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돌리는 곳마다 자연이 그린 산수화에 감탄사 절로

천연기념물 제294호 감천면 천향리 석송령.

△선몽대 일원

명승 제19호인 예천군 호명면 선몽대 일원(仙夢臺 一圓)은 예천읍지에 수록된 약 450여년의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곳으로, 한국의 전통적 산수미를 보여주는 내성천 유역의 대표적 경승지의 하나로 손꼽이고 있다.

지형은 풍수상 평사낙안형(平沙落雁形)으로 내성천의 백사장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내고 있으며, 이 곳에 위치하는 선몽대 숲은 역사적으로 유래가 깊은 수해 방비림, 방풍림, 수구막이 숲 및 비보림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선몽대는 퇴계 이황의 종손이며 문하생인 우암(遇巖) 이열도(1538~1591) 공이 1563년 창건한 정자로서 '선몽대'의 대호 세글자는 퇴계 선생의 친필로 알려져 있으며, 정자 내에는 당대의 석학인 퇴계 이황, 약포 정탁, 서애 류성룡, 청음 김상헌, 한음 이덕형, 학봉 김성일 등의 친필시(국학진흥원 보관)가 목판에 새겨져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 곳으로 선인들의 유교적 전통공간으로서 역사적 의미가 큰 곳이다.

명승 제51호 용문면의 초간정 원림

△초간정 원림

명승 제51호 예천군 용문면의 초간정 원림(草澗亭 園林)은 조선 선조 대 학자인 초간 권문해(1534~1591)가 오랜 관직생활과 당쟁에서 벗어나 자연을 즐기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창건한 정자로 맑은 계곡과 푸른 소나무 숲 사이의 암석 위에 아담하게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 사림의 은일(隱逸)생활과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바탕으로 하는 선조들의 자연관을 보여주는 명승지로 바위를 휘돌아 흐르는 계류가 시원한 운치를 자아내는 등 경관적 가치가 크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110호 용문면 죽림리 향나무

조선 선조(宣祖) 15년(1582)에 처음 지어진 초간정은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린 것을 중건했으나, 인조(仁祖) 14년(1636)에 다시 불타는 등 수난을 거듭했는데, 지금의 건물은 초간의 현손이 1870년 중창한 것으로 기암괴석과 주변의 경관이 조화를 이뤄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천향리 석송령

천연기념물 제469호 금당실 송림

천연기념물 제294호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석송령(泉香里 石松靈) 은 소나무의 한 품종이며, 가슴높이의 줄기둘레가 4.2m, 키가 10m에 이르는 큰 나무로서, 나이가 약 600여년이 넘었다.

일명 반송(盤松) 또는 부자나무라고도 불리며, 현재도 마을의 단합과 안녕을 기구하는 동신목으로 보호받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약 600여년 전 풍기지방에 큰 홍수가 졌을 때 석관천(石串川)을 따라 떠내려 오던 것을 지나가던 과객이 건져 이 자리에 심었다고 하며, 그 후 1930년경에는 당시 이 마을에 살던 이수목(李秀睦)이란 사람이 영험 있는 나무라는 뜻으로 석송령이라는 이름을 짓고, 자기소유의 토지 6천600㎡를 상속 등기해 줘 이때부터 이 나무는 수목으로서는 드물게 토지를 가진 부자나무가 됐다고 한다.

명승 제19호 호명면 선몽대 일원.

△금남리 황목근

용궁면 금남리의 천연기념물 제400호 황목근(黃木根)은 느릅나무과의 한 품종이며 가슴 높이의 줄기둘레가 3.2m, 키가 15m에 이르는 큰 나무로서, 나이는 약 500년으로 추정된다.

마을의 단합과 안녕을 기구하는 동신목으로 보호받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5월에 나무 전체가 누런 꽃을 피운다 해 황씨 성을, 근본있는 나무라는 뜻을 따 목근을 붙여 줬다. 또 국내에서 가장 많은 토지를 보유한 담세목(擔稅木)이다.

△금당실 송림

천연기념물 제469호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의 금당실 송림(金塘室 松林)은 천재나 전쟁에도 마음 놓고 살 수 있다는 땅을 일컫는 십승지지의 한군데로 알려져 있는 금당실 마을의 수해방지와 바람막이를 위해 조성된 송림이다.

금당실 서북쪽에 위치하는 숲으로 오미봉 밑에서부터 용문초등학교 앞까지 약 800m에 걸쳐 소나무 수백그루가 울창하게 조성돼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으며, 주변에 학교, 농경지 및 민가와 인접돼 있다.

금당실 송림은 상금곡동이 낙동강 지류인 복천과 용문사 계곡과 청룡사 계곡으로 흐르는 계류가 만나는 삼각주를 형성하고 있어 해마다 여름철 하천물이 범람하므로 수해방비와 겨울철 북서한풍을 막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조성했었다.

1863년 동학을 전파하던 최제우가 체포돼 처형되는 과정에서 민심이 동요돼 큰 나무들이 일부 벌채되고, 1894년 동학혁명 당시 노비구출 비용 마련을 위한 나무 벌채가 심해 1895년(고종 32년) 당시 법무대신이던 이유인이 금당실에 99칸의 집을 짓고 거주하면서 이 숲을 보호해 왔다고 한다.

오랜 기간 마을 주민들이 마을 보호를 위해 이 숲을 보호하고 관리하여 왔을 뿐만 아니라, 마을의 휴식처와 행사의 중심지로 활용되는 등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큰 마을 숲이다.

△죽림리 향나무

경상북도 기념물 제110호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향나무(竹林里 香木)는 나이 약 300년으로 추정되는 노목으로 높이 10m, 가슴 높이의 둘레가 0.6m이고 이 지방에서는 울향(鬱香)이라 부르는 나무이다.

이 나무를 울향나무라 부르게 된 것은 이 마을을 개척할 때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돼 울릉도로 유배당했던 권오상(權五常)이 돌아오면서 가져다 연못가에 심은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지금의 향나무는 처음에 심었던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대수마을과 영고성쇠를 함께 한 전설의 나무이다.

△사부리 소나무

예천군 용문면 사부리 소나무(沙夫里 松木)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 111호로 소나무의 일종으로 통행에 지장을 주어 뒤쪽 몇 가지가 잘려 균형을 다소 잃었을 뿐 모양이 공중에 양산을 펼쳐 놓은 듯 장관이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이 벼루 속에 솔씨를 가져 와서 심었다는 전설의 이 나무는 매년 정월 대보름날에 동제를 올리며 마을의 안녕을 빌던 나무로 보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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