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섭은 말했다. “사람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 흘릴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 “하긴!” “아저씨는 평생 동안 아무 일도 안 하셨습니까·” “일을 안 하다니· 일을 했지. 열심히 했어. 우리 식구 모두가 열심히 일했네.” “그럼 무슨 나쁜 짓을 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법을 어긴 적 없으세요·” “없어.” “그렇다면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어요.” “기도도 올렸지.” “그런데, 이게 뭡니까· 뭐가 잘못된...
하루는 청나라 명군 강희제가 미복 차림으로 하도라는 곳을 시찰했다. 거리를 둘러보던 중 건달들과 시비가 붙었다. 건달들이 주먹을 사용하려 하자 강희제를 호위해 가던 그곳의 관장인 위동정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 모습을 본 강희제가 위동정의 뺨을 한대 갈겼다. 하도의 온 관민이 우러러 보던 관장이 뺨을 맞고도 아무 소리도 못하자 건달들은 줄행랑쳤다. 그날 저녁, 강희제는 위동정의 집을 찾아가 그를 위로했다. “짐이 요즈음 그대를 엄하게 대하는 것은 그대를 강하게 단련하기 위함이다. 짐이 원하는 사람이 되려면 좀 더 고생...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공감은 그 사회가 처한 역사적 배경이나 가치관에 따라 다르다. 조선 시대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왕도주의와 관료적 통치질서의 유전자를 가진 우리는 서구사회에 비해 소통 과정에 가끔 수직적 역학관계가 문제가 된다. 성리학은 명분 질서와 가부장적 수직질서의 형태로 우리의 DNA에 각인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의 기자 출신 베스트셀러 작가 말콤 글래드웰의 지적은 뜨끔하게 와 닿았다. 그는 저서 ‘아웃라이어(Outlier)’에서 1997년 대한항공 괌 추락 사고를 한국의 수직적 위계(位階) 문화로 인한 불통 문제...
세계 주요 기관이나 연구소들이 머지않아 지구에 사는 상당수 인구가 물이 부족해 고통을 겪을 것이란 전망을 내 놓고 있다. 국제인구행동연구소는 2025년이면 34억 명 정도가 물 압박 또는 물 부족국가에 살 것이라 했다. 세계경제포럼 수자원 이니셔티브 보고서에는 ‘수자원 부도(water bankruptcy)’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보고서에는 1970년대 석유파동처럼 전 세계에 충격을 줄 수 있는 ‘물파동(water shock)’에 대비해야 한다고도 했다. 지구의 물 부존량은 13억8600만㎦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
어려웠긴 어려웠던 모양이다. ‘불수능’, ‘불국어’라며 대표적인 예로 이야기하는 2019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31번 문제 말이다. 예능 프로 방송에서 소재로 사용할 정도인 데다 수능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도 “상당히 긴 지문이 나오고 사고 단계가 상당히 복잡하다”면서 앞으로는 이런 초고난도 문항 출제를 자제하겠다 사과까지 했다. 국어 31번 문제는 수능 시험이 끝나자 언론은 물론 SNS 상에서 ‘이게 국어문제야, 과학문제야’, ‘지나치게 어려운 야바위 문제’ 라느니 하는 반응들이어서 유심히 문제를 들여다 보게 됐다. ...
옛날부터 관사(官舍)가 있었다. 조선시대 지방을 다스리는 수령에게는 집무 공간과 생활공간이 따로 있었다. 외아(外衙)라 해서 ‘동쪽 집’이라는 뜻의 동헌(東軒)이 집무실이고, 서쪽에는 지방관이 생활하는 내아(內衙)가 있다. 내아는 관리의 처자식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다. 이 내아와 외아를 함께 불러서 ‘관아(官衙)’라 한다. 집무 공간인 동헌이 지금의 관사인 셈이다. 관사가 보편화 된 것은 일제 강점기다. 일제는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전부터 우리나라에 철도관사와 군인관사, 학교 관사를 지어서 대륙진출의 발판으로 삼았다. ‘...
1952년 12월 4일 영국 런던의 기온이 급강하 했다. 하늘은 시커먼 구름으로 가려졌고, 지면은 짙은 안개로 덮여 있었다. 구름과 안개로 태양 빛이 가려져 낮에도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캄캄하게 어두웠다. 당시 영국은 가정이나 공장에서 모두 석탄을 연료로 사용했다. 배출연기와 런던의 안개가 합쳐져 악명 높은 스모그가 됐다. 특히 연기 속에 있던 아황산가스가 황산안개로 변해 런던 시민의 호흡기에 치명적 영향을 주었다. 런던 스모그 현상은 12월 10일까지 계속돼 런던 시민이 호흡 장애와 질식 등으로 사건 발생 후 첫 3주...
동해안에 겨울 멸치 어군이 형성됐다. 불빛을 좋아하는 멸치는 우유보다 칼슘이 12배나 많아서 ‘칼슘보고’라 한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 “밤에 어부들이 불을 밝혀 유인한 뒤 그물로 떠 올린다”며 한자 송사리 추(鯫)자를 쓰는 ‘추어’라 했다. 멸치를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는 ‘메르치’라 부르고, 전남이나 제주에서는 ‘멜’이라 부르기도 한다. 옛날에는 업신여긴다는 한자어가 들어간 ‘멸어(蔑魚)’로 불렀다. 우리나라 연안으로 회유하는 종은 봄과 가을에 산란한다. 청어목 멸치과에 속하는 멸치는 다 자라야 15㎝ 남짓이다. 하지만 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화성 탐사선 ‘인사이트호’가 206일, 4억8000만㎞의 긴 여정 끝에 화성 적도 인근 엘리시움 평원에 착륙했다. 미국은 1969년 인류 최초로 달에 유인우주선을 보낸 이후 태양계는 물론 태양계 너머의 세계 탐사를 계속하고 있다. 나사가 1977년 쏘아 올린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는 초속 17㎞의 속도로 날아가 온갖 기록을 세웠다. 보이저 1호는 발사 이후 목성과 토성 등 태양계 행성들에 대한 여러 새로운 사실들을 알려왔다. 1990년 2월에 보내 온 지구 사진은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보이...
미국의 국방비가 우리 돈으로 1000조 원에 가깝다고 해서 미국을 ‘천조국(千兆國)’이라 한다. 미국의 올해 국방예산이 약 7000억 달러로 한화 830조 원에 이른다. 이 같은 미국 국방비는 세계 국방비 순위 2위부터 10위까지를 다 합친 것과 비슷하다. 10위까지의 국가에는 G2라 불리며 미국과 패권 다툼하는 중국은 물론 러시아, 독일, 프랑스, 일본, 영국 등이 모두 망라돼 있다. ‘천조국’이란 용어는 동음 이의어 ‘천조국(天朝國)’에서 나온 것이다. 왕조시대에 조공을 받았던 중화제국을 가리키는, 중국을 섬기고 따른다는 ...
19세기 말 무렵 선진 유럽에서는 일반적인 철로 위를 달리는 기차와 다른 모양의 철도 모형이 연구되기 시작했다. 1825년 영국에 처음 철도가 생긴 지 100년도 안 된 1901년 독일 서부 부퍼탈(Wuppertal)시에 슈베베반(Schwebebahn)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철도가 등장했다. 부퍼탈 시는 철도를 건설할 수 있을 정도의 땅을 확보할 수 없어서 고육책으로 기차가 지나는 레일을 도시 건축물 위로 올리려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 같은 아이디어는 그냥 생각에 그치지 않고 승객이 열차를 타러 올라가는 높이를 감안, 열차 차량...
“우리는 뼈와 살이 터져도 끊을 수 없는 형제이자 피로 이어진 가족이다” 지난 2015년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과 대만 총통 마잉주의 회동 ‘시마회(習馬會)’에서 시 주석이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강조했다. 양안(兩岸), 즉 타이완 해협을 두고 서안과 동안으로 마주 보는 중국과 타이완의 정상이 만난 것은 1945년 8월 29일 충칭에서의 국민당 장제스와 공산당 마오쩌둥의 ‘장마오 담판’ 이후 66년 만의 대좌였다. 장마오 담판은 골육상쟁을 피하기 위한 평화 회담이었다. 장마오 담판의 골자는 국민당의 지...
영화 ‘박열’을 보면서 박열보다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1903~1926)’에 더 눈길이 갔다. 박열의 연인이자 동지였던 가네코 역을 맡은 배우 최희서의 빛나는 연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 여인의 삶의 지향점이 너무나 숭고했기 때문이었다. 가네코는 시대를 앞서 국가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과감히 던져버리고 스스로 올곧은 삶의 의지대로 짧은 생을 살다 갔다. 가네코는 부모의 이혼으로 9세였던 1912년 조선에 있는 고모 집으로 온다. 이후 충북 청원군의 부강공립소학교를 졸업하고 3·1운동을 목격한다. 가네코는 권력에 대한 저항정...
예술 전문매체 아트넷뉴스가 ‘가장 미움 받는 공공 조형물’을 선정해 발표한 적이 있다. 아트넷뉴스는 강남 대치동 포스코 서울사무소 앞에 설치된 ‘아마벨’을 압권으로 꼽았다. 조형작품 ‘꽃이 피는 구조물-아마벨(Flowering Structure-Amabel)’은 미국 작가 프랑크 스텔라(Frank Stella) 작품이다. 1997년 포스코의 의뢰를 받아 180만 달러를 받고 제작 설치했다. 이 조형물은 가로·세로·높이가 각 9m, 무게 30t에 달하는 초대형 스테인레스 스틸 주조작품이다. 아트넷뉴스는 이 작품이 미움받는 조형물...
옛날에는 거지들이 허리춤에 깡통을 차고 음식물을 얻으러 다녔다. 이 때문에 ‘깡통을 차다’라는 말이 생겼으리라. ‘깡통을 찼다’는 것은 가진 것을 몽땅 잃어버리고 빈털터리가 됐다는 뜻이다. 요즘도 가계 빚이 천문학적인 금액이라지만 한 때 은행 빚을 모두 갚고 나면 빈 통장이 되는 ‘깡통계좌’라는 말이 유행했다. 특히 빚을 내 주식투자에 나섰다가 몽땅 털린 은행계좌를 '깡통계좌'라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초인 2003년과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2년에 있었던 ‘깡통주택’ 이라는 말이 최근 다시 등장했다. ‘깡통주택’은 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이후 스마트폰에 이렇다 할 혁신이 없었다. 이제 스마트폰에 새로운 혁신이 시작됐다. 10년 전의 ‘아이폰 쇼크’에 버금가는 혁신으로 삼성전자가 주도하는 ‘폴더블 폰’의 상용화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머니 속 태블릿PC’으로 불리는 ‘폴더블 폰’은 삼성전자가 그간 스마트폰 세계 시장에서 기술을 빠르게 따라잡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에서 기술을 혁신해 변화를 주도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임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보인다. ‘폴더블 폰’이 가능하게 된 것...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오르는 일이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때린다’ 했는데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란 작자가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방북한 대기업 총수들과의 오찬에서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네까”라고 핀잔을 줬다니 말이다. 정부 여당은 이를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덮으려 하고 있다. 여기에다 야당과 보수진영에서는 일명 ‘목구멍 챌린지’라는 이름으로 냉면을 먹는 동영상을 올리며 ‘풍자 릴레이’에 나서고 있다. 여야가 모두 이 문제를 단순한 헤프닝이나 풍자의 대상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
대한민국 국민은 4대 의무를 진다. 교육의 의무, 근로의 의무, 납세의 의무, 국방의 의무다. 이는 헌법으로 명문화 돼 있다. 국방의 의무와 관련해서는 헌법 제39조 ①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 ②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국방의 의무’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판결 이후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특히 일반 도덕적 의미가 아닌 법률 용어로서의 ‘양심’이란 단...
선 굵은 인생을 살아낸 경상도 사나이 신성일이 떠난 아침, 그가 열연했던 영화를 다시 돌려 봤다. “경아, 오랜만에 같이 누워 보는 군” “꼭, 안아 주세요. 여자란 참 이상해요. 남자에 의해서 잘잘못이 가려져요” 1974년 이장호 감독의 데뷔작 ‘별들의 고향’을 보면서 ‘이제 이런 인물은 더 이상 나올 수 없지’ 혼잣말을 되뇌었다. 영화배우 신성일, 강신성일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름처럼 지상의 별 하나(星一)가 졌다. 영화 600여 편에 출연했고, 그 중 506편에서 주연을 맡은 위대한 영화배우 신성일은 경북과 대구가 낳...
“빨간 대추 송편은 꿀로 떡소를 넣었고/ 푸른 우엉 잘게 썰어 감자와 함께 삶았네/ 은풍의 준시는 뽀얗게 서리 앉았고/ 울산에서 온 감복은 환하게 글자 비추네/ 멧돼지 배 가르고 곰 고기도 구웠다면/ 넙치 포에다 고등어도 겸하였다.”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전서 1권 시문집에 실린 임금이 눈 내리는 밤 내각에 음식을 내린 데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담은 시의 일부다. 이 시에는 당시 최고의 음식을 두루 거론하고 있다. 그 가운데는 지명이 두 곳 나온다. 마른 전복을 물에 불려 설탕가루나 기름을 발라 간장에 잰 ‘울산의 감복(甘鰒)’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