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 혁신위와 갈등을 빚어왔던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이틀간의 잠행 끝에 대표직을 물러남으로써 여권의 내년 총선 구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1일 ‘원조 윤핵관’ 장제원 의원이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제적으로 선언한 지 하루만인 13일 김 대표까지 대표직을 물러남으로써 앞으로 혁신위가 요구한 당 지도부·중진·친윤 의원들의 험지 출마나 불출마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당은 김 대표의 퇴진으로 지도부 체제를 비상대책위원회 운영에 무게를 두고 당분간 윤재옥 원내대표 체제를 유지 할 것으로 보인다. 차기 지도부에는 당과 총선에 활력을 불러올 수 있는 인물로 원희룡 국토부장관, 한동훈 법무부장관, 인요한 전 혁신위원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곧 꾸려질 비상대책위원장에는 인 전 위원장이 유력시되고 있고 원 장관과 한 장관은 투트랙으로 총선을 이끌어 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정치 분석가들은 혁신위가 요구한 친윤과 중진들의 불출마나 수도권 험지 출마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의힘이 대표 사퇴 등 이런 위기를 맞은 것은 지난 3월 당 대표 선거 때 윤석열 대통령이 민심 대신 자기 뜻만 따르는 여당 지도부를 선호한 데서 비롯됐다는 것이 대체적 여론이다. 당시 대통령과 다른 목소리를 낸 안철수 후보는 대통령실의 전당대회 개입을 비판했다가 “아무 말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났을 것”이라는 극언을 듣고 포기했다. 나경원 전 의원도 친윤 초선 의원들의 연판장 공격을 받고 출마를 포기했다. 반면 지지율이 최하위였던 김기현 의원이 묻지마 지원에 힘입어 당선됐다. 김기현 대표 선출 후 당 지지율은 계속 30%대의 답보상태에 머무르는 등 당 지도부가 용산의 눈치 보기에만 급급하며 민심을 끌어안지 못했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후 당을 쇄신할 기회가 있었으나 여권은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 최근 방송통신위원장에 윤 대통령의 검사 시절 직속상관이던 김홍일 후보자를 내정해 사적 인연의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까지 자초했다. 또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 내의 과장된 보고 및 역량 부재 논란도 국정의 부정 평가에 추가됐다. 여기다 부산 여론 무마 행사에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 들러리를 세운 것도 여론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런 결과가 내년 4월 총선에서 서울 49개 지역구 중 6곳 정도에서만 우세를 보이고 있다는 최근 국민의힘 자체 조사 보고서가 말해주고 있다. 이 보고서가 언론에 공개되자 여권이 발칵 뒤집혀 졌고 8석을 얻고 대패한 지난 21대 때보다 더 참혹한 열세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의 파문이 커지면서 당 내부에서 김 대표 사퇴 요구가 터져 나오고 혁신위가 요구한 친윤·중진 의원의 불출마 요구안이 힘을 얻으면서 지도부를 압박하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지난 11일로 인요한 혁신위원회가 용두사미로 조기 해산된 데 이어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민심의 방향이 심상찮게 나타나 내년 총선에서 “정부 견제를 위해 야당을 찍겠다”는 의견(51%)이 “정부 지원을 위해 여당을 찍겠다”는 의견(35%)보다 16%포인트나 앞선 여론조사까지 발표되자 당 안팎에서 지도부와 친윤·중진의 불출마 요구가 폭발했다. 윤 대통령 지지율도 32%로 2주 전의 35%에 비해 3%포인트나 떨어졌고 역대 정권에서 우세를 보여온 PK(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 조차 총선 지원론 대 견제론은 38%대 46%로 서울의 39%대 45%와 비슷한 수치를 보였다. 이런 상황이 종합적으로 모여 김 대표의 사퇴는 필연적이었다. 이 차제에 대통령의 국정 운영도 바뀌어야 민심을 돌려세울 수 있다.
- 기자명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대표·언론인
- 승인 2023.12.14 15:44
- 지면게재일 2023년 12월 15일 금요일
- 지면 19면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