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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진료실] 치매 가족의 하루
[따뜻한 진료실] 치매 가족의 하루
  • 정은환 에스포항병원 뇌·혈관병원 진료과장.신경과 전문의
  • 승인 2020년 10월 28일 16시 06분
  • 지면게재일 2020년 10월 29일 목요일
  • 1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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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환 에스포항병원 뇌·혈관병원 진료과장.신경과 전문의
정은환 에스포항병원 뇌·혈관병원 진료과장.신경과 전문의

‘36시간’이라는 책이 있다. 책의 주된 내용은 치매 환자나 가족이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가지 문제를 나열하고 그 대응에 대한 실질적인 가이드 라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매일 치매 환자를 보는 임상 신경과 의사로서 진료에 도움이 되기 위해 읽게 된 책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세세한 내용보다는 치매 환자 가족들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36시간으로 느껴질 정도로 힘들다는 제목이 가진 의미가 더 기억에 남았다.

한 언론사의 설문조사에서 가장 걸리기 두려운 병으로 암이 아닌 치매가 뽑혔다고 한다.

신체적인 고통보다 정신적인 기능의 상실을 사람들이 더 두려워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필연적으로 치매 환자의 고통을 함께 짊어져야 하는 가족들의 괴로움은 얼마나 클지 짐작할 수 있겠다.

치매로 진단받는 환자들은 보통 환자의 기억력 저하나 성격의 변화, 행동장애 등을 눈치챈 가족들과 함께 진료실로 내원한다. 병원에서 신경 인지기능 검사와 뇌 영상 촬영 등으로 치매가 진단되면 적절한 약물을 선택하여 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환자가 치매로 진단되는 시점에서 보호자들은 대게 좌절감을 느끼게 되는데, 치매라는 용어가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보니 이 같은 보호자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다.

치매가 진단된 시점부터 환자의 인지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긴 여정이 시작된다. 우선 환자들의 기억력이 떨어지다 보니 처방받은 약을 꾸준히 먹는 것부터 쉽지 않다.

외래 날짜에 맞춰 스스로 병원을 찾아오기 힘드니 바쁜 자식들이 시간을 쪼개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 경우가 많다. 퇴행성 질환의 속성상 진행을 하니 치료를 하더라도 환자가 점차 나빠지는 모습을 보며 가족들은 더욱 무력감을 느낀다.

어느 정도 질환이 진행되면 환자는 어린아이가 같은 상태가 되어 잘 넘어지고 다치게 되는데, 환자가 다치면 보호자들은 또 죄책감에 시달린다. 진료하다 보면 환자보다 뒤에서 눈물짓는 보호자를 위로해야 하는 상황을 자주 겪게 된다.

치매는 적절한 운동과 독서, 식단 관리 등으로 어느 정도는 예방하고 약물치료를 통해 진행을 늦출 수 있지만, 평균 연령이 높아지고 노인 인구의 비율이 늘어남에 따라 필연적으로 전체 환자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질환이다.

현재 65세 이상의 약 10% 정도, 85세 이상의 3분의 1 정도가 치매 환자로 추정된다. 이렇듯 환자의 비율이 높은 만큼 본인이 치매에 걸리지 않아도 누구나 언젠가는 치매 환자의 가족이 된다고 봐도 틀리지 않는다.

치매 환자 가족들의 심리적·신체적 부담을 줄이는 데에는 사회와 가족 내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치매에 대한 일반인식이 개선되고 보건소와 치매안심센터 등을 통한 공공보건 지원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은 무척 다행으로 생각된다. 사회적으로 받아들이고 따뜻하게 바라봐 주는 분위기가 환자와 가족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치매 가족 내부에서도 부담을 나누는 적절한 품앗이가 필요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한 보호자가 치매 환자의 병간호를 전적으로 책임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경우 보호자가 쉽게 지치게 되어 환자가 인지기능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는 지역사회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요양 시설로 조기에 입소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주말 시간 또는 역할 순번을 활용해서 주 보호자가 쉴 수 있는 여유를 다른 가족들이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령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치매라는 현상을 사회와 가족 구성원들 간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협력으로 극복해 나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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