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도 직장도 모두 잃고…남은 건 상처뿐

▲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1등급 판정을 받은 에천읍의 A모씨가 본지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 피해자들의 한 맺힌 절규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정부와 국회가 뒤 늦게 사건의 심각성을 알고 진실을 밝히며 관련 기업들 처벌에 나섰다.

그러나 많은 피해자들은 가족과 이별하고, 직장을 떠나고, 모든 것을 잃은 후 정부의 뒤늦은 조사에 눈물로 원망하며 가슴을 치고 있다.

이 사건으로 200여명이 사망했으며, 피해자만 1천800여명이 넘는다.

정부가 허가해준 가습기 살균제에 의해 영유아, 산모, 노인 등 국민들이 죽어가는 데도 2012년 사법기관은 유해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대기업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

경북 예천군 백전리에도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사랑하는 첫 아이를 잃고, 남편과 이혼한 후 친정으로 돌아와 몸과 마음에 상처만 안고 살아가는 A(여 36)씨가 살고 있다.

"가끔씩 가쁜 숨을 내쉬며 호흡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내 몸 하나 망가지는 것은 아무렇지 않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마냥 웃던 아이가 어느 날 말라가며 숨 쉬기가 어려워지면서 저세상으로 떠났다. 그것도 버젓이 대한민국 어느 곳에서나 살 수 있는 가습기의 살균제에 의해서 말이다"고 울분을 터트렸다.

A씨는 현재 1년에 한번 서울의 아산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고 있다. 그녀의 병명은 간질성 폐렴이다. 40개월 된 첫째 아이를 저세상으로 데려간 무서운 병이다.

2009년과 2010년 12월부터 겨울 내내 A씨는 '세퓨' 라는 중소기업체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2011년 3월 갑자기 첫째아이(3살)가 살이 빠져 병원을 찾은 A씨는 아이의 피검사에서 폐렴이라는 진단을 받고 입원치료를 했으나 호전되지 않고 얼마 되지 않아 아이가 숨졌다.

당시 A씨는 둘째아이를 임신한 상태였으며, A씨 또한 검사결과에서 아이와 같은 간질성 폐렴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병인 줄도 모르고 시댁 가족들은 A씨 집안의 유전병인줄 알고 모진 말로 상처를 주며 치료중인 A씨를 힘들게 하기도 했다. 결국 A씨는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 백년을 약속했던 남편과 이혼을 한 후 둘째 아이와 친정으로 돌아왔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든다"는 A씨는 현재 보험설계사 일을 하고 있다.

A씨는 간과 폐를 이식한 환자들이 먹는 약(18알)을 2012년부터 하루에 2번씩 복용해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점차 호전돼 15알에서 14알로 조금씩 줄여서 의사의 진단에 따라 잠시 약을 중단하고 있다고 한다.

A씨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1등급 판정을 받았지만 영유아였던 첫째아이의 죽음에 대해서는 "정부가 아무런 보상과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며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A씨는 "사람이 200여명 가까이 정부가 허가해준 살균제로 죽었습니다. 세월호 사건 때는 일사천리로 정부가 나서서 보상을 해주고 정치권에서 나서 유족들을 위한 보상 등이 이뤄졌는데 죽은 우리아이에 대해서는 보상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아무 잘못 없이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가습기 살균제에 의해 어린 아이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이 떠올라 아직도 가슴에 한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가족의 건강을 위해 사용한 살균제가 아이를 죽이는 독인줄 알았을 때 너무나 아이에게 미안하고 미안했다"며 "정부에서 피해자들의 빠른 보상마련과 관련 기업들의 제대로 된 처벌을 내려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상만 기자
이상만 기자 smlee@kyongbuk.com

경북도청, 경북경찰청, 안동, 예천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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