다는 뜻이며, ‘貴’는 벼슬이 높아 권세가 크다는 뜻. 반대로 ‘貧’은 돈이 없는 것이며 ‘賤’은 지위가 낮다는 뜻. 부귀해도 오만하지 않고 빈궁해도 비겁하지 않는 것이 진실한 인격조건으로 여겼다. 의롭지 못한 행위로 얻은 부귀는 금새 사라지는 뜬구름이라 하여 ‘부귀여부운(富貴如浮雲)’을 경구로 삼았다.
올해는 부귀영화와 빈천영락(零落)이 얼마나 덧없는가를 보여준 한해였다. 특히 대통령의 최측근들인 권력실세들의 영락이 두드러졌다. DJ정권의 代통령으로 불렸던 박지원왕수석이 대북불법송금과 현대비자금 150억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12년 중형을 선고받고 철창신세가 됐다. 그는 구속되면서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는 말로 권력무상을 절규했다. 그리고 1심최후진술에서 “슬픔으로 울고있는 아내와 딸에게 돌아가게 해달라”며 눈물짓기도 했다.
동교동계의 맏형으로 삭스핀요리를 즐겼던 권노갑 실세도 뇌물혐의로 영어의 몸이 되어 있다. 현정권 실세들의 영락도 충격적이다. 노대통령의 핵심실세인 ‘左희정’은 박정권시절 이후락의 ‘떡고물론’을 연상시키는 ‘진흙탕론’을 펴면서 구속되고, ‘右광재’는 거듭된 거짓말로 국민을 한없이 실망시킨 끝에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
눈을 밖으로 돌리면 초라하기 그지 없는 몰골로 미군에 붙잡힌 후세인의 영락은 부도덕한 영화의 끝이 어떤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2003년은 떨어질 ‘落’과 함께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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