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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상형 안동대 교수
‘김영란법’의 시행을 두고 찬반 논쟁이 한창이다. 그것의 바른 명칭은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로서, 공직자와 언론사·사립학교·사립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등이 부정한 청탁을 받고도 신고하지 않거나,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1회 100만 원 혹은 연간 300만 원이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형사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12년에 제안, 2013년 8월 정부안이 국회에 제출되었고, 2015년 3월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3월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이를 재가했다. 2016년 5월 9일 시행령이 입법 예고된 이 법안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2016년 9월 28일부터 시행된다.

이 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대한변협, 기자협회, 인터넷언론사, 사립학교·사립유치원 임직원이 각각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으나 2016년 7월 27일 헌법재판소는 ‘김영란법’을 합헌으로 결정했다. 원래 제안된 법안에 ‘이해충돌 방지’ 조항이 있었지만, 국회에서 여야가 막판까지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의결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상조회, 동호인회, 동창회, 향우회, 친목회의 구성원 등의 친분관계를 맺은 사람이 질병이나 재난으로 갑작스러운 위기에 처한 공직자에게는 예외를 적용하고, 공직자 직무와 관련된 행사에서 주최자가 통상적인 범위에서 참석자에게 제공하는 교통·숙박·음식 등은 수수 금지 대상에서 제외하는 신축성을 갖는다.

이렇게 합리적인 고민을 담아낸 ‘김영란법’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 법이 규정하는 돈 액수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법의 규정은 공직자와 언론인, 사립학교 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등이 직무 관계자로부터 3만 원 이상의 식사 대접을 받으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 또 공무원 등이 받을 수 있는 선물 가격은 5만 원으로, 경조사비는 10만 원으로 정했다. 언론인이나 사립학교 교직원의 경우 직급 구분 없이 시간당 100만 원까지는 사례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식사와 선물 등의 접대가 모두 제재 대상이 됨에 따라 기존 관행을 깨는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농수축산업계와 요식업계가 소비 위축에 따른 장기 경기 침체를 우려하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이를 시행하는 구체적 판례가 확립되기까지 상당 기간의 혼란이 불가피하다. 실제로 그 취지에 동감하는 사람들조차도 관계자들이 만나면 그럴듯한 음식을 먹게 되고, 으레 식대가 이 한계를 넘길 텐데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으냐고 얼굴을 찌푸린다. 사실 교수들의 연구비도 이미 한 사람당 식비를 2만 원을 상한선으로 정해 놓아 이제 원칙적으로 주류나 과한 식대의 지출은 엄두도 내지 못 한다.

이 답답한 법안의 적용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관행을 위해 법을 폐기시키는 무리수를 두든가, 아니면 새로운 관행을 만들어야 한다. 김영삼 정부 때 우리는 그 후유증도 예측하지 못한 채 금융실명제를 전광석화처럼 실시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에서 보면 그것은 새로운 관행을 만들며 우리 경제를 투명하게 만든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현재까지의 관행을 빌미로 청탁을 당연시한다면 우리 사회는 윤리적 선진국으로 도약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지저분한 청탁을 미덕으로 알아 온 지금까지의 자세를 버리고 새롭고 깨끗한 사회를 원한다면, ‘김영란법’은 버릴 것이 아니라 환영해야 할 법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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