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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오디세이] 9. 호원사지
[삼국유사 오디세이] 9. 호원사지
  • 김동완 역사기행작가
  • 승인 2020년 07월 08일 18시 22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7월 09일 목요일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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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반한 호랑이처녀 기린 절터에 망초꽃만 무성
호원사터. 망초꽃이 뒤덮고 있다.
호원사터. 망초꽃이 뒤덮고 있다.

이 난감한 일을 ‘경주황성공원에서 호원사지(虎願寺址) 찾기’라고 해야겠다. 황성공원은 한 달에 한두 번은 찾는 곳이다. ‘인디언새’라고 불리는 후투티를 보러 가기도 했고 다람쥐를 보고 싶으면 훌쩍 찾아가기도 했다. 비 오는 날에는 숲 속에서 상수리나무 이파리를 두드리는 빗소리를 듣는 호사를 즐기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세월이 꽤 오래됐다.

호원사지 입구의 김유신 장군 동산.

황성공원과 그 일대를 잘 안다고 믿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호원사지를 찾아가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호원사지였던 분재농원이 없어졌다. 농원으로 가는 좁은 길은 차 두 대 이상 들어갈 정도로 넓은 길이 생겼고 주말농장이 들어섰다. 한쪽에는 컨테이너로 만든 사무실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사사성장(寺寺星張)’하고 있다. 가지가 주렁주렁 달린 밭과 눈부시게 고운 도라지 꽃무리 사이를 샅샅이 ‘수색’했으나 탑재는 보이지 않았다. 내 행동을 수상하게 여긴 노인이 밭에서 나오라고 고함을 치지 않았다면 나는 글을 쓰는 지금까지 땅강아지처럼 가지와 도라지밭에 엎드려 석탑 옥개석을 찾아 헤매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황성공원 내 독산.

호원사는 주말농장의 서쪽에 있었다. 하얀 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처음에는 구절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곧 의구심이 들었다. 공자도 의심이 나면 절실히 물어야 한다고 했지 않았던가. 아무리 지구가 뜨거워져 이상기온이 이상할 게 없는 시절이라 하더라도 가을에 피는 구절초가 여름에 피어날 리는 없을 것이다. 알고 보니 이 꽃은 망초였다. 구절초하고 꽃모양이 비슷한데 잎이 조금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호원사 탑재는 철책 속에 갇혀 있었다. 철책 안이라고 물러설 리 없는 망초꽃이 그 안까지 치고 들어가 탑재를 뒤덮었다. 철책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다.

호원사지의 석탑재. 굳게 닫힌 철책 안에 있다.

신라시대 원성왕 때 일이다. 음력 2월 8일부터 15일까지 서울의 남녀들이 밤늦도록 흥륜사탑을 돌며 소원을 비는 탑돌이가 열렸다. 이것을 복회(福會)라고 한다. 통금이 해제되는 날이다. 흥륜사는 전불칠처가람 중 하나다. 전불칠처가람은 석가모니부처가 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석가보다 먼저 나온 부처님이 서라벌에서 설법을 하는 7곳의 절을 말한다. 그러니 당시 신라인들에게 흥륜사는 명망 높은 기도 명소였다. 이 절의 탑돌이는 젊은이들에게는 해방구이기도 했다. 통금이 엄중하던 1970년대 말 크리스마스 이브의 유명 나이트클럽을 상상해 보니 그림이 그려진다. 젊은 남녀가 몸으로 부대끼며 짝을 찾는 미팅장소였다. 김현은 밤늦도록 홀로 탑을 돌았다. 김현은 왜 혼자 남아 탑을 돌고 있었을까? 아직 짝을 찾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오늘이 아니면 또 한해를 짝없이 지내야 한다는 절박감에 기도가 간절해졌을 것이다. 김현은 끝장을 보고 말겠다는 생각으로 탑을 돌고 또 돌았다. 이것은 ‘아메리칸 인디언추장 기우제식 소망빌기’다. 비가 올 때까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기도를 하는 방식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비를 내리게 한 추장을 ‘레인맨’이라 불렀다.

김현의 ‘레인맨식 기도’에 하늘이 감응했다. 자기처럼 늦게까지 짝을 이루지 못한 여자와 눈이 맞았다. 둘은 으슥한 곳에 가서 정을 통했다. 『삼국유사』는 이 장면을 ‘인입병처통언(引入屛處通焉)’이라고 기록한다. 하룻밤에 이뤄진 사랑이니 원나잇스탠드이며 흥륜사가 있는 천경림에서 정을 통했으니 야합이다. 1,200년 전 신라의 성 풍속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현장이다.

김현은 여기서 끝내자는 여자를 따라 서산 기슭에 있는 여자의 집으로 갔다. 여자는 사람으로 변신한 호랑이였다. 멋도 모르고 호랑이 소굴로 들어간 것이다. 호랑이의 세 오빠가 사람 냄새를 맡고 기뻐하며 김현을 한 끼 식사로 삼으려 했다. 그때 하늘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이 걸핏하면 생명을 해치니 딱 한 놈을 죽여서 본때를 보이겠다.”

처녀는 세 오빠 대신 자신이 죽어 죄업을 씻으리라 다짐했다. 성안에 들어가 사람을 해치고 난동을 부리면 김현이 나타나 자신을 죽이고 공을 세우도록 하는 계획을 세웠다. 처녀는 김현에게 계획을 이야기하고 실수 없이 일을 진행하도록 당부했다. 또 자신의 발톱에 다친 사람은 흥륜사의 된장을 바르고 나발을 불게 해 상처가 아물도록 사후처방까지 알려줬다. 김현을 울고불고 그러지 말자고 했지만 자기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알았다.

다음날 처녀는 호랑이의 모습으로 성안에 들어가 성안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김현이 나서자 숲 속으로 들어가 김현이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스스로 목을 찔러 숨을 거두었다. 김현이 호랑이를 잡은 공로로 벼슬을 받았다. 김현이 서천가에 절을 지어 호원사라고 하고 ‘범망경(梵網經)’을 지어 강설했다. 호랑이가 제 몸을 죽여 자기를 출세하게 한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김현이 죽기 전에 이 일들을 기록했으니 그 글이 ‘논호림(論虎林)’이다.

신라시대 때 사냥터로 추정되는 황성공원.

호랑이가 난동을 부리다 죽은 숲이 천경림인지 황성공원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호랑이가 도성의 북쪽 숲으로 가서 죽었다는 사실과 진평왕대에 이 일대가 사냥터여서 호랑이가 출몰하는 지역이었을 것으로 됨에 따라 호랑이가 죽은 곳이 황성공원 일대일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호원사 옆에 있는 궁도장이 호림정이다. 황성공원은 그 후로 논호수라고 불리기도 하고 고양수라고 불리기도 했다.

경주공고. 김현과 호랑이처녀가 탑돌이를 했던 흥륜사지로 추정된다.

김현과 호랑이의 슬픈 연가는 『삼국유사』 「감통」편 ‘김현감호(金現感虎)’조에 나온다. 그런데 ‘김현감호’의 해석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최광식은 이를 ‘김현이 호랑이를 감동시키다’(『삼국유사』2, 고려대출판부)로 풀었다. 이재호도 ‘김현이 범을 감동시키다’(『삼국유사』2, 솔)로 풀어 맥락을 같이 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살펴보면 김현이 호랑이에게 한 일이 없다. 김현은 호랑이와 눈이 맞아 으슥한 곳에 데리고 가서 섹스를 했을 뿐이다. 그것이 감동이라면 감동일 수 있겠다. 첫눈에 반하고 교접으로 기쁨을 얻었다면 말이다.

호랑이가 인간이 되려 한 최초의 시도는 최초는 단군신화에서다. 마늘과 쑥, 동굴 생활을 견디지 못해 실패했다. 그 후 3천년이 지나 호랑이 처녀가 김현과의 사랑을 통해 인간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그 소망은 김현의 경솔한 행동으로 파국으로 치달았다. 그녀의 집까지 쫓아오면서 이야기가 급반전되고 결국 호랑이 처녀는 죽음으로써 새드앤딩을 맞는다.

이범교는 ‘김현감호’를 ‘김현이 호랑이에 의해 감동되다’(『삼국유사의 종합적 해석』 下, 민족사)로 풀었다. 고운기도 ‘김현이 호랑이에게 감동되다’(『삼국유사』, 홍익출판사)라고 해석했다. 호랑이가 죽어서 김현에게 공을 세우게 했고 김현이 그 공로로 벼슬까지 하게 됐다. 그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호원사를 세우고 죽기 전에는 논호림이라는 글까지 썼으므로 그렇게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조동일은 ‘김현이 호랑이와 정을 통하다’(『삼국시대 설화의 뜻풀이』, 집문당) 아예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김현감호’가 들어있는 「감통」에는 호랑이 처녀 말고도 선도산 성모, 욱면, 광덕의 처 같은 여성이 나온다. 호랑이 처녀 말고는 한결같이 성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선도산 성모는 신라인의 신모이고 욱면은 종임에도 기도를 열심히 해 서방정토로 갔다. 광덕의 처는 광덕과 엄장을 극락세계로 이끌었다. 이 때문에 호랑이 처녀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보기도 한다. 관세음보살이 김현을 굽어살펴 호랑이로 변신해 큰 덕을 베풀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기록이 하나 더 있다. 호랑이 발톱에 할퀸 사람에게 흥륜사의 된장을 발라 낫게 하는 대목이다. 50대 이상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머리가 깨지거나 피가 터지는 상처를 입고 상처부위에 된장을 바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상처에 된장 바르기’ 전통은 이렇게 신라시대 때부터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글·사진= 김동완 역사기행 작가
글·사진= 김동완 역사기행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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