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석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특임교수·전 대구MBC 사장
박영석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특임교수·전 대구MBC 사장

어느 날 갑자기 옛날 돈 ‘천 냥’은 지금 돈으로는 얼마나 될까 궁금해졌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을 자주 쓰면서도 속담 속의 천 냥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발동해 찾아보니 여기에 궁금증을 갖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았다.

어떤 이들은 18세기 조선과 오늘의 쌀값을 기준으로 1냥은 지금의 5만원에서 7~8만 원 정도로 추산했다. 여기에 대해 다른 쪽에서는 조선시대와 지금은 쌀 생산과 소비가 완전히 다른 구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때와 지금의 쌀값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반박한다. 이들은 당시의 여러 기록이나 사회적으로 통용되었던 가치들을 추산해 따져보면 1냥은 오늘의 100만 원 정도로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과한 느낌이다. 비록 시대는 많이 지났지만 1955년 한복남이 발표한 인가가요 <엽전 열닷냥> 에서 ‘열 닷 냥’ 가치를 150만원에서 300만원 정도로 체감하는 이들이 많은 것을 봐서도 그렇다. 이런 것들을 감안하면 조선시대 후기 1냥은 지금의 7~10만 원 정도가 무난할 것 같다.

그렇다면 속담 속에서 ‘말 한마디’로 갚는 빚은 단순 계산해도 오늘의 7~8000만 원에서 1억 원 정도에 이른다. 그 정도 금액은 지금도 거액이다. 말 한마디로 그 큰 빚을 단숨에 갚을 수 있다고 하면 말의 힘은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 그런데 속담 속‘천 냥 빚’은 그 이상이다. 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닥치는 큰일이나 매우 어렵고 힘든 일들을 의미한다. 말 한마디는 그것까지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큰 힘이 있음을 상징한다.

수년전 대체의학을 연구한 한 일본인이 물을 향해 좋은 말을 하느냐 나쁜 말을 하느냐에 따라 물의 결정체가 달라진다는 주장을 사진과 함께 제기해 관심을 끈 적이 있다. 과학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좋은 말을 해준 물은 결정체가 현미경 사진에서 육각형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바보’,‘밉다’ 등 나쁜 말에 노출한 물의 결정은 흉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또 어떤 이는 양파를 물컵에 담아 같은 실험을 했다. 결과는 역시 놀라웠다. 좋은 말에 노출한 양파는 순이 잘 자랐지만 나쁜 말에 둘러싸인 양파는 새순이 절반에도 못 미쳤다. 역시 과학적으로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좋은 말이 나쁜 말보다 주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실제로 감사하고 칭찬하는 말에 화를 내거나 마음을 상하는 사람은 없다. 반대로 욕이나 험담, 악담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게 미소를 띨 사람 역시 없다. 이러한 실증적 예는 일상 속에서도 너무나 많다. 결국 상대방과 주고받는 일상의 말에도 분명 어떤 기운과 파장이 존재한다는 반증이다.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작은 소리에 불과하지만 말의 힘은 강하고 세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듯이 실제로 말 한마디로 불가능했던 일이 가능해지기도 하고 영원할 것만 같던 일이 바로 멈추거나 중단되기도 한다. 까마득한 절망에 빠졌던 사람이 기적같이 희망을 되찾기도 하고 그 반대 상황도 다반사이다. 이토록 즉각적이고 강력한 힘이 또 어디에 있었던가.

말은 생각이며 생각은 마음이고 마음은 그 사람의 기운과 에너지에 기반한다. 마음과 기운은 항상 불가분의 하나로 연동되어 있다. 결국 말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기운을 주고받는 것이다. 좋은 말은 좋은 기운을 선물하는 것과도 같지만 나쁜 말은 나쁜 기운과 파장을 상대방에게 내던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결과가 어떤지는 볼 필요도 없다.

말들이 점점 거칠어진다. 말이 험해지면 세상은 더 험악해진다. 소띠 해 새해는 좋은 기운 건네는 좋은 말 세상 되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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