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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항쟁의 역사 품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상징' 안동 임청각
고난과 항쟁의 역사 품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상징' 안동 임청각
  • 오종명 기자
  • 승인 2020년 08월 13일 21시 40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8월 14일 금요일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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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항일 투쟁 밑거름…석주 이상룡 등 독립유공자 11명 배출
안동 임청각

안동시 영남산 기슭에는 비탈진 경사면을 따라 계단식으로 기단을 쌓아 지어진 전통한옥 ‘임청각’이 있다. 조선시대 형조좌랑을 지낸 이명이 1519년에 지은 고성이씨 종택이다.

임청각은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의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는다(등동고이서소 登東皐以舒嘯 임청류이부시 臨淸流而賦詩)’는 시구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 집은 조선시대에 왕이 아닌 사람이 지을 수 있는 최대 규모인 99칸으로, 현존하는 살림집 중 가장 크고 오래됐다. 그래서 대한민국 보물 제182호로 지정됐다. 임청각과 군자정 현판은 퇴계 이황이 썼다고 전해진다. 이 고택은 500년의 민족정기를 이어나가 독립유공자 11명을 배출하며 일제강점기 항일 투쟁의 밑거름이 되었다. 임청각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개인의 안위를 챙기기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의 상징적 공간으로 거듭났다.

석주 이상룡(1858∼1932)은 이곳 임청각에서 출생했다. 유학자로서 협동학교를 세워 애국계몽운동과 의병운동에 힘쓰던 이상룡은 1910년 8월 일제가 강제적으로 한일합병을 감행하자 1911년 1월 반년도 지나지 않아 당시 54세에 50여 명의 가솔과 함께 전 재산을 챙겨 서간도로 망명했다. 그는 “공자·맹자는 시렁 위에 두고, 나라를 되찾은 뒤에 읽어도 늦지 않다”고 했다. 사당에 모셔진 조상 신주를 땅에 묻고, 안동 최초로 노비문서도 불태웠다. 만주에서 무장독립투쟁을 준비하면서 자금이 부족하자 아들을 다시 안동으로 보내 임청각을 팔아 군자금으로 보탰다.(이후 문중에서는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마련하여 임청각을 되샀다) 서간도 지역에 항일 독립운동단체 경학사를 만들고, 독립군 양성학교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 독립군을 양성하고 독립정신을 일깨웠다.

1924년 임시정부 이승만 대통령이 탄핵되고 2대 대통령으로 추대된 박은식이 국무령제로 바꾼 뒤 1925년 초대 국무령에 이상룡을 추천하여 당선시켰다. 그러나 이상룡은 분열된 독립운동계에 회의를 느끼고 다시 간도로 돌아와 무장항일투쟁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독립전쟁에 열정을 바친 숭고한 삶을 살았으나,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32년 5월 길림성 서란현에서 74세에 순국하고 말았다.

석주 일가는 이상룡을 비롯해 부인 김우락, 동생 이봉희, 아들 이준형, 조카 이광민, 손자 이병화, 손자며느리 허은 등 3대를 거쳐 모두 11명의 독립운동 서훈자를 배출했다.

여기에는 여성독립운동가 2명이 포함돼 있다. 2019년 3·1절에 석주 이상룡의 부인 김우락 여사가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며, 11번째 임청각 출신 독립유공자가 됐다. 또, 석주의 손자며느리 허은 지사 역시, 만주에서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노력한 공적이 인정돼 2018년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됐다.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 소리가>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통해 여성의 입장에서 독립운동을 뒷바라지한 이야기를 생생히 담아 남겼다. 이들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독립군들에 식사를 제공하고, 군복을 만드는 등 독립군의 의식주를 고루 챙기며 항쟁의 역사에 맞서 몸소 버팀목이 된 것이 결국 공적으로 인정됐다. 허 지사는 해방 후에도 독립투쟁의 후유증으로 슬하의 4남 1녀를 먼저 떠나보내야 했고, 남은 아들과 외동딸은 고아원에 보내야 했다.

석주 선생은 문재인 대통령도 각별한 관심을 가진 독립운동가다. 2017년 8·15 경축사에서 문 대통령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임청각을 언급하며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고, 2019년 역사박물관과 KBS가 함께 만든 ‘나의 독립 영웅’ 방송 가운데 석주 이상룡 선생 편에 직접 출연하기도 해 반향을 일으켰다. “석주 이상룡 선생의 뜻을 이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라는 친필 글씨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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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명 기자 ojm2171@kyongbuk.com

안동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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