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홈런 상황도

"항상 금메달이 걸린 경기는 TV로만 시청하다 오늘 직접 해보고 금메달을 목에 걸어보니 실감이 안 나네요. 믿어지지 않습니다."

천하의 이승엽(32.요미우리)에게도 금메달이 귀하고 소중했다.

아시아 홈런왕으로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쥐었고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와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각각 한 차례씩 우승 맛을 본 그에게 무엇이 부족할까 싶었더니 역시 금메달이었다.

23일 베이징올림픽 야구 결승전에서 고영민으로부터 공을 받아 병살타를 완성한 뒤 이승엽은 공을 바지 뒷주머니로 슬그머니 가져갔다. 금메달 소원을 이룬 공을 갖고 싶었던 탓이다.

그는 시상식이 끝난 뒤 한국, 일본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엄청나게 시달렸다. 모두가 이승엽의 얼굴만을 바라봤다.

이승엽 오늘도 투런홈런23일 베이징 우커송 야구장에서 열린 야구 결승전 한국대 쿠바 경기 1회초 2사 주자 1루에서 이승엽이 투런 홈런을 치고 있다.

올해 정규 시즌에서 부진했던 그에게서 좀처럼 볼 수 없던 모습이었으나 전날 일본과 준결승전, 이날 쿠바전에서 2경기 연속 결승 투런포를 터뜨리며 대표팀을 금메달로 이끈 그를 언론과 팬이 그냥 둘 리 만무했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 해결사로 돌아와 다시금 스포트라이트를 자신 쪽으로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9경기에서 전승을 거둬 꼭 금메달을 따겠다"는 약속을 이승엽은 지켰다.

본선 풀리그에서 부진했지만 언젠가 한 방을 때려줄 것이라는 김경문 감독과 동료의 변함없는 믿음을 등에 업고 그는 중요한 두 경기에서 대포를 두 방이나 터뜨렸다.

잊을 만 하면 결정적인 순간, 나중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할 드라마를 꼭 한편 씩 쓰는 '이 작가', 천운을 타고난 사나이 이승엽이 대표팀 타선에 '있고 없고'의 차이는 너무도 명확했다.

금메달 시상대에 오른 이승엽23일 오후 베이징 우커송야구장에서 열린 2008베이징올림픽 야구 결승 한국 대 쿠바 경기에서 세계 아마최강 쿠바를 꺽고 세계 정상에 등극한 한국 대표팀의 이승엽이 관중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올림픽 금메달을 향한 이승엽의 여정은 멀고도 험했다. 지난해 10월 자신을 괴롭혀 온 왼손 엄지를 수술했다.

당시 인대를 수술하면서 이승엽은 "재활 탓에 12월 올림픽 아시아예선에는 못 가지만 혹시나 있을 내년 3월 최종예선에는 꼭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대표팀은 일본에 베이징올림픽 직행 티켓을 내주고 3월 막차 탑승을 노릴 수 밖에 없었다.

이승엽은 정말로 대표팀에 왔다. 소속팀 요미우리가 일본 최고 연봉(6억엔 추정)을 받는 이승엽을 순순히 놓아줬다.

2년 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이승엽의 맹활약을 보고 난 뒤 요미우리 4번타자로 낙점했던 하라 다쓰노리 감독은 "그 때처럼 국제대회에서 잘 뛰고 여세를 몰아 정규 시즌에서 잘해달라"며 도리어 이승엽을 격려했다.

이승엽은 최종예선에서 타율 0.478을 때리고 홈런 2방에 12타점을 올리며 김동주(32.두산)가 개인 사정으로 빠진 대표팀에서 주포 구실을 톡톡히 했다.

대표팀이 올림픽 본선행을 확정지은 뒤 김경문 감독의 이승엽에 대한 무한신뢰는 이 때 굳어졌다.

그러나 이승엽은 "고작 시속 130㎞대 느린 볼 투수를 상대로 거둔 성적"이라며 겸연쩍어했다.

그럴 것이 정규 시즌에서 맞설 수준급 일본 투수들의 공을 시범 경기에서 때려보지 못해 그는 시즌을 시작할 마음이 급했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왼손 엄지에 대한 부담을 떨치지 못했고 타격폼이 흐트러졌다. 일본 투수들은 집요하게 이승엽의 약점을 파고 들었고 결국 4월 중순 2군으로 내려갔다.

대표팀 타격 코치이면서 요미우리 2군 타격코치인 김기태씨와 그는 타격폼을 원상 복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실전에 나오지도 않고 그는 열심히 하루 1천개 가까이 스윙을 돌렸다.

'진정한 땀은 배반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좌우명처럼 이승엽의 재활은 더뎠지만 약간씩 회복세를 나타냈고 결국 지난달 말 올스타 휴식기를 앞두고 1군으로부터 승격을 받았다.

'2군에 추락한 주포'라는 비난이 만만치 않았던 데다 1군에서 보여준 성적도 없어 그는 대표팀 합류를 쉽게 택할 수 없었다. 김경문호에 승선하고픈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는 "후배들과 올림픽을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요미우리와 담판을 통해 과감하게 대표팀 합류를 결정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4번의 중책을 맡기는 했으나 이승엽의 컨디션은 좋지 않았다. 11일 우커송야구장에서 첫 훈련을 끝낸 뒤에도 "3번을 때리고 있는 지금 후배들이 나보다 훨씬 컨디션도 좋고 훌륭하다"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었다.

이는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그는 본선 풀리그에서 22타수3안타의 빈타에 허덕였다. 미국전에서 2루타로 딱 한번 팀에 기여했을 뿐 존재감이 미미했다.

그러다 22일 일본전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결승 투런 아치를 쏘아 올린 뒤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동료와 후배에게 그동안 너무 미안했고 볼 낯이 없었다"면서 부끄러워했다. 주포의 책임감에서 흐르는 눈물은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그리고 쿠바전에서도 1회 바깥쪽 공을 결대로 밀어 왼쪽 펜스를 넘어가는 결승 투런포를 꽂았다.

그의 홈런이 나오면 대표팀 투수와 타자 할 것 없이 모두 안심했고 대표팀은 유리하게 경기를 이끈 끝에 너무도 고결한 금메달을 따냈다.

1999년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부터 국가대표팀에 합류한 이승엽이 금메달을 따기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그러나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올림픽 금메달을 같은 값어치로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승엽은 "후배들이 너무 잘 싸워줬다. 금메달은 온전히 후배들의 몫이다"고 공을 동생들에게 돌렸다.

"너무 기쁘지만 본선에서 너무 못 때려 그게 너무 안타깝다"던 그는 "아내(이송정)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2군에 있는 동안 아내의 뒷바라지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부부애를 과시했다.

이어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아버지(이춘광)께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한다.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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