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 당 10~30명 환자 돌봐…제대로 된 휴·취식 공간 태부족

17일 대구 중구 혁신공간바람 2층 상상홀에서 열린 ‘코로나19 2차 유행 준비 토론회’에서 10개 병원 현장 노동자들이 코로나19 2차 대유행을 준비해야 할 사안을 논의하고 있다. 박영제기자 yj56@kyongbuk.com

“20년 차인데도 간호사가 된 걸 후회했어요. 너무 힘들어서…”

대구의료원에서 근무하는 20년 경력의 베테랑 허선우 간호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싸웠던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당시 느꼈던 심정을 털어놨다. 그녀는 코로나19 확산 초기 인력이 부족한 탓에 환자를 돌보는 것뿐만 아니라 병원 바닥부터 화장실 변기까지 청소했던 상황, 방호복과 마스크가 부족해 코로나19 감염 위험 속에서 치료를 이어나갔던 기억들을 하나하나 소개했다.

동산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를 돌봤던 최호정 간호사도 코호트 격리에서 힘들었던 순간들을 전했다. 최 간호사를 비롯한 동료 간호사들은 코로나19 확산 초기 폐기물과 쓰레기더미가 있는 곳에서 휴식을 취했고, 탈의실이 마련되지 않아 옷장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숙소라고 정해진 공간에 침대는 5개인데, 간호사는 100명이어서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남녀 구분 없이 잠을 취했다.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입고 벗기가 불편한 방호복을 입은 상태에서 화장실을 갈 수 없었던 탓도 있지만, 방호복 수량마저 부족해 아끼고 아껴야 했기 때문이다. 최 간호사는 특히 “지난 2월 22일부터 24일까지 70∼80명이 입원하는데 간호사가 없었다. 중환자는 간호사 1명이 최대 2명 이상 맡았고, 격리환자는 간호사 한 명이 최대 30명까지 맡을 수밖에 없었다”고 코로나19 1차 유행에서의 애로를 설명했다.

17일 대구 중구 혁신공간바람 2층 상상홀에서 열린 토론회에 한국노총·민주노총 산하 대구지역 8개 코로나19 전담병원 노동조합이 모였다. 현장에서 코로나19와 싸웠던 의료진이 직접 느낀 문제들을 공유한 후 2차 유행 전 필요한 지원과 대책을 대구시와 정부에 요구하기 위해서다.

이날 의료진들은 코로나 1차 유행에서 겪었던 한계점을 설명하며 대구시와 정부가 2차 유행 전 반영해야 할 사안들을 제시했다.

이들은 먼저 1차 유행에서 간호사 인력이 지역병원 자체 인력 1500명과 파견인력 1500명까지 있었으나 간호사 한 명이 10∼30명의 환자를 돌보는 실정이라며 간호인력 충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인력충원으로 휴식시간·건강 보장 등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다양한 사안들이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전실 구조의 음압병상과 코로나19와 한 단계 분리될 수 있는 의료진 클린존, 환자 관찰과 소통이 가능한 폐쇄회로(CC)TV와 전화기, 화장실, 샤워실 등도 필요한 시설로 요구됐다.

특히 의료진의 건강을 위협할 정도로 부족했던 방호복 등 물품 보급에 대한 필요성이 강조됐다. 국가나 지방 정부 관리의 방호복 공급 체계가 마련돼야 하고, 방호 물품 재사용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진 보호를 위해 방호 물품에 대한 기준이 완화되지 않도록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또 2차 유행에서는 의료진이 안전하게 치료를 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본부 이경화 간호사는 “방호복을 입고 일하다가 저산소증 공포를 느껴 밖으로 나왔지만, 내가 일하지 않은 공백을 다른 사람이 채워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참고 일했다. 파견직 간호사는 계약 기간이 끝나면 돌아갈 곳으로 가지만, 거점·전담병원 간호사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와 싸웠다”고 울먹였다. 이어 “국민 영웅이라고 서로를 다독였고 따뜻한 봄날을 기다렸는데, 유종의 미는 없었다”며 “2차 유행 전 병원만 지정할 게 아니라 의료진들이 매뉴얼을 미리 받도록 하고 시행착오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재용 기자
전재용 기자 jjy8820@kyongbuk.com

경찰서, 군부대, 교통, 환경, 노동 및 시민단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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