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주 극심한 인력난 호소…근로자도 줄어들 수입에 한숨
구미공단 입주업체 10곳 중 9곳 '주 52시간 근무제' 대상
구미상의 "제도 시행 유예·정부 차원의 지원책 마련해야"

오는 7월 1일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을 앞두고 경북지역 중소기업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한국 전자산업의 메카이자 주조·사출 금형·정밀가공·열처리 등 뿌리산업 중소기업들이 산재해 있는 구미지역 피해가 극심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기업들은 물론 근로자들의 수입까지 줄어들면서 정부가 주장해 온 ‘저녁이 있는 삶’이 결국 ‘빈곤한 저녁’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구미공단 모습. 구미시
구미공단 모습. 구미시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구미국가산업단지에 입주한 기업 중 50인 미만 기업은 전체 1천972개사 중 1천756사로 약 90%를 차지한다.

특히 대기업 의존도가 높은 특수성과 힘든 일을 꺼리는 사회적 현상으로 인한 국내 생산인력 부족과 코로나19로 외국인 노동자 입국마저 막히면서 인력난까지 겪게 되자 ‘꼭 지금이어야 하냐?’는 원망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구미공단 입주기업들은 하나같이 “일이 많을 때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으면 기업은 생산량이 늘어 좋고, 근로자들은 수입이 많아져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데 왜 근무시간을 강제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자동차 부품 공장을 운영하는 A씨(61)는 “자동차 부품 공장의 경우 전자 업종보다 일이 힘들어 사람 구하기가 힘든데 같은 임금이라면 더 편한 일을 찾으러 가지 않겠느냐”며 “정부 정책으로 사람 구하기가 더 힘들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요즘은 잔업을 하라고 해도 ‘본인이 일이 있거나 몸이 좋지 않아 안 한다’고 하면 잔업을 시킬 수도 없고 근로자 또한 억지로 일을 하지 않는다”며 “예전과는 현장 근무 사정이 많이 달라진 만큼 근무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내 근로자 확보도 쉽지 않지만, 외국인 근로자 역시 실질임금이 감소할 경우 타사 이직률이 매우 높아 대체 인력 수급에도 비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금속 가공 공장을 운영하는 B씨(52) 역시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속이 타들어 간다.

B씨는 “구미 지역 기계정비 및 조립·정밀금속가공 업체 대다수는 대기업 협력사 또는 하도급 업체인데 대기업들이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다고 납기를 늘려주겠느냐”며 “결국 그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중소업체의 몫이 된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정부의 삶의 질 개선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현장의 특수성과 실질적인 사정은 살피지 않은 정책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기업들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근로자 역시 상당한 피해가 현실화됐다.

구미지역 대기업에 다니는 근로자 C씨(34)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 이후 수입이 줄면서 걱정이 크다.

4살·7살 아이 둘을 키우는 C씨는 주 52시간 근무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늘었지만, 근무시간이 줄어든 만큼 수입이 줄다 보니 생활비 외에 당장 아이들에게 매월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학원비를 내고 나면 지갑이 텅 빈다.

여가 시간은 많아졌지만, 얇아진 지갑 탓에 가족들과의 여가생활은 언감생심이 되고 있다.

C씨는 “저를 비롯해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경우 월급이 주 52시간 근무 이전보다 적게는 50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까지 줄었다”며 “아이가 커가면서 돈이 더 들어갈 텐데 일을 더 해서라도 돈을 더 벌고 싶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지역 기업들은 물론 근로자들까지 제도 보완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구미상공회의소는 지난 18일 정부와 지자체, 국회 및 지역 국회의원, 대한상의 등에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시행 유예(1년) 및 3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는 한시적 추가 연장근로를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해 달라는 건의문을 제출했다.

윤재호 구미상의 회장은 “구미산단은 주조·사출 금형·정밀가공·열처리 등 뿌리 산업 중심지지만 교대근무제 개편이 녹록지 않은 데다 화학·첨단소재 등 구미산단 주력 대기업 공장들이 24시간 가동을 멈출 수 없어 유연근무제 도입 역시 쉽지 않은 만큼 정부 차원의 계도 및 지원 강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주 52시간 근무제는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기존 68시간에서 52시간(법정 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단축한 근로제도다.

지난 2018년 300인 이상 사업장 및 공공기관을 시작으로 시행되고 있는 이 제도는 오는 7월 1일부터 50인 이하 사업장으로 확대되며, 30인 미만 사업장은 2022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노사 합의를 통해 주당 60시간까지 추가 연장근로 가능하도록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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