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역사·문화 체험에 산림욕은 덤…'한국판 산티아고 순례길'

탐방객들이 수곡리 하천길을 걷고 있다.

울진에서 충남 태안까지 한반도 몸통을 가로지르는 ‘동서트레일’ 개통을 알리는 출발 신호가 울렸다.

국내 최장 걷기 길이며, 자연을 걸으며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와 숲 속 휴식처 등 야심 찬 계획에 맞춰 오는 2026년 최종 완공될 예정이다.

울진은 최종 55구간으로 출발점인 동시에 종점이고, 지난 대형 산물 피해로 상처받은 숲을 복원한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동서트레일 울진 시범구간 개통식.

△국토대장정 출발지 울진.

한국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혹은 미국 서부 장거리 트레일(pacific crest trail)로 불리는 ‘동서트레일’의 동쪽 출발점인 울진 구간이 일부 개통됐다.

동서트레일은 울진군에서 충남 태안군까지 5개 시·도를 거쳐 849㎞에 달하는 한반도 횡단 숲길이다.

경북 구간은 275㎞로 전체의 32%에 해당한다. 이중 울진은 출발지면서 도착지가 될 수 있다.

이제 첫 걸음을 띤 동서트레일은 지난해 울진 시범구간 20㎞를 준공했다.

총 55개 구간으로 구성되며, 평평한 숲길과 언덕, 산길 등 다양한 코스로 구성된다.

울진구간은 망양정을 출발해 수산교→수곡대교→행곡리 처진 소나무→남사고 유적지→한티재→하원리 중섬교를 따라 걷는다.
 

동서트레일 울진구간에서 절경을 볼 수 있는 망양정 전경.

△곳곳에 펼쳐진 아름다운 자연과 유적지.

국토 최동단 출발지인 망양정은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 일품이다.

옛 관동지방(강원도)의 8가지 명승지를 뜻하는 관동팔경에도 올라있다.

울진은 지금은 경상북도지만 관동팔경이란 말이 만들어졌던 당시에는 강원도였다.

특히 조선 선조 때의 시인인 정철은 가사인 ‘관동별곡’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찬양하기도 했다.

시원한 동해 바람을 맞으며 걷기 시작하면 곧이어 왕피천 하류를 만난다.

왕피천은 옛날 실직국(悉直國) 왕이 피난 왔다고 해서 마을 이름을 왕피리,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을 왕피천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맑은 하천에는 멸종위기종인 수달은 물론 연어와 은어 등 다양한 종이 서식하고 있다.

왕피천 주변에는 하천을 하늘에서 건너는 케이블카와 대형 친환경 공원도 마련돼 있다.

한참을 걷다 보면 행곡리 처진 소나무를 만난다.

1999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으며, 매우 희귀한 소나무로 수령이 약 350년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 15m, 가슴높이 둘레 2m, 뿌리목 둘레 3.2m, 가지 길이 동서 15.5m, 남북으로 15m, 그리고 가지가 아래로 축 늘어져 있어 전체적인 형태는 속리산의 정이품송을 닮았다.

울진군이 발간한 소나무 인문 사전에도 언급됐으며, 뛰어난 우량 유전자 보호를 위해 DNA를 추출해 복제나무를 만들어 보존하고 있다.

길을 틀어 남사고 유적지에 다다른다. 격암 남사고 선생은 동양의 노스트라 다무스로 불린다. 조선 중기 학자인 격암 선생은 풍수학에 조예가 깊었다.

대표적인 저서인 격암유록은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이 책에는 격암 선생이 예언해 실현된 임진왜란과 문정왕후의 죽음, 선조의 즉위, 광해군의 즉위 등이 실려있다.

평탄한 길을 지나 맑은 물이 흐르는 불영계곡 하류를 만난다.

하천 바닥을 걸으며 자연 속에 들어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마음속 힐링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듯하다.

주변 산에는 금강송으로 우거져 산림욕은 덤으로 얻어간다.
 

탐방객들이 동서트레일 울진 구간을 걷고 있다.

△걸으면서 자아를 찾아가는 순례길로 성장기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과 미국 pacific crest trail(미국 서부 장거리 트레일)은 세계 양대 순례길로 손꼽힌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가톨릭 3대 성지로 불린다.

1000년의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멋진 풍경과 걸으면서 오랜 세월 제자리를 지켜온 대성당들이 주축이 돼 신자들의 신앙과 믿음을 연결해 온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걷고 쉬면서 이국적인 문화를 체험하고, 아름다운 대자연을 몸으로 느끼며 삶의 방향을 정립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로키산맥을 따라 멕시코 국경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4285㎞에 달하는 야생의 순례길인 미국 서부 장거리 트레일은 험한 길을 걸으며 극한의 고통을 이겨낸다.

몇 달에 걸쳐 완주하거나 코스를 나눠 걷는 이들은 저마다 삶의 혜안과 잃어버린 자아를 찾기 위해 도전하고 있다.

동서트레일 또한 탐방객이 쉬어갈 수 있는 거점 마을 90개와 야영장 43곳도 만들 예정이다.

걸으면서 지역의 문화를 느끼며,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코스가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김형소 기자
김형소 기자 khs@kyongbuk.com

울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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