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3, 5, 7같은 홀수를 좋아하는데, 중국사람들은 6, 8, 9같은 짝수를 좋아한다. 중국에서는 휴대폰 가격이 번호에 따라 다르다. 보통은 한대에 60~500위안 정도 하지만, 여기에 8, 9, 6같은 ‘吉數’가 붙으면 가격이 뛴다. 뛰는 것도 보통으로 뛰는 것이 아니라 ‘폭등’을 하는데, 이런 숫자 한 두개만 들어 있어도 값이 100배로 치솟는다.
중국 북경 번화가에 있는 한 전자제품상사가 휴대폰 하나에 ‘38만위안’이란 정가를 붙였다. 우리돈으로 치면 5,700만원이다. 또 ‘28만위안’짜리 휴대폰도 내놓았다. 도대체 이런 전화기는 왜 그리 값이 높은가. 보석으로 장식된 휴대폰이 아니다. 번호에 ‘8’이 네개 있는 것과 ‘9’가 네개 있기때문이다. 1391-111-8888과 1391-111-9999 두개의 전화번호가 그것이다.
‘八’은 發財(발재·돈벌다) 의 發과 발음이 비슷하니, 8이 많은 전화기를 갖고 있으면 돈을 많이 벌 것이라는 믿고, ‘九’는 久와 발음이 같으니, 영구히 산다, 오래 산다란 뜻이어서 부유한 노인층이 즐겨 구입하고, ‘六’은 順流(순류·매사 일이 잘 풀리다)의 流와 발음이 같으니, 결혼적령기의 처녀 총각들이 좋아하는 전화번호. 오래 살고, 순조로운 것보다 돈 많이 버는 것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그래서 ‘8’을 최고로 친다.
그러나 우리나라 역술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8이 그리 좋은 게 아니다. 子丑寅卯… 하는 ‘12간지’에서 8번째가 未(양)인데, 양은 역마살이 끼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운명이라고. 경찰관 2명을 살해하고, 지향 없이 도망다니던 이학만은 사건발생 8일만인 8월 8일에 붙잡혔다. 택시를 몰고 전국을 떠돌았고, 살인을 저지른 후에는 야산으로, 한강 둔치로, 가정집으로 전전하다가 결국 잡히고 말았다.
‘팔자를 고친다”는 말은 자신의 운명을 바꾼다는 뜻. ‘生年 生月 生日 生時’의 글자 수가 8개인데서 나온 말인데, 그것이 한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믿었던 것. 중국인들은 8자를 많이 가지면 八字가 좋게 바뀐다고 생각하지만, 살인자 이학만은 그 八字가 ‘죽을 운수’로 떨어졌다. 최고의 팔자를 타고나고, 전화번호 8888을 가졌다 해도, 그것 믿고 놀기만 하다가는 ‘이학만의 8’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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