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문예대학 이근식 선생

사랑과 시가 가득한 교실, 거기에 평생 시를 사랑하고 인생을 사랑한 이근식 시인의 삶이 녹아 있다. 이 선생이 경주문예대학에서 시에 대해 강의하고 수강생들과 토론하고 있다.

우리나라 시단에 팔십 넘게까지 활동하는 분이 몇 분 있다. 이근식(83) 선생도 그 중의 한분인데, 그 분들 중에서도 제일 정정하게 활동하는 분이 아닐까 싶다. 원로로서, 지방문단의 거목으로, 그동안 여섯 권의 시집을 냈고, 경상북도 문화상, 한국예총 예술문화상. 경북문학상, 경주시 문화상 등 많은 상을 수상했고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선생의 이름만 듣다가 인터뷰를 위해 뵌 선생은 맑고 강직해 보였다. 아직 꼿꼿한 자세는 오랜 세월 비바람에도 굳건하게 자라 고목이 된 대나무를 연상하게 했다.

선생에 대해 얘기하려면, 경주문예대학을 빼놓을 수 없다. 문예대학 동창회장 변상달씨와 포스코에서 포스문학을 이끌고 있는 박종구 사무국장이 선생을 모시고 나왔다.

그들의 말 한마디에서도 은연중 선생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배어있는 것이 느껴진다. 선생은 경주문예대학을 창설한 후 지금까지 시를 강의하며 봉사한다.

-경주문예대학은 어떤 계기로 열게 되었습니까?

"학교(경주 근화여고)를 퇴직하고 나니, 내가 살아오면서 사회에서 참 많은 혜택을 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 받은 혜택에 보답을 해야겠다 싶었지요. 그래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다가 문예대학을 열게 된 것이지요.

-그 당시에는 경주에 문학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까?

"없었지요. 시나 수필, 소설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은 있어도 배울 곳이 없었지요. 그 당시 경주문화원 원장(고 이상렬)의 협조로 경주문화원에서 처음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

동창회장 변상달 씨가 덧붙였다. "벌써 17년째 이십니다. 지금껏 배출된 인원이 400여명이고 각 분야에 등단한 분만 50여명 됩니다. 지방에서 이렇게 역사가 깊고 많은 문인을 배출한 문예대학은 없을 겁니다. 선생님의 강의가 어떤 젊은 강사보다 명쾌하고 열정적이셔서 사람들이 많이 모입니다. 선생님은 경주박물관대학의 창립위원이시기도 합니다."

-문예대학에서는 문학공부 이외에 다른 행사도 하십니까?

"예, 봄 가을 문학기행을 하고 스승의 날, 송년의 밤 행사도 하는데 1기 졸업생들도 선생님을 뵈러 참석하지요. 동창회도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스승의 날에도 각 지역에 사는 졸업생들이 지역특산물을 들고 선생님을 뵈러 옵니다. "

-선생님은 아직 정정하셔서 오래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언제까지 강의하실 것인지요?

"인제 그만두어야지요. 내년에 그만두려고 합니다. 나이 들면서 분수에 넘치면 안되지요.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오늘날 경주문예대학이 이렇게 발전하게 되었으니 나는 이제 이 사람들에게 맡기고 쉬어도 될 것 같습니다." 목소리가 아직 카랑카랑하다. 강의시간이 되어 다른 학생들과 함께 선생의 시(詩) 강의를 들었다.

오늘 감상할 시는 문인수 시인의 '쉬'라는 시다. 환갑이 지난 아들이 아흔이 넘은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뉘는, 흐뭇하고 따뜻한 내용의 시다.

사랑과 시가 가득한 교실, 거기에 평생 시를 사랑하고 인생을 사랑한 선생의 삶이 녹아 있다.

선생은 내년에 그만두려고 하지만, 세대를 뛰어넘는 언어의 교감(交感)과, 강의실에 가득한 시에 대한 열기는 선생을 쉬게 할 것 같지 않다.

태사공 사마천(司馬遷)은 "권세와 이익을 좇아 모인 자들은 그것이 다하면 관계 또한 성글어진다"고 했다. 권세와 이익을 좇아다니는 사람들 틈에, 시로 이어지는 원로 시인과 제자들의 아름다운 관계야 말로 한 편의 시가 아닐까?

두 시간, 선생과 함께 시를 공부하고 나오니 잡다한 세상의 소리에 시달리던 귀가 씻겨진 듯 산뜻한 느낌이다. 선생이 늘 건강하셔서 세상에 오래 시를 전파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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