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통해 집권자가 원로들의 충언을 듣지 않아 나라를 망친 예가 많다. 三國 중 백제가 제일 먼저 망한 것도 원로대신들의 충언을 거부한 통치자의 독선때문. 백제 마지막 임금 의자왕은 사치와 향락에 빠져 나라를 망친 군주지만 처음부터 용렬한 군주는 아니었다. 등극하자마자 사형수를 제외한 죄수들을 풀어주고, 자신이 선봉에 서서 신라를 공격, 40여성을 함락시키는 등 집권 초반엔 국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자만과 독선에 빠지기 시작했고, 원로대신들의 간언과 국민여론을 무시했고, 사치와 향락에 정신을 잃었다.
의자왕은 간언하는 충신들을 하나 둘 제거해나갔다. 그 중 대표적 인물이 성충이었다. 그는 의자왕의 황음을 말리다가 옥에 갇혔다. 성충은 옥에서 죽어가면서도 충정을 담은 상소를 올렸다. “적국이 처들어오면, 육로에선 침현(지금의 충남 대덕의 마도령)을, 海路에선 기벌포(금강하구) 연안을 막아야합니다” 그러나 왕과 코드가 맞지 않는 권신들은 성충의 충언을 비웃었다. “성충은 보복하려는 마음으로 잘못된 진언을 한 것입니다” 이 말에 왕도 넘어갔다. 그러나 실제 나당연합군은 침현과 기벌포로 들어왔다.
중국역사에서 나라를 망친 폭군의 원조로 夏나라 걸왕과 殷나라 주왕, 이른바 ‘桀紂(걸주)’를 꼽는다. 주왕 역시 원로의 충언을 듣지 않아 나라를 망쳤다. 주왕도 어릴적에는 남달리 총명했고 맨손으로 맹수를 잡을만큼 용력도 대단했지만, 그는 자신을 과신, 오만과 독선에 빠져 원로 중신들의 충언을 멀리했다.
애첩 달기에 빠져 포악한 정치로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 사람 죽이기를 ‘재미 삼아’ 자행했던 것이다. 중신 比干(비간)은 죽기를 각오하고 그 폭정을 비판했고, 격분한 주왕은 그를 참수하고 심장을 도려내기까지 했다. 그후 주왕은 무왕에 쫓기다가 자살했다. 원로의 충언을 무시한 업보였던 것.
최근 나라를 걱정하는 각계 원로들의 충언이 잇따르고 있으나 청와대를 비롯한 집권 여당은 마이동풍, ‘보수꼴통들의 개혁 방해’ 정도로 여긴다. 격동의 세월과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 농축된 원로들의 ‘지혜의 소리’는 국정에 보약인데…. 권력의 자만과 오만이 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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