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딛는 걸음마다 진한 '역사의 향기' 문화·힐링·자연 어우러진 야외박물관
향교 뒤로넘어가면 오른쪽으로 고령학생체육관이 보인다. 삼거리에서 주산 순환길 이정표를 확인하고 주산산림욕장 입구까지 걷는다. 주산성이 있는 주산을 올라 지산동 고분군을 지나 대가야박물관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고령읍에 솟아있는 주산(主山)은 12개 테마 길이 있는데 1구간을 ‘왕릉 가는 길’이라 이름을 붙였다. 이 왕릉 가는 길을 생각 없이 서둘러 걷는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그 옛날 이 길을 거닐었던 대가야 사람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더디게 걸을수록 잊힌 역사를 또렷이 기억하며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산동 고분군이 자리 잡은 주산은 대가야의 진산이었다. 읍내 아래 왕궁이 있었고, 사적 제61호로 지정된 주산성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왕궁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정상에 있는 주산성 성곽 대부분은 유실돼 형태를 찾기 쉽지 않지만 성의 일부였던 돌무지들이 흘러내리듯 가까스로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대가야의 쓸쓸한 역사 흔적을 보는 듯 어수선했다.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지산동 고분군이 보이는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청금정 방향으로 가면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갔다 이정표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가면 되고, 충혼탑으로 내려가면 처음 만나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갔다 왼쪽으로 내려가면 가야지역 최고, 최대 고분군인 지산동 고분군을 만나게 된다.
진산인 주산 남동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 위에 지금까지 발견된 고분은 모두 704기이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늘어날지 모른다는 지산동 고분군은 한반도 고대 역사를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해주는 보물 중 보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가야가 고대국가로 성장하기 시작하는 서기 400년께부터, 신라에 멸망하는 562년 사이에 조성됐다고 알려져 있다. 고분군 규모는 총 길이가 2.4㎞, 너비 100~200m에 달한다. 가야 지역 최대 규모다.
경주나 김해지역에서 익숙하게 보았던 평지나 산자락에 있는 고분이 산 정상 능선 따라 이어 자리한 고분은 산 아래와는 또 다른 세계다. 일제강점기에 무자비하게 이뤄진 도굴로 인해 남아 있는 유적이 많지 않지만 고분 발굴을 통해 순장(殉葬)을 했던 흔적을 찾을 수 있었고 금관, 금 장신구, 대가야 번성의 원천이었던 다양한 철기 유물 등이 출토됐다.
가까이 또는 멀리 쭉 이어진 고분들이 말을 걸듯 다정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고분 사이를 걷노라면 새삼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아등바등 살고 있지만 결국 죽음으로 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아니던가. 이 땅을 호령하던 왕들도 우주의 법칙을 거역하지 못해 땅 속에 묻혔고,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대가야 사람들은 이승의 삶이 내세에 이어진다고 믿었다. 산 사람을 함께 묻었던 순장 관습도 이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