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석장동 예기청소~탑동정수장 8㎞…5차 도보탐사

김동리 소설 '무녀도'의 배경이기도 한 예기청소 봉우리 중턱에서 바라본 형산강. 가까이 동대교가, 멀리 장군교가 보인다.

5차 탐사가 있던 지난달 28일은 아침부터 날씨가 흐렸다. 오전 9시 몇대의 승용차로 나눠타고 포항에서 경주쪽으로 출발했을 때는 겨울을 재촉하는 빗방울이 차창에 흩뿌렸다. 경주시 석장동 석장고개 옆에 경북도 기념물인 '석장동 암각화'가 있었다. 금장교와 동대교(동국대학 입구) 사이인 이곳은 '예기청소(藝妓靑沼)'라 불리는 김동리 소설 '무녀도'의 배경이 되는 곳이기도 했다. '예기청소'를 '애기청소'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탐사를 시작했다.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형산강에서 불어오는 찬 공기가 매서웠다.

예기청소 옆 높은 절벽위에는 금장대(金丈臺)라는 누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누각의 주춧돌만 남아 있었다. 이곳은 경치가 빼어나 날아가던 기러기도 반드시 내려와 쉬어 갔다고 해 '금장낙안(金丈落雁)'이라고도 부른다. 그리 높지 않은 야트막한 산 봉우리(높이 100여m)였지만 중턱에서도 경주 남쪽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왔다. 동쪽으로 금장교, 서쪽으로 동대교와 장군교와 함께 형산강이 시원스럽게 펼쳐졌다. 수심이 깊어서인지 절벽 10여m 아래 강물은 시퍼런 색깔을 띄었다. 이곳에서 3~4km 위(서천교 위)에 형산강 본류와 남천(문천이라고도 하는데 강의 남쪽)이 합쳐지는 지점이 있었다. 즉 형산강 본류는 남천과 대천(남천 윗쪽으로 건천읍 및 서면쪽 하천)이 합쳐지면서 물길이 세어진다. 불어난 물길은 곧바로 흘러내려 오다 이곳 예기청소 바위산 밑에서 휘돌아 하류로 흘러가기 때문에 깊은 소(沼)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곳은 '무녀도'의 주인공 을화가 마지막 굿을 한 뒤 강물에 뛰어 내린 곳으로, 옛부터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전해져 오는 곳이다.

서천교 인근 형산강에서 한 낚시꾼이 1인용 나룻배를 타고 한가롭게 낚시를 즐기고 있다.

즉 '아기들이 죽으면 이곳에서 굿을 하던 곳' '옛날 이곳에 사는 이무기가 해마다 사람 한명씩을 잡아 갔다'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도 끝이 닿지 않는다' 등과 같은 갖가지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이같은 슬픈 사연을 아는 지 모르는 지 한 중년 사내가 아예 한 구석에 텐트를 치고 숙식을 하며 전문적으로 낚시를 하고 있었다. 옆에는 이 남자가 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쓰레기더미가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만약 동리 선생이 살아 이곳을 찾았다면 아마 경주시를 두고두고 욕 할 것이 분명했다.

산 중턱으로 나 있는 등산로를 따라 반대편으로 넘어 갔다. 중간 지점의 수직 암벽에 '석장동 암각화'라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암각화임을 금방 알아 볼 수 없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어렴풋이 나마 검파형(칼의 손잡이 형태) 그림임을 알아 볼 수 있었다. 오래지 않아 비바람에 씻기고, 깎여 나가 알아 보기 힘들 것이 뻔했다.

예기청소 수직 바위 중턱에 있는 '석장동 암각화'. 마모가 심해 일반인들이 알아 보기가 쉽지 않다.

이 바위 그림에 대한 '경주시사'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바위면은 길이 9m, 높이 1.7m 정도 된다. 그림은 이른파 검파형(劍把形) 혹은 방패형 그림 8점을 비롯 석검, 석창, 석촉 모양의 그림 11점, 사람 발자국 4점, 여자 성기 3점, 배 1점, 꽃그림 등 약 30여점이 묘사되어 있다. 검파형 그림은 가운데를 횡선(橫線)으로 구분하여 각각에 성혈(性穴)을 묘사한 것으로 흥해 칠포리 암각화 유적에서 많이 발견되는 이른바 칠포리형이다. 검파형은 사람 혹은 신의 얼굴이나 몸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기자의 눈으로는 한 두가지 형태만 알아 볼 수 있을 뿐 나머지 그림은 마모가 심해 이해하기 어려웠다. 학술적 가치가 충분하다면 보존 대책 또한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터.

형산강 탐사팀이 금장대 중턱으로 나있는 등산로를 따라 걷고 있다.

동대교(동국대학 입구에 있는 교량이라해서 동대교라 지칭)을 지나 장군교(사람 전용다리) 밑 하수구에서 기름띠로 보이는 시커먼 폐수가 형산강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그리많은 양은 아니었다. 도로 건너편 주유소에서 나오는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확실치 않아 그대로 지나쳤다. 동대교~장군교~서천교 북쪽 둔치에도 경주시가 남쪽처럼 대규모 공원을 조성하고 있었다. 흥무공원 바로 앞이며, 지난해까지만해도 이곳은 갈대와 억새가 많았다고 했다. 포장한 오솔길 사이로 억새 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어린 억새(또는 갈대)들이 인공적으로 줄지어 심어져 있었다.

경주시와 마찬가지로 포항시도 현재 신형산교(포스코 교)~포항·경주시 경계간 형산강 둔치를 생태공원(체육공원은 별도 조성)으로 조성하기 위해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경주시는 억새밭 단지로, 포항시는 유채꽃 단지로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생태공원 조성 문제는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왜냐하면 양 도시가 형산강 생태공원 조성을 놓고 포항 및 경주시민 의견은 물론 하천 및 생태 전문가들의 조언(진단)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늦기전인 지금이라도 철저한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 지적이 많다.

장군교 아래 한 배수구에서는 기름띠가 섞인 시커먼 폐수가 형산강으로 흘러들고 있다.

흥무공원 김유신 동산 옆으로 그리 폭이 넓지 않은 서천(西川)이 가뭄 탓인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서천은 서라벌대학이 있는 충효동쪽에서 흘러 내려와 본류와 합쳐졌다.

경주시외버스터미널 서쪽 서천교 아래 강바닥에는 수량이 얼마되지 않고 자갈모래 등 토사가 많이 쌓여 물 흐름(유속)을 방해했다. 경주시 인구가 늘어나고 공장 가동이 많아질수록 형산강 물은 점점 줄어들기 마련. 형산강 중·상류 역시 우리나라의 다른 하천들 처럼 조금만 가물어도 마르는, 즉 건천화(乾川化)되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서천교 옆 둔치에서 수백마리의 까마귀떼가 군무를 이루며 하늘로 날아 올라 장관을 이뤘다.

서천교 서쪽 네거리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니 선도산(380m)이 저만치 가까이 있고, 서쪽 저 멀리로는 벽도산(436m)이 보였다. 경주시가지와 가까운 선도산은 역사적 유적과 전설을 많이 간직한 산으로 유명하다. 경주시가지 서쪽에 있다해서 서악(西嶽), 서술(西述), 서형(西兄) 또는 서연(西鳶) 등으로도 불리는 산이다. 산 위에는 형산강과 관련 있는 '서형산성지(西 兄山城址)'가 있다.

서천교를 지나자 다시 불법 경작 텃밭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서천교에서 1km 정도 위 왼쪽으로 남천(南川)이 보였다. 남천은 문천(蚊川)이라고도 하며, 토함산 서북쪽 계곡에서 시작되어 동산령(東山嶺) 서남계곡의 신계(薪溪)와 마석산 동쪽의 시리계(矢里溪) 등을 합하여 월성 앞을 지나 형산강 본류와 합쳐진다.

형산강환경지킴이 오주택회장은 "경주가 신라의 도읍이 될 수 있었던 요건 중 하나가 바로 형산강입니다. 즉 경주를 끼고 흐르는 형산강은 남쪽 백운산에서 내려오는 본류와 대천, 남천, 서천 등 지류와 합쳐 신라의 젖줄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형산강이 없었다면 도읍이 탄생할 수 없었지요. 따라서 경주시가지를 흐르는 각종 하천은 그 주변 주민들의 생활상(문화)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서천교와 탑동정수장 사이에 이르자 점심때가 되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고 날씨가 추워 식사 장소를 걱정하던 중 다행히 인근 시설채소 비닐하우스 막사를 이용할 수 있었다.

이곳 주인 김상규씨 부부는 탐사팀에게 자신들의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저농약 채소라며 상치, 쑥갓, 신선초 등 각종 채소를 씻어 먹어라고 내놨다. 김씨는 "우리 농장이 형산강변의 시설채소 농장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다"며 "경주뿐만 아니라 부산, 울산, 포항 등으로 판매되는데, 아무리 중국산이 밀려들어와도 제 하기 나름"이라고 말했다. 형산강옆에서 붙박고 사는 전형적인 농민이었다.

이날 점심은 신선한 채소 쌈에다 김씨 부부의 아름다운 마음씨가 더해져 잊지못할 점심으로 기억될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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