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 가득한 '들꽃 향기·풀 내음' 벗이 되는 아름다운 길

흑석사 전경.
“등산은 운동이나 도전이 아닌 명상을 위한 산책이다”(Frank S. Smythe)라는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 있다.

영주시는 시내 곳곳에 숲과 공원, 걷기 좋은 산책로가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시내 가까운 곳에 걷기 좋은 숲길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산면 돗밤실 둘레길도 그중 한 곳이다.

시내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돗밤실 둘레길’은 둘레길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리 가파르지도 그리 멀지도 않아 산책하듯 걸을 수 있어 부담 없는 트레킹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출발점과 도착 지점이 다른 일반 트래킹 코스와 달리 원점회귀형으로 이어져 있어 승용차로 이동하기에도 용이하며 행정복지센터 인근 주차장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이산면 돗밤실 둘레길을 걷는 모습
돗밤실은 예부터 이 지역에 꿀밤이 많이 자생해 이름 붙여진 곳으로, 둘레길은 돗밤실을 중심으로 한 바퀴 휘 둘러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등산로는 이산면 행정복지센터를 시작으로 망월봉 ▷약수봉 ▷흑석 쉼터 ▷제비봉 ▷송천교 ▷명학봉 ▷묘봉 ▷이산파출소까지 5.6km로 이어지는데, 도보로 약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이산면 행정복지센터 뒤로 보이는 계단을 따라 산으로 오르면, 아치형의 조형물이 등산로의 시작 지점임을 알려준다. 등산로 초입에 들어서면 종탑이 나타나는데, 1950년대 말 이산지서에서 소방대를 소집할 때 사용하던 종으로 이산면민의 생명과 재산을 구해준 종을 보관해 오다 둘레길을 조성하면서 행복의 종이라 이름 짓고 이곳에 설치했다.

한 번 울리면 장수, 두 번 울리면 건강, 세 번 울리면 부자, 네 번 울리면 출세, 다섯 번 울리면 자손이 번창한다고 이야기 붙었다.

첫 번째 코스인 망월봉에는 야생화가 심겨있는데, 각종 꽃 이름표를 보며 곧 피어날 꽃들을 상상하며 걷는 재미가 있다.

산등성이는 낮지만 밤나무, 참나무, 소나무가 힘차게 뻗어있어 도심 속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자연의 아름다움을 천천히 가슴에 담는 시간을 선물한다.

특별한 체험거리가 없더라도 트레킹을 즐기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감을 얻을 수 있다.

망월봉에 이어 약수봉을 지나면 산과 산을 잇는 출렁다리가 나타나는데, 도로 위로 난 출렁다리를 통해 안전하게 트레킹을 이어갈 수 있다. 출렁다리를 지나 건너편 산길을 걷다 보면 제비봉과 흑석사에 닿게 된다.

흑석사에 위치한 흑석사마애삼존불상
△ 국보와 보물을 품은 의상이 창건하였다는 사찰 ‘흑석사’.

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 ‘흑석사’가 나타난다.

흑석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로, 임진왜란 때에 소실돼 폐찰로 내려오다가 8.15광복 후 승려 김상호(金祥鎬)가 소백산 초암사(草庵寺)의 목재를 옮겨와 중창했다.

‘흑석사’라는 사찰 명칭은 두 가지 유래가 있다. 첫 번째는 흑석사 부근 바위 빛깔이 대개 검은 데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며 두 번째로는 흑석사 동쪽으로 600m쯤 내려가면 ‘흑석’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흑석마을 서남쪽에 거대한 검은 바위가 있어 사찰 이름을 ‘흑석사’라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흑석사의 가람 구조는 극락전, 보궁, 승방, 심검당, 환희전, 종무소, 요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식 맞배지붕 구조로 국보인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주불로 하는 삼존불을 봉안하고 있다. 흑석사에는 국보 1점, 보물 1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점이 소장되어 있다.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국보 제282호)은 1458년(세조 4)에 세조의 명으로 조성된 불상인데, 1990년대 불상의 복장에서 복장기와 보권문, 전적 4종과 직물, 기타 복장유물이 발견되어 국보로 지정됐다.

특히 영주 흑석사 아미타여래좌상은 왕실에서 직접 조성한 완성도 높은 예술적인 불상으로 조선시대 불교 미술사에 관해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 중 하나로 손꼽힌다. 또 흑석사 복장유물은 개별적으로도 하나하나가 국가 보물급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흑석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681호)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기와집 구조 보호각에 봉안하였다. 원래 흑석사 부근에 매몰되었던 것을 발굴해 봉안하였는데, 발굴 당시 마모가 심하였으나 현재는 석회로 보완해 놓았다. 이 밖에도 자연 상태 바위에 새긴 흑석사 마애삼존불상이 소장되어 있어 아름다운 풍경에 역사적 의미를 더한다.

돗밤실 둘레길 이정표를 보고 있는 모습
△ 자연의 싱그러움 느끼며 호젓하게 걷는 길.

맥문동, 바위취, 수호초, 꽃잔디, 아까시나무, 진달래, 산초나무, 돌복숭아, 리기테다소나무까지. 돗밤실길은 작은 규모지만 갖가지 나무와 약초, 오르막, 사찰, 바위 등이 지루하지 않게 이어지면서 큰 산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어 큰 산에 뒤지지 않는 재미를 선사한다.

장수를 상징하는 망월봉, 건강을 기원하는 약수봉, 박씨를 물어다 주는 행운의 제비봉을 지나면, 출세를 의미하는 학에서 유래된 명학봉, 마지막으로 거미줄처럼 얽힌 산세와 자손이 번창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묘봉으로 등산로가 끝을 맺는다.

호젓한 산행의 끝자락인 이산면 치안센터를 지나면 마을을 보살펴준다는 커다란 사모(紗帽)바위가 등장하는데,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니 하산길에 지나치지 말고 들러 행운까지 잡아도 좋겠다.

돗밤실 둘레길 초입 소나무밭을 지나고 있는 모습
영주시 이산면은 돗밤실 둘레길과 이몽룡 영주유적지 계서정에서 성이성 묘역 둘레길도 함께 둘러볼 수도 있다.

일상에서 스쳐 지나던 풍경도, 늘 맡아오던 공기의 향기도 산에서는 모든 것이 특별해진다. 봄은 해마다 오는 것이지만 산에 와야 봄이 왜 봄인지 알게 된다. 찾는 자에게만 허락하는 풍경, 땀 흘린 자에게만 허락되는 은밀한 꽃향기를 맡으러 돗밤실로 떠나보자.

돗밤실 둘레길 : 경북 영주시 이산면 이산로 201

△ 퇴계의 숨결이 살아있는 ‘이산서원’.

이산면에는 돗밤실 둘레길 외에도 꼭 가보아야 할 곳들이 많다. 선비의 고장 영주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부석사와 소수서원을 비롯해 유서 깊은 명소가 많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 학문의 연구와 선현의 제향을 위해 건립한 사학 교육기관인 서원도 여럿 있는데, 그중 영주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서원인 이산서원이 이산면에 위치해 있다.

이산서원은 명종 13년(1558)에 옛 영천군 지역에서 처음으로 건립된 유일한 사액서원으로, 현재 경상북도 기념물 제166호로 지정되어 있다. 퇴계 이황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해 이곳에 위패를 모셨으며, 1574년 ‘이산’이라 사액되어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업무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훼철되어 8칸의 이산 서당만 남아있다가 1996년 복원됐다.

이산서원을 건립할 때, 서원의 이름과 건물의 명칭, 운영 규칙인 원규 등은 모두 퇴계 이황 선생이 정했으며, 이때 정한 이산 서원의 원규는 우리나라 서원 원규의 시초가 되어 이후 영남지방 서원의 기본 운영 규정으로 널리 활용됐다. 퇴계 학문을 집대성한 성학십도(聖學十圖)의 판각을 보관했던 서원으로, 우리나라 서원의 형성 과정을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다.

이산서원 : 경북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 768-2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아름다운 ‘괴헌고택’.

서원을 만나보았으니, 이제 고택을 만나볼 차례. 영주 괴헌고택은 이산면행정복지센터에서 9.34㎞ 거리에 위치한 이산면 두월리에 있던 조선 후기 전통가옥으로, 영주댐 건설에 따라 현재는 영주댐 문화관광 체험단지로 이전, 복원되었다.

괴헌고택은 입향조의 8대손이 1779년에 외풍을 막아주고 낙엽 등이 모인다 해 잘 산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소쿠리형’ 명형국지의 한 가운데 지은 집으로, 옛 모습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사당, 사랑채, 안채가 유교 사상에 입각한 위계질서에 따라 각기의 고유 영역을 이루며 배치되고 구조 양식도 이 위계에 따라 격조를 조금씩 달리하고 있으며, 쪽마루, 수납공간, 환기창, 고 창 등이 발달한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제작 연대 미상의 오래된 성주 단지가 온전하게 보존·전승되고 있고, 큰 사랑방과 안방의 다락에 지혜롭게 위장해 둔 은밀한 비밀 피신처는 일제강점기 등의 시대상을 읽게 하는 흔치 않은 실례를 보여준다.

영주댐 전통문화 체험단지에는 괴헌고택을 비롯해 덕산고택, 월춘정, 동강정 등 지역의 오래된 고택을 이전 복원한 곳으로, 새로운 관광지로 모습을 갖춰가고 있는 영주댐과 함께 들러봄직 하다.

괴헌고택 :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 381

권진한 기자
권진한 기자 jinhan@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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