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운 개 콧등 아물 날 없다는 속담은 ‘레온 트로츠키’에 꼭 맞다. 갖은 풍상 다 겪으며 살다가 참혹한 최후를 맞은 혁명가였다. 19세기 말 러시아 남부 부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대학시절 마르크스운동을 하다가 시베리아로 유배당했고, 4년후 탈출을 했으며, 당시의 실권자 레닌과 맞부딪히다가 미국으로 망명을 떠나야 했다.
레닌이 죽자 당 노선을 놓고 스탈린과 또 박터지게 한 판 붙었다. 스탈린은 ‘러시아만의 공산주의’를 주장했는데, 트로츠키는 ‘세계 공산주의·영구공산주의’로 가자고 빡빡 우겼다. 그러나 트로츠키에게는 지원군이 없었다. 혼자 잘났고, 너무 오만했고, 투쟁의 열매를 독차지했으니, 친구들은 하나 둘 등을 돌렸다.
1927년 집권자 스탈린은 그를 공산당에서 제명하고 외국으로 추방해버렸다. 터키, 프랑스, 노르웨이 등지를 찬밥 얻어먹으며 방랑하다가 간신히 멕시코에 정착하는가 했는데, 거기가 무덤이 됐다. 스탈린이 보낸 자객에 의해 그는 처참한 모습으로 암살을 당했다. 등산용 지팡이 피켈에 머리를 수없이 찍혔다. 죽은 후에도 천대가 자심했다. 교과서나 논문에서 그의 이름은 지워지고, 러시아혁명기에 찍은 사진들에서 그의 얼굴은 도려내어졌다.
얼마전 야당의 한 의원이 여권의 국정운영행태가 트로츠키의 혁명방식을 답습하고 있다고 했다. “적을 만들어라. 법과 원칙은 空論에 불과하다. 보수언론을 공격하라”는 등이 닮았다 했고, 한 여당 의원은 “트로츠키는 그런 말 한 적 없고, 마키아벨리의 것이다”라고 했다.
15세기 중엽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몰락 귀족가에서 태어난 마키아벨리는 “그의 인생은 죽은 후에 새로 시작됐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오해를 많이 샀다. “옛로마의 영광을 회복하려면, 낡은 도덕과 종교를 버려야한다. 군주는 여우의 지혜와 사자의 힘을 가져야 하며, 信義 두텁고 종교성 많으며 고결한 인격자처럼 보여야 하지만 실제 그럴 필요는 없다”고 한 말이 로마교황청의 비위를 거슬렸다. 그는 갖은 욕을 먹으며, 유폐생활로 답답한 말년을 보냈다.
트로츠키든, 마키아벨리든, 설마하니 우리정부가 ‘콧등 아물 날 없는’ 낡은 혁명가들의 불행을 답습할 리야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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