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원 면적 여의도 1145배 사라져…안동대, 벌 보호정책 제안
정철의 교수 "사유림 밀원 직불제 도입하고 국·공유림 활용을"

정철의 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
영국 왕립지리학회가 ‘지구상에 반드시 필요한 생물 5종’에 선정되기도 한 꿀벌의 집단 실종현상과 폐사로 국내 양봉산업이 존폐위기에 처해있다.

지난해 꿀벌 집단폐사가 문제가 됐을 때 농림축산식품부는 꿀벌 78억 마리(39만여봉군)가 월동 중 폐사했다고 발표했다. 꿀벌 집단폐사 원인을 두고 질병, 살충제, 기후변화까지 추정이 분분한데 안동대학교 산학협력단의 ‘벌의 위기와 보호정책 제안’보고서는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정철의 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한국양봉학회 회장)는 “꿀벌 집단폐사를 막으려면 꿀벌에게 꽃가루와 꿀이라는 먹이를 주는 밀원(蜜源·벌이 꿀을 빨아 오는 원천) 확보를 위해 국·공유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생태계서비스직불제’와 비슷한 제도를 만들어 사유림에 밀원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태계서비스직불제는 보호지역이나 생태우수지역 토지 소유자가 ‘인간이 생태계로부터 얻는 모든 혜택’을 유지·증진하는 활동을 하면 국가가 계약을 맺고 혜택을 주는 제도다.

정 교수는 “지난 50년간 감소한 밀원 면적과 국내에 있는 꿀벌 수를 고려하면 최소 30만㏊의 밀원이 필요하다”며 “현재 정부 정책으로는 40년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는 데 100년 넘게 걸린다”고 지적했다.

국내 밀원은 2020년 기준 14만6000㏊로 1970~1980년대 47만8000㏊보다 약 33만㏊ 감소했고 제주도의 1.8배, 여의도의 1145배 면적의 밀원이 사라진 것이라고 정 교수는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양봉산업법상 밀원식물은 매실나무와 동백나무 등 목본 25종과 유채와 해바라기 등 초본 15종이다. 특히 천연 꿀 70%가 생산되는 아까시나무의 경우 1980년대까지 32만㏊에 조림됐다가 현재는 3만6000㏊ 정도에만 남아있다.

한국은 벌꿀 사육밀도가 1㎢당 21.8봉군으로 미국의 80배에 달하는 등 세계 최고 수준이다. 원래 다른 나라 꿀벌보다 치열하게 먹이경쟁을 벌여야 했던 한국 꿀벌들은 밀원이 감소하면서 더 힘든 경쟁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한국양봉협회는 올해 초 기준 협회 소속 농가 벌통 153만7270개 중 61.4%인 94만4000개에서 꿀벌이 폐사한 것으로 집계했다. 통상 벌통 1개에 꿀벌 1만5000~2만 마리 사는데 이를 고려하면 141억6000 마리에서 188억8000 마리 꿀벌이 죽어 꿀벌 집단폐사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정철의 교수는 꿀벌 집단폐사 원인을 두고 꿀벌의 기생충인 꿀벌응애와 중국가시응애를 통해 전파되는 각종 질병, 말벌을 비롯한 외래종의 급증, 기후변화 등을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꿀벌응애는 화밀과 화분을 모으러 나온 벌의 몸에 달라붙어 벌통 안으로 침투하는 기생충으로 1968년 전국적으로 확산 후 피해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다”며 “7~8월에 개체군 밀도가 가장 높아져, 꿀벌 개체 수도 해당 시기에 약 30~50% 정도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말벌류는 군집 생활을 하며 다른 곤충류를 먹이로 사냥하는데, 곤충 중에서도 비교적 사냥하기 쉬운 꿀벌이 군집생활을 하기에 말벌류의 주 먹이가 된다”며 “말벌류 중에서도 등검은말벌은 꿀벌을 먹이로 선호하고 개체 수가 다른 토종말벌류보다 많아 양봉농가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정 교수는 “지구 온도가 200여년 만에 1.09℃ 오르면서 벌이 동면에서 깨기 전 꽃이 피었다가 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최근 봄꽃 개화일은 과거 1950~2010년대보다 3~9일 빨라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겨울철 온난화와 이상기상 현상 증가는 월동기 꿀벌에 치명적일 수 있다”며 “재작년에는 10월 초순까지 기온이 비정상적으로 높다가 10월 중순 갑자기 10℃ 이상 떨어져 월동을 준비하는 꿀벌에게 혼선을 줬고 이후엔 12월 24일까지 평년보다 기온이 높다가 같은 달 25일 기온이 급락해 꿀벌이 제대로 월동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안동대 산학협력단은 지난 5월 18일 ‘세계 벌의 날’을 앞두고 환경단체 그린피스와 ‘벌의 위기와 보호정책 제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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