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수 전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장·경북대의대 명예교수

당시 필자가 근무했던 경북대학교 병원의 어린이병동은 36개 병상으로 대부분이 장기 입원이 필요한 혈액 및 종양 환아들이었다. 오래전부터 이 분야의 의학지식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병동 간호사 13명을 대상으로 소아종양학 지지치료(supportive care)에 관한 영어 원본 책으로 주 1회씩 강의를 하여 왔었기 때문에 필자와 사제지간은 아니었지만 평소 분위기는 화기애애하였다. 주제별로 순환 발표를 하게 하였고 보충 설명으로 미국에서의 암 전문 간호사(nurse practitioner)의 역할을 이야기하면서 평소 하던 업무에 도움을 줄 목적으로 진행되어 왔었으며 이는 최근 전국적으로 실용화 단계의 전문 간호사제도의 전신이 되었다.

그 후에 소아청소년과 과장으로 취임했던 1999년 일이다. 첫 취임과 함께 어린이병동의 활성화를 위해서 간호사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개선점을 찾기 위한 자리를 마련하였다. 입원 환아의 치료는 담당 교수의 오전 회진 후 전임의(분과 전문의 수련 과정) 또는 수석 전공의가 지침을 받아 주치의(전공의)와 간호사의 협업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일은 전공의와 간호사의 업무 분담이 확실하게 되어 있지만 전공의들이 바빠서 헤매면 간호사들이 기꺼이 도와서 어려운 일들을 잘 처리해 왔다. 그러나 각자의 업무가 과중 되면서 서로가 삐걱 되며 병동 내에서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간호사들의 표적(?)이 된 전공의가 있었는데, ‘OOO을 퇴직시키지 않으면 이 병동을 떠나겠다’는 감정적 불평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린이병동 분위기가 이러니 병원의 전체 간호사들 가운데 ‘제일 배정받기 싫은 병동이 어린이병동으로 기피하는 현상’까지 이르게 되었다.

과장으로서 문제의 중대성을 파악하고 조속한 해결을 위해서 두 가지 일을 진행하였다. 어린이병동의 수간호사에게 전국 주요 7개 병원의 어린이병동의 병상 수와 간호사 수를 파악하도록 부탁하였고, 인화를 위해서 오랫동안 쉬었던 소아청소년과 전체 직원의 산행을 1년에 2회 재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때까지 우리 병원에는 어린이병동의 병상 수 대비 간호사 수는 내과 등 타 병동과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전국 7개 병원에서 파악한 어린이병동의 병상 수 대비 간호사 수 비교에서는 최하위였다. 다시 말하면 타 병원에서는 이미 어린이병동이 타 병동에 비해서 간호업무가 힘든 것을 파악해서 더 많은 간호사를 배정을 하였는데 우리 병원은 이를 고려하지 않고 배정했던 것이다. 즉, 어린이병상은 어른 환자들보다 침대보가 쉽게 더러워지므로 더 자주 갈아야 되며, 매일 진행되는 채혈과 주사 시에 두~세 명의 인력이 환아를 붙잡아야 가능하고, 힘들게 정맥주사를 하고 단단하게 고정한 주사도 환아가 설치면 쉽게 터지기 일쑤였다. 그런데 타 병동과 같은 비율로 간호사를 배정을 했으니 간호업무 자체가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자료들을 가지고 병원장실을 찾았다. ‘현재의 간호사 수 보다 50%를 증원시켜야 전국 7개 병원의 평균에 해당되며, 간호사의 부족은 곧 의료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다’라고 설명하고, ‘병원 경영상 한꺼번에 6명 증원이 어려우면 즉시 2명 보충 후, 나머지 인원은 2년에 걸쳐 증원을 요청’하였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병원장은 ‘6개월 안에 6명 모두를 증원’시켜 순식간에 13명에서 19명의 간호사 인력으로 되었다. 간호사 업무량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니 전공의와 간호사들 사이에 다툼은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1년에 2회 같이 산행을 하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니 서로 간의 대화거리가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병동이 두 동강 날 것처럼 험난했으나 짧은 시간 내에 옛 모습으로 돌아온 것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쉰 적이 있다.

함축해서 말하면, 어린이병동의 운영은 타과병동에 비해 간호업무 인력이 상대적으로 50% 더 필요하다. 기업 경영으로 본다면 투자 대비 수익이 타과에 비해 적지만 건강보험지급에서는 이를 보전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이 논리는 대학병원이나 개인의원이나 진료인력에는 차이가 없을 것이다. 기존의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생명에 대한 사명감으로 충만해 있어서 ‘그러려니’하고 묵묵히 할 일을 하고 있겠지만, 앞으로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 지금 세대는 세태의 많은 변화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의학도들도 다른 직업군처럼 개인의 삶의 질에 비중을 높여가고 있는 현상이다. 현 상황에서 노력과 투자에 비해서 수입이 더 좋은 다른 과를 선택하겠다는데 누가 탓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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