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석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특임교수·전 대구MBC 사장
박영석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특임교수·전 대구MBC 사장

혼잣말은 위험하다. 감춰둔 속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혼잣말 가운데 최고를 하나 고르라고 하면 17세기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의 “그래도 지구는 돈다”를 꼽고 싶다. 목숨을 건 위험한 혼잣말이었지만 그 이상이 없는 진리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갈릴레이는 당시 모든 사람들이 믿고 있던 천동설을 부정하고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지동설을 설파했다가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다. 심한 고문 끝에 무기징역에서 가택연금으로 감형되긴 했으나 그는 풀려나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혼자 중얼거렸다고 전해진다. 혼잣말을 통해 끝까지 자존심을 지켜낸 셈이다.

물론 이 유명한 갈릴레이의 혼잣말은 과학과 진리를 향한 문학적 수사일 수도 있다. 실제로 그가 그런 혼잣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혼잣말의 함축이나 울림은 지금까지도 어떤 웅변이나 주장과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한 힘을 지닌다.

문제는 그와 같은 위대한 혼잣말이 아니라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혼잣말들이다. 혼잣말은 ‘남이 듣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자기 혼자서 중얼거리는 말’로 규정하고 있으나 내용을 자세히 따져보면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겠다.

하나는 자신도 모르게 불쑥 입에서 나오는 혼잣말이고 또 하나는 혼잣말 형식을 빌려 자신의 생각이나 뜻을 전하는 이른바 유사 혼잣말이다. 둘 다 상대든 제 3자든 주변에 누군가 들은 사람이 있다. 전자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별문제가 되지 않는데 비해 후자가 자주 분란과 갈등의 원인이 된다.

후자는 우선 의도적인지 아닌지가 분명하지 않은 데다 내용에는 아픈 가시와 독기 같은 것들이 은근슬쩍 끼워져 있거나 감추어져 있다. 형식도 혼잣말 모습을 하곤 있지만 주변 상황들을 보면 도저히 혼잣말로 넘길 수가 없다. 이러한 혼잣말 때문에 많은 문제들이 생겨난다.

직장이나 사무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들릴락 말락 하는 누군가의 이런 혼잣말 때문에 언쟁이 다시 불붙기도 하고 또 다른 국면으로 싸움이 번지기도 한다. 부부싸움의 원인도 혼잣말이 자주 빌미가 되기도 한다. 티격태격하다가 어느 한쪽에서 속에 있는 하고 싶은 말을 참지 못하고 혼잣말처럼 내뱉으면 그때부터는 그 말 때문에 큰소리가 나온다.

“방금 뭐라고 했어요!”, “지금 그게 무슨 소립니까!”, “뭐가 어쩌구 어째!”, “다시 한 번 말해봐!” 하면서 흥분하게 하는 것 역시 혼잣말들이다. 중얼거리듯 하는 혼잣말만 없었어도 아무 문제 없이 끝났을 일들이 괜히 지나가며 툭 던진 혼잣말 때문에 후폭풍이 거세게 일어난다.

어쩔 수 없이 하는 혼잣말이야 누구든 이해를 한다. 그러나 혼자 하는 말처럼 하면서 속내를 드러내는 혼잣말은 상대가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따지고 보면 모든 혼잣말은 안 할 말들이고 비겁한 말이다. 상대방의 반발이나 반격을 피해가기 위한 꼼수가 숨어 있다. 형식도 모습도 보기가 좋지 않다. 특히, 혼잣말 속에는 냉소나 비꼼, 비하, 비난이 포함되기 일쑤여서 들은 사람이 정색을 하며 그것을 문제 삼으면 꼼짝없이 고개도 숙여야 한다.

그래서 모든 혼잣말은 불필요하고 어떤 혼잣말도 위험하다. 혼잣말보다는 차라리 대놓고 하는 말이 낫고 그것보다는 침묵이 백배 더 낫다. 혼잣말도 자주 하다 보면 버릇이 되는가 보다. 어디를 가든 구시렁거리는 사람이 자주 구시렁거리고 혼잣말도 하는 사람이 더 자주 하기 때문이다.

혼잣말은 무조건 참고 안 하는 것이 맞는다. 그 순간만 넘기면 된다. 이제 혼잣말이 막 나오려고 할 때는 차라리 벽을 한 번씩 쳐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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