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설] 포스코 창업정신

박정희 국가재건회의 의장이 측근들의 재산 상황을 조사한 후 비서실장 박태준을 불러 물었다. “임자는 장군이었으면서 어째 집 한 간이 없소?” 박 비서실장이 “군인 월급으로는 집을 살 수 없었습니다.”라고 하자 특별하사금을 주어 집을 마련케 했다. 박 비서실장은 서울 아현동에 집 한 채를 샀다. 그는 40년간 그 집에 살다가 2000년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 그 집조차 처분해 사회에 환원했다.

청암 박태준은 무보수 명예회장으로 지냈다. 포스코 측에서 생활비라도 드리겠다고 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청암은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포항제철소 창업 멤버들이 어렵게 사는 것을 가슴 아파했다. 그는 종종 “창업 1세대 중 어렵게 사는 사람이 많아 안타깝다.”고 했다. 1968년 무렵 창업 멤버 34명의 봉급은 몇 푼 안 됐고, 그나마도 들쑥날쑥했다. 5년의 건설 기간 동안 수익이 전혀 없다가 1973년 1고로를 가동하고 나서야 이익을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차기 회장 선임 절차를 앞두고 포스코 임원과 이사들의 해외 초호화 이사회가 드러났다. 지난해 8월 캐나다 이사회를 열면서 6억8000만 원을 썼다. 일주일 식사비로만 1억 원을 지출했다. 2019년 중국 베이징에서의 호화판 이사회와 관련해서도 시민단체가 전·현직 임원과 사외이사들을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고발하는 등 법정 다툼으로 번지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 2001년 스톡옵션제를 도입해 2006년 폐지될 때까지 회장을 비롯한 임원 80여 명이 주식 70만 주를 나눠 가져 돈 잔치를 벌였다가 박 명예회장의 노여움을 시기도 했다.

오는 21일 장인화 차기 회장이 주주총회에서 승인을 받을 전망이다. 장 차기 회장은 제일 먼저 논란이 된 이사회부터 선진화해야 한다. 1세대 선배들의 애국심까지는 아니라 해도 포스코가 민족 피의 대가인 1억1948만 달러 대일청구권자금으로 설립된 근원을 생각한다면 국민 기업으로써의 책임과 역할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이동욱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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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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