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기획…안동 옥사서 불태운 강한 의지 담겨

송기식의 저술인 ‘해창문집’
한국국학진흥원이 3·1운동 102주년을 맞아 독립운동에 대한 강한 의지를 담은 옥중시를 공개했다.

안동의 독립운동가 해창(海窓) 송기식(宋基植·1878~1949)이 3·1운동을 주동하다가 투옥돼 옥중생활을 하면서 지은 ‘체포되어 안동 옥사에 갇혔을 때 동지들에게 보이다’라는 시다.

송기식은 1919년 서울에서 민족대표 33인의 선창으로 발발한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여기에 부응해 안동지역 3·1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1908년 석주 이상룡과 류인식·김형칠 등이 임하면 내앞에 협동학교를 설립할 때 주도적 역할을 수행한 뒤 스스로 봉양서숙을 세워 후학을 양성하는 길을 개척했다.

이후 안동지역 3·1운동은 내앞의 협동학교와 봉양서숙, 하회의 동화학교와 도산의 보문의숙 등의 4개 학교가 주체가 되어 이끌었다.

3월 18일 안동에서 봉양서숙 제자를 비롯해 송연식·송장식 등 친지들과 함께 만세 대열의 선두에 섰으나 곧바로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당시 그는 팔다리가 꺾이고 뼈가 드러나는 고문을 당하는 가운데 시위 이유를 묻자 “밤이 깊어 새벽이 찾아오면 우는 것은 닭의 생리”라고 답했다고 한다.

송기식은 선동죄로 2년형을 받아 안동과 대구를 거쳐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옥중생활을 하던 송기식은 ‘체포되어 안동 옥사에 갇혔을 때 동지들에게 보이다’라는 시를 지어 독립운동에 대한 강한 의지를 불태웠다.

송기식이 안동 감옥에서 지은 ‘체포되어 안동 옥사에 갇혔을 때 동지들에게 보이다‘라는 시가 실린 해창문집.
이천만의 만세 소리 우레 치듯 울려 퍼지니

형체가 없는 철옹성을 만들어 냈다네

맨손으로 큰 바다 물결을 돌릴 수 있으니

창생들이 마관조약(馬關條約)을 다시 볼 것이라오

외로운 충심은 몽당붓으로 ‘춘추’에 남을 것이고

큰 의리는 하늘 한가운데서 해와 달처럼 빛나리

남아의 본분이란 모름지기 이와 같아야 하니

천심에 순응할 뿐 명예는 좋아하지 않는다네



송기식은 한국의 독립운동이라는 대세를 막으려는 일본의 행태를 손바닥에 비유하면서 “손바닥으로 어찌 바다의 흐름을 막을 수 있겠는가”라고 조롱한다. 또 외세로부터의 나라를 지키려는 굳건한 의리는 해와 달처럼 빛을 내는 것으로 마땅히 남아의 본분으로 삼아야 한다고 끝을 맺고 있다.

송기식은 42살의 나이에 친척들과 자신의 제자들 그리고 인근 학교의 학생들을 이끌고 안동지역 3·1만세 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우리의 독립은 하늘의 뜻이고, 만백성의 뜻이라 누구도 막을 수 없으니 독립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으로 차 있었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옥중시는 독립운동 자료 중에서 현장감이 가장 돋보이는 자료”라며 “앞으로 옥중시를 따로 정리해 독립운동의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할 수 있는 콘텐츠로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종명 기자
오종명 기자 ojm2171@kyongbuk.com

안동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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