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중한 무게·좁은 산비탈…작업 난제 많아
섣불리 손 댔다간 훼손…당분간 복원 힘들듯
작년 5월말 땅-얼굴 5㎝ 떨어진 상태 발견

지난해 5월 말 경주 남산 열암곡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 마애불상 모습. 연합

"부처님 빨리 일어나 온화한 천년의 미소로 이 땅을 열반의 불국토로 만들어 주십시오."

아름다운 형상으로 감탄을 자아내게 했던 경주 남산 열암곡(列岩谷) 마애불의 '천년의 미소'를 보기 위한 불자를 비롯한 국민들의 한결같은 여망이다. 그러나 이들이 여망과는 달리 열암곡 마애불은 지리적·기술적 여건으로 복원이 힘들어 당분간 천년의 미소를 대중들에게 보여 주기가 힘들 것으로 보인다.

△천년의 미소 모습 드러내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상 옆얼굴 모습. 연합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은 지난해(2007년) 5월말 열암곡에서 머리를 아래로 한 채 쓰러진 모습으로 1천300여년만에 발견돼 세상에 알려졌다. 마애불은 발견당시 1천300여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모습으로 보존돼 보는이로 하여금 경이로움을 느끼게 했다.

불상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460cm, 발 아래 연화대좌가 100cm로, 전체 높이 560cm에 이른다.

불상의 육계(부처의 정수리에 상투처럼 불룩 솟아 오른 부분)가 먼저 땅에 닿아 얼굴 부위는 불과 5㎝ 차이로 암반과 충돌하지 않았던 것. 날렵한 불상의 콧날은 마치 21세기에 조성한 불상인 듯 완벽한 보존상태를 보였다.

특히 귀는 발제선(髮際線 머리털이 난 끝선)에서 어깨에 이를 정도로 매우 크고, 평면적으로 처리됐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양식으로 주목된다. 목에는 삼도(三道)를 입체적으로 표현했으며 어깨는 넓고 가슴을 편 당당한 모습이다.

불상 수인(手印 손 모양)은 왼쪽 손등을 바깥으로 하고 손가락은 가지런히 펴서 가슴 위에 얹었으며, 오른손 역시 손등이 밖을 향한 채 엄지손가락을 안으로 감싸고 네 손가락을 가지런히 하복부에 대고 있는 형태다.

법의(法衣)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발목까지 길게 내려오는 우견편단(右肩偏袒) 형식이며, 아래로 내려올수록 간격이 넓어지는 옷 주름은 9개를 표현했다.

두 발은 발끝을 밖으로 향해 벌렸으며, 연화대좌는 5장 꽃잎을 낮게 조각했다.연구소는 이 마애불이 약 4등신(等身)으로 몸에 비해 머리 부분이 크게 표현돼 예불하는 사람이 마애불을 우러러 볼 때의 비례감을 고려해 시각적인 효과를 잘 나타내려고 한 점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복원의 현실적 어려움

남산 열암곡 통일신라 대형 마애불상은 무게 70t에 이르는 대형 화강암(250×190×620㎝)에 부조돼 있다. 따라서 복원을 두고 다양한 방법을 강구했으나 지리적 여건과 마애불 훼손이 우려돼 현 상태에서 보존하기로 잠정 결정을 했다.

발굴을 담당하고 있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바로 세우거나 와불 형태로 돌리는 방안 등 복원 방법을 연구했으나 남산이 세계문화유산지구여서 대형 장비 진입을 위한 도로를 개설하지 못하고 마애불도 안전진단 결과 특정 부분이 훼손될 우려가 있어 복원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작년(2007년) 9월에 암반과 불과 5㎝ 떨어진 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오뚝한 불상 콧날을 공개할 때만 해도 늦어도 11월까지는 와불(臥佛) 형태로 돌려놓겠다고 말했다.

나아가 이 마애불을 원래 있던 자리에 원상태로 세우는 방안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여가 흐른 지금, '5㎝의 기적'이라 일컫는 열암곡 마애불은 여전히 암반을 코 앞에 두고 엎어진 상태로 남아있다.

열암곡 불상 세우기가 이처럼 난관에 부닥친 까닭은 마애불을 새긴 바위가 육중할 뿐만아니라 험준한 산비탈 중턱에 곤두박질 친 상태로 놓여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불상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얼굴과 콧날 부위가 워낙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암반과 떨어져 있어 불상을 세우거나 수평으로 놓으려다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얼굴이 뭉개질 우려가 크다는 점도 발목을 잡고 있다.

70~85t으로 추정되는 불상을 다시 일으켜 세울 길도 막막하다. 70t이면 한국군의 주력 전차인 K1전차(약 50t)보다 무겁다. 이를 들어올리기 위해서는 100t을 들 수 있는 크레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불상이 쓰러진 현장으로 가는 길은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산길 하나 뿐. 중장비를 동원하기 위해서는 일단 길부터 닦아야 할 판이다.

문제는 길 닦기도 쉽지 않는 것. 경주 남산은 천불천탑으로 불릴 정도로 수많은 불상과 탑이 세워진 곳이다. 현재까지 발굴된 절터만 150여 개에 이른다. 길을 내다 또 다른 문화재를 훼손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게다가 마애대불이 자리한 원래 터와 부근 절터에 대한 역사적·고고학적 정보도 별로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마애불과 근처 다른 석불이 놓여진 절터는 원래 서라벌의 유력한 귀족층이 개인 발원을 위해 조성한 명당 원찰의 일부일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3월부터 절터의 정비 조사를 벌이던 와중에 발견된 마애대불의 원래 자리 또한 확실치 않다. 얼굴 등이 온전한 것으로 보아 강한 충격으로 단번에 바로 앞으로 넘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애불 학계 평가

학계도 기적처럼 남은 마애불의 얼굴과 몸체를 온전하게 보도록 복원해 예술사적 가치를 확인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8세기 후반~9세기 초 새긴 것으로 보는 마애불은 옆 얼굴과 정면 얼굴이 크게 달라 관심을 모았다. 언론 공개 당시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날카로운 콧대와 찢어진 눈초리의 권위적인 옆 모습과 달리 정면은 디지털 스캔으로 입체 실측한 결과 온화하기 그지없는 순박한 용모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보는 시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신라 장인이 다듬은 풍성한 볼과 정감 어린 정면 눈의 조형이 흥미로운 대조를 빚은 것이라고 미술사가 최성은 덕성여대 교수는 설명했다. 미남부처로 유명한 경주 남산 보리사 마애불과 카리스마를 지닌 석굴암 불상의 특징을 함께 지녔다는 분석도 있다. 손등을 보인 양손을 가슴과 배에 댄 독특한 손갖춤(수인), 신라 중대 전성기 조각과 하대를 잇는 현실주의 조각의 드문 사료라는 점도 복원론의 배경이 된다.

△복원 신중론 대두

하나 분명한 것은 섣불리 복원을 시작했다가, 뒷감당을 못하는 사태를 낳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복원 모델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해체 도중 딜레마에 빠져버린 전북 익산 미륵사 해체의 전례를 되새겨야 한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남산 일대는 대부분이 사유지다. 현재 불상이 쓰러져 있는 땅도 사유지다. 경주연구소 이주헌 학예실장은 "일단 정부에서 땅부터 사줘야 제대로 보존작업을 벌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군용 헬기를 이용해 불상을 일으켜 세우자는 말도 나왔다. 미군이 보유한 치누크 헬기 2대를 동원하면 불상을 들 수 있다는 것. 그러나 헬기의 진동으로 불상이 훼손될 수 있다는 반론에 없던 일이 됐다.

경주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불상이 워낙 아슬아슬하게 암반과 떨어져 있기 때문에 작업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만일 불상을 세우려다 앞으로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얼굴이 다 갈려버릴 것"이라며 "이 경우 21세기 최악의 발굴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완연한 형태의 통일신라 마애불상은 좀 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