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흔히 세종류로 나눠진다. 미래를 만드는 리더, 미래가 펼쳐지는 것을 지켜보는 리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리더가 바로 그것. ‘라인강의 기적’으로 戰後 독일을 부흥시킨 아데나워 수상, 경제대국 일본의 기초를 닦을 이케다총리, ‘세계공장 중국’ 의 길을 연 덩샤오핑 등은 미래를 만드는 리더. 아데나워는 친서방정책 시장경제 정당민주주의 유럽통합을 추진, 주권회복과 경제재건에 앞장섰다. 그는 ‘민족주의를 포기한 연합국 총리’라는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미래비전에 대한 자신의 노선을 굳게 밀고나가 경제강국 독일을 만들었다. 그의 정치슬로건은 “실험은 없다(Keine Experiment)”였다.
이케다가 집권할 당시 일본정치상황은 최악이었다. 미·일 안보협정을 싸고 데모대가 국회의사당을 포위하는 등 혼미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는 “정치시대에서 경제의 시대로”란 기치를 내걸고 일본식 경제모델을 완성시켰다. 그는 ‘소득배증’ ‘연성장률9%’를 염불외우듯해 ‘미스터 나인퍼센트’라는 별명을 얻었다.
덩샤오핑은 집권후에도 자신을 혹독하게 박해했던 毛를 포용했다. 역사발전의 한 과정으로 이해하고 그의 장점만을 취했다. 鄧의 실용적 포용정치 덕분에 동요없이 관민이 경제발전에 매진할 수 있었다.
이같은 미래 창조형 리더와는 반대로 아르헨티나의 페론대통령, 필리핀의 마르코스대통령 등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차 몰라 ‘몰락을 자초한 미래망각형 리더’들. 드넓은 초원, 풍부한 지하자원, 20세기 초 세계6위의 부국 아르헨티나는 성장보다 분배에 치중한 페론의 표풀리즘(인기 연합주의)으로 나라를 거덜냈다. 페론주의 실체는 정권장악과 지지를 얻기위해 국부를 이용한 對국민사기극이었다. 60년대 초만해도 비행장을 건설할만큼 앞선 기술을 자랑하던 필리핀도 마르코스의 편가르기와 족벌정치에 의해 빈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금 우리사회가 혼란과 불안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미래보다 과거에 매달리는 대통령의 ‘후진기어 정치’때문이란 비판이 많다. ‘쪽박나라’안 만들려면 대통령이 심기일전 미래를 향한 ‘전진기어 정치’에 시동을 걸어야한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