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漢말 외척인 왕씨 일족의 세력이 한창일때 왕망이란 세력가가 있었다. 그는 어려서 고아가 돼 궁핍했으나 학문을 열심히 닦아 벼슬길에 올랐다. 직위가 높아질 수록 검소한 생활과 자기를 낮추는 겸손으로 人望을 얻어 왕씨일족의 대표가 되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讖緯說(참위설)을 이용, 한나라의 운명이 다하고 성인이 나설때가 됐다면서, 자기가 그 성인에 해당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애제가 죽고 어린 평제가 왕위에 오르자 왕망은 섭정이 됐지만 왕을 독살하고 왕위를 찬탈, 국호를 新이라 바꾸고 天子가 됐다.
왕망은 집권후 토지와 노예의 私有를 금하고 화폐제도를 바꾸는 등 개혁정책을 폈으나, 자신을 성인이라 착각한 바람에 오만과 독선에 빠져 무리하게 정책을 밀어붙였고, 결국 호족과 민중의 반발에 부딪혀 개혁정치는 실패하고 말았다.
왕망의 즉흥적인 정치로 각종 제도가 밥먹듯이 바뀌고 국민생활을 속박하는 규제 등 政令이 많아지면서 국정혼란이 거듭되자 국민들중에는 지난날 漢나라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에 편승해 漢王室의 부흥을 내세운 민중반란이 잇달았다. 왕망은 “하늘이 짐에게 만민을 다스리는 천자가 될 권력을 주었는데 감히 나를 어찌하겠는가” 큰소리를 쳤으나 결국 반란군에게 잡혀 참수되고 새나라를 세운지 15년만에 ‘新’도 사라졌다.
여론을 무시하고 민심이 離反(이반)된 독선의 정치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天理를 ‘왕망의 비극’이 가르쳐주고 있다.
최광 국회예산정책처장 면직동의안을 여당 단독으로 처리한 열린우리당은 국민여론을 무시하고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비롯한 4개 쟁점법안의 처리를 밀어붙이기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 국민간의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국론분열을 극대화시키는 법안을 개혁이라는 미명아래 어거지로 강행하는 저의가 항간에 떠도는 ‘집권욕’때문이라면 정말 걱정스러운 일이다. 정의채신부님은 4개법안에 대해 “민심의 큰 부분이 외면하니 실패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경고했다. 여권실세인 김근태장관도 “국민지지가 없으면 모든 것이 사상누각이다”고 했다. 집권층은 ‘왕망의 비극’을 거울 삼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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