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감포읍에 사는 현종한씨가 장모인 김순조 할머니를 구조할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장모님께선 그날 돌아가셨을 겁니다.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경주시 감포읍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현종한(61) 씨는 이달 초 지역을 강타한 두 개의 태풍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해져 몸이 마구 떨린다.

지난 3일 초속 27m의 강풍과 최고 13m 높이의 파도를 동반한 제9호 태풍 ‘마이삭’이 아름다운 항구 마을을 덮치면서 장모 김순조(84) 할머니가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김 할머니는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밤잠을 설치다 새벽 3시께 갑자기 밀려드는 바닷물에 놀라 혼비백산 돼 집을 빠져나오려 했다.

하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바닷물로 인해 담장과 대문이 부서지고, 안방은 물론 집안 곳곳이 어른 키 높이 정도로 물이 차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김 할머니는 주방 싱크대 위로 올라갔지만, 순간 턱밑까지 바닷물이 차오르면서 몹시 위태로운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제9호 태풍 ‘마이삭’으로 밀려 온 바닷물에 완전히 침수된 경주시 감포읍 김순조 할머니 주택에 대한 긴급복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그때 인근에서 생활하고 있는 현 씨가 경찰관 2명과 함께 집 뒤쪽에 있는 조그만 창문의 창살을 부순 뒤 가까스로 김 할머니를 구조했다.

현 씨는 그날 새벽 태풍이 절정을 이루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장모에게 전화했지만, 정전으로 통화가 안 됐다.

불길한 생각에 현 씨는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비바람을 헤치고 혼자 살고 있는 장모 집에 도착해 숨을 헐떡이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할머니를 무사히 구조했다.

이후 김 할머니는 발목에 입은 부상 치료를 위해 3주 동안 병원에 입원을 했다가 지난 25일 퇴원을 했다.

하지만 태풍에 침수된 20여 평 정도의 김 할머니 집은 아직 복구가 끝나지 않아 사위인 현 씨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김 할머니처럼 이번 태풍으로 집이 침수되면서 감포읍에서 마련해 준 원룸이나 친척 집에서 생활하는 이재민은 29가구 60여 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경북안전기동대를 비롯한 자원봉사단체의 긴급 복구로 도배, 장판, 보일러 설치 등 기본적인 수리가 완료돼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일부 가구는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집수리가 이뤄지지 않아 낯선 곳에서 추석 명절을 보낼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태풍이 지나간 지 20여 일이 지난 28일까지 경주시 감포읍 피해마을에는 여전히 각종 쓰레기들로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태풍이 지나간 지 20여 일이 지난 28일 찾은 감포항 인근에 조성된 해상공원 뒷마을은 아직도 태풍 생채기가 남아 있었다.

이번 태풍으로 완전히 유실된 3만 5840㎡ 규모의 감포 해상공원은 중장비를 동원해 모래 자루로 응급 복구작업을 하고 있지만, 곳곳에 콘크리트 덩어리 등 태풍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두 번의 태풍으로 모두 36가구가 침수된 이 마을 사정은 더욱 심각해 보였다.

이번 태풍으로 완전 유실된 경주시 감포읍 해상공원에 대한 긴급 복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감포항 회식당 밀집 지역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나오는 이 마을은 해안 도로를 따라 200여m 구간에 주택과 식당이 밀집해 있었지만, 이번 태풍으로 피해를 보지 않은 집이 없을 정도로 아수라장이 됐다.

이 지역은 그동안 자원봉사자를 비롯한 민관군에서 대규모 인원이 투입돼 복구 작업을 벌였지만, 여전히 주민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없을 만큼 어수선했다.

일부 주택은 아직도 대문은 물론 창문과 출입문도 없이 방치돼 있는 데다, 골목 곳곳에는 건축자재가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다.

현종한 씨는 “태풍 피해를 입은 가구 중 일부는 긴급 복구가 이뤄졌지만, 냉장고는 물론 가스렌지, 그릇 등의 가재도구가 없어 정상적인 생활은 아직 불가능하다”면서 “코로나19 확산과 태풍 피해까지 겹쳐 올 추석은 여느 때보다 우울한 추석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황기환 기자
황기환 기자 hgeeh@kyongbuk.com

동남부권 본부장, 경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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