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경북일보 청송객주 문학대전 단편소설 은상

허영숙 약력
2006년 시안 시부문 신인상수상
2018년 전북도민일보 소설부문 당선
시집 <바코드><뭉클한 구름>등

밀린 일기가 소설이 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아니 국민학교 라 불러야 맞습니다. 방학이 끝나 갈 무렵, 밀린 일기는 저의 첫 창작 노트였습니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하루하루를 한 권의 일기장에 매일 똑같이 써야 한다는 것은 오늘의 날씨를 쓰는 것보다 더 지루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지어 써보기로 했습니다. 진솔하게 써야 한다는 일기의 목적과 상관없이 없던 사건을 만들어 글을 썼습니다. 제 창작의 시작이었습니다. 고맙게도 선생님은 빨간 볼펜으로 일일이 답을 달아주셨습니다. ‘나는 네가 소설가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써주신 5학년 담임이었던 김계영 선생님의 붉은 첨삭은 생활기록부에 현모양처라고 썼던 글을 지우고 소설가라고 쓰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야기 언니’는 살면서 가져 본 첫 별명이자 마지막 별명입니다. 동화책을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시절, 동네 아이들을 모아놓고 분필로 콘크리트 바닥에 그림을 그려가며 지어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내게 이야기 언니라는 별명을 붙여주었고 만날 때마다 이야기를 해달라 졸랐습니다. 황금 복덕방 주변에 살던 아이들은 저의 첫 독자들이었습니다.

사춘기 창작은 대학노트였습니다. 만화 캔디에 이어 로맨스 소설이 여학생들을 설레게 하던 시절, 대학노트에 로맨스 소설을 썼습니다. 반 친구들이 돌려 봤습니다. 돌려보느라 너덜너덜해진 대학노트를 지금 다시 보게 된다면 그 유치함에 부끄러울 것이나, 그런 문장들의 행간에서 저의 문장력이 자랐다고 생각하니 그 노트를 지금까지 간직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직장 생활을 했고 결혼과 육아로 꿈을 접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좋아하는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2006년 시 부문으로 먼저 등단했습니다. 두 권의 시집을 냈지만, 갈증은 여전히 남았습니다. 그리고 2018년 소설로 등단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소설을 쓰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이 남아있었는데, 청송객주문학상에 당선되면서 너는 아직도 소설을 써도 된다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문학인들에게 창작의 장을 열어주신 경북일보와 청송객주문학상 운영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작품을 읽어주시고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초등학교 일기장에 첨삭해 주던 담임선생님처럼, 이야기 언니라고 불러주던 어린 독자들처럼, 유치한 소설을 돌려보며 재미있다고 힘을 주던 친구들처럼 제게는 또 한 분의 잊을 수 없는 선생님으로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서로 독려하며 20년 넘게 함께 글을 써 온 시마을동인들, 언제나 힘이 되고 응원해 주는 가족들, 없는 형편에도 문학전집만큼은 꼭 사주셨던 부모님 고맙습니다. 제 창작의 기원은 나를 아껴주는 주변 사람들에게 있었음을 기억하겠습니다.

낙원장 여관과 주택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자리에 유명 상표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아이들 손잡고 누비고 다녔던 골목, 가끔 길고양이 때문에 놀라고 했던 모퉁이, 낮은 창 너머 곁눈질로 보았던 오밀조밀한 세간들은 이제 볼 수 없습니다. 확성기를 든 낙원장 여관 주인 여자 때문에 창문을 닫아야만 했던 시간도 있었지만, 그녀의 절박한 외침이 제게는 한 편의 소설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외지고 낮은 곳까지 골고루 햇살이 드는 따뜻한 세상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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