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금상] 박호선 '거미의 꿈'
[수필 금상] 박호선 '거미의 꿈'
  • 경북일보
  • 승인 2020년 11월 02일 20시 45분
  • 지면게재일 2020년 11월 03일 화요일
  •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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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김진혁 작

한 마리의 거미가 촉수를 세운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까맣게 그을린 서까래 사이에 거미들이 이리저리 줄을 쳐놓았다. 바짝 다가가 거미줄을 살펴본다. 촘촘하니 방사형으로 쳐놓은 그물이 제법 정교하다. 자신의 몸속에서 진액을 뽑아내며 거미줄을 마무리 하던 작은 거미 한 마리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천장 틈 사이로 몸을 숨긴다.

덩그런 기와집은 주인을 잃은 채 빈 집이 되어있다. 기와는 부스스하니 윤기를 잃었지만, 아침햇살은 예전처럼 두꺼운 마루에 반질반질 올라앉는다. 삐꺽거리는 마루에 올라 작은방 문고리를 잡는다. 베틀에 앉아 계신 어머니의 모습이 잠시 눈에 아른거린다. 작은방 문을 열어본다. 베틀이 놓였던 자리가 휑하다. 닳아버린 몽당 빗자루 하나가 구석에서 옛 기억을 쓸어내지 못한 듯 머뭇거리며 서있다.

산업사회가 한창일 무렵 나는 고향 산골에서 부산으로 왔다. 곳곳에 산업도로가 건설되고 여기저기 높은 굴뚝에서는 수출의 열기가 하늘을 향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농촌에서 이주하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나 도시는 바람을 잔뜩 불어넣은 풍선처럼 부풀었다. 나도 부푼 꿈을 안고 도시에 첫발을 디뎠다.

나의 꿈은 고생하시는 어머니께 작은 힘이라도 보태는 것이었다. 정오만 지나면 앞산 산그늘이 마당에 어른대는 이 산골마을에서 어린 육남매를 바라보며 실타래 같은 한숨을 풀어놓는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천수답을 오르내리며 농사일을 하는 틈틈이 삼을 심었다. 삼은 농사일만으로도 힘든 어머니의 어깨를 더욱 야위게 했다. 수확한 후에도 실을 얻기 위해서는 수도 없는 잔손질이 닿아야했다. 어머니는 지문이 닳도록 실을 매만지고 나서야 베틀에 앉을 수 있었다.

베틀에 앉은 어머니는 한 마리의 거미가 되었다. 앙상한 팔과 다리를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베틀에 매달렸다. 때로는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잊었다. 베를 짜는 것은 산골에서 현금을 만질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마저도 툭하면 아버지의 무모한 투자에 한낮 이슬방울처럼 증발되곤 했지만,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았다. 거미처럼 자신의 진액을 뽑아내는 일만이 자식들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 지난한 노동을 빨아들이고도 베는 아주 천천히 짜여졌다. 어머니라는 거미가 뽑아낸 실은 마치 뼈에서 뽑아낸 것처럼 희고도 앙상했다. 그 실들이 씨줄 날줄로 얽혀 한 필의 삼베가 짜여 질 즈음이면 어머니는 껍질만 남은 거미처럼 왠지 희끗하고 희미해보였다. 삼베는 천이 아니라 어머니의 진액이었던 셈이다.

이즈음 고향을 떠나 객지로 진출하는 사람들이 띄엄띄엄 생겨났다. 친척 언니가 취직을 소개한 곳은 부산의 직조 공장이었다. 내 앞에는 어머니의 것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커다란 직조기가 놓여졌다. 천장에서는 밤낮없이 분무기가 돌아가며 뿌연 안개비를 뿜었다.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만 실이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안개비가 형광등불 사이로 퍼지며 미세한 아지랑이를 만들어냈다. 수많은 갈래의 실사이로 오가는 북을 따라 씨줄날줄이 교차하며 직조기는 “철커덕, 찰카닥” 굉음을 냈다. 요란한 기계소리에 귀가 멍멍했다. 그날부터 나는 그 공장의 수많은 거미들 중 하나가 되어 베를 짜기 시작했다.

몸을 숨겼던 거미가 슬그머니 나온다. 꽁무니에서 늘어뜨린 줄을 자신의 체중으로 흔들었는지 출렁하며 만들어 놓았던 자신의 거미줄에 올라탄다. 이리저리 꼼꼼히 살피며 꼼짝을 않던 거미가 서서히 움직이더니 한쪽이 뜯어진 거미줄을 손보기 시작한다. 거미의 줄타기는 환상적이다. 먼저 세로줄을 손보고 그 사이를 건너며 가로줄을 친다. 이방인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장방형의 균형 진 그물이 완성되자 거미는 그 중앙에 앉아 자신의 솜씨를 음미하는 듯하다.

아지랑이처럼 어른대는 수많은 씨줄날줄을 살피는 일은 본능에 가까운 감각을 필요로 했다. 촘촘한 실 한 오라기라도 끊어지는 것을 발견 하지 못하면, 그 커다란 직조기는 덜컥 멈춰 섰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끊어진 씨줄과 날줄은 서로 엉켜버렸다. 씨줄을 올올이 손으로 잇고, 흠집 난 천을 쇠 빗으로 한 오라기씩 풀어내어야 했다. 그런 상황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 마치 초능력자처럼 눈에 힘을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실과 실 사이의 그 미세한 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직조기 앞의 작은 거미로 진화되어 갔다.

직조기 사이에 먼지가 두텁게 쌓이고 두루마리처럼 말린 피륙이 늘어나면 월급날이 다가왔다. 월급날만큼은 출근길에 마주친 빳빳한 칼라의 여고생도 부럽지 않고, 철야로 인해 퉁퉁 부은 다리도 잊었다. 때로는 어린 나이에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에 짓눌릴 때도 있었다. 잃어버린 학창생활, 가족에 대한 그리움, 길고 힘든 노동들을 견뎌내야만 했던 긴 시간들이 지나갔다.

가끔씩 시린 가슴 속으로 바람이 불면 낮은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 같은 어머니의 눈물을 떠올렸다. 나는 더욱 악착같이 작은 거미가 되어 직조기에 달라붙었다. 세월이 흐르자 내가 짠 베가 조금씩 쌓여 작은 논밭이 되고 기와집도 되었다. 성실한 노동의 가치로 거미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공장의 거미 친구들 중에는 유독 맏이가 많았다. 맏이는 동생들보다 일찍 태어나 부모님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자식이다. 때로는 어린 동생들에게 마치 어머니 같은 책임감마저 느끼기도 한다. 모두가 어려웠던 그 시절, 그 직조 공장에는 가족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어린 나이에도 스스로 가장의 길을 걸었던 수많은 거미들이 있었다. 나 또한 맏딸로서 내 작은 온기로 우리 가족의 삶이 따뜻해 질 수 있기를 바라며 꿋꿋하게 견딘 시절이었다.

마당에 퍼지던 햇살이 어느덧 작은방까지 올라와 앉는다. 베틀이 놓였던 자리가 환하다. 베틀 앞에 앉으신 어머니가 “그래, 네가 맏딸이다.” 하시는 음성이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마당에 내려서니 앞마당 뜰에는 무당거미가 짜놓은 조밀한 거미줄 사이로 이슬방울들이 초록빛 추억을 엮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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