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국 고문헌 연구소 경고재대표·언론인
최병국 고문헌 연구소 경고재대표·언론인

2021년 9월 24일 어머니와 고등학생 아들은 방송을 듣고 절규했다. 해양수산부 8급 공무원으로 어업지도원인 아버지(이대준·47)가 이틀 전인 22일 서해 소연평도 해상에서 월북을 기도하다 북한군에 의해 사살된 후 불에 태워졌다는 해양경찰청 발표를 듣고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하루아침에 ‘월북 가족’이라는 주홍글씨가 가슴에 새겨졌다. 문재인 정권이 퇴진하고 1년 9개월만인 지난 16일 국방부와 해경이 “이씨가 월북을 할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며 종전의 발표를 번복하고 유감을 표명했다. 사건 당시 고등학생이던 이씨 아들이 수사기관에 보낸 편지, 가족이 그토록 요구했으나 볼 수 없었던 해경의 초동수사 자료와 동료 공무원 진술서도 모두 공개됐다. 이 자료들은 이씨 가족이 1년 9개월 동안 국가권력 앞에서 느꼈을 좌절감과 분노를 대변해 주었다. 하지만 법원이 이씨 가족에게 공개하라고 한 군 당국의 정보와 청와대 자료들에 대해서는 문 정부가 항소를 제기해 자료 공개를 거부하다 문 대통령 퇴임 때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하는 바람에 향후 15년간은 공개가 금지됐다. 이 자료를 보려면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을 해야 한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이 정보 공개를 반대하며 끝까지 이씨 가족의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이씨 피살 사건 당시인 2021년 9월 22일 군은 특수정보(SI)를 통해 이씨가 서해 상에서 표류하다 북한군에 발견된 상황을 파악해 청와대에 보고했고 3시간 뒤 이씨는 북한군에 의해 사살돼 불에 태워졌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이씨 구출에 대한 어떤 지시도 없었다고 한다. 이씨가 피살된 4시간 뒤 문 대통령은 유엔총회 화상 연설에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됐음의 종전선언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한다”는 연설을 했다. 이 연설 이틀 뒤 김정은이 이씨 피살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통지문을 보내자 여권의 일부 인사는 김정은을 “계몽군주”라고 칭송까지 했다. 최근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여당 측의 정보공개 협조 요구에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한데 지금 그런걸 할 때냐” “그분의 월북 의사가 있었는지 아닌지가 뭐가 중요하냐” “이미 이 사건은 북한의 사과로 마무리된 일이다”며 “(여권이) 친북 이미지를 만들려는 신색깔론적 접근이다”며 완강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 우 위원장의 이 발언을 본 연세대 동문들은 비판적인 글을 쏟아냈다. “어쩌다 저렇게 되었나. 이한열 영정 사진 들고 항의하던 우상호가 맞나. 추하다. 역겹다”는 격한 반응이 이어졌다. 어떤 동문은 “80년대 때 대한민국에 먹고 사는 게 급한데 민주화가 중요하냐고 했으면 어땠을까”등 야유성 댓글도 줄줄이 달렸다. 유족측은 “문재인 정부가 세월호 참사에서 유가족 피해자들이 만족할 때까지 진상 규명을 계속하라고 강조한 것과 우리 아버지 사건이 왜 다른냐. 세월호 참상 조사에 거금(572억원)을 쏟아 붓고도 또 조사하라는 민주당이 아닌냐”고 항변했다.

국민의힘은 공무원 이대준 피살 사건을 ‘월북 공작사건’이라고 보고 어떻게 월북으로 단정해 발표했는지 진상 규명을 위한 태스크포스팀(TF)을 구성했다. 이와함께 2019년 ‘귀순어민 강제 북송사건’도 TF팀을 구성해 전면 재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이 사건은 우리 정부가 북한 주민을 강제 북송한 첫 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탈북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탈북한 북한 어민 2명을 나포 이틀 만에 북한의 요청이 없던 상황에서 북측에 추방 의사를 타진해 북측이 수용하자 다음날 이들의 눈에 안대를 씌우고 포승으로 묶은 채 판문점을 통해 강제 북송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 보호와 안전을 포기할 경우 그 국가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정부는 이 두 사건을 철저히 규명해 국가 폭력을 심판하고 피살된 이대준씨와 강제 북송된 북한 주민의 억울함도 풀어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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