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수 전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장·경북대의대 명예교수

우리나라 어린이병원은 서울대병원(1985년)에 이어 국가 주도로 2013년 개원한 경북대병원을 비롯하여 전국에 모두 8개 대학병원에 있다. 19세기부터 유럽에 설립된 이후 미국으로 확산되었다. 어린이병원 설립의 개념은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서 나이에 상관없이 질병별로 진료과를 분류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먼저 어른과 어린이(18세까지의 청소년)로 나누고 그다음에 질병 별(소아청소년과, 소아외과, 소아안과 등)로 나눈다는 것이다. 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하겠지만, 어린이는 어른이 되기까지 육체적 성장과 정서적 발달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개체이며 질병도 연령별로 특성이 달라서 세밀하게 관찰하는 것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 즉, 어린이는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며, 시기별 특성을 모르고 어린이를 진료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깊은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어린이병원의 타과 의사라도 어린이를 진료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과정을 거쳐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한 차선책이 될 수 있다.

어린이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표현하지 못한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4년간 수련기간을 거치면서 아기의 울음소리로 배가 고픈지, 기저귀를 갈아줘야 할 때인지, 방이 더워서 그런지, 질병 때문인지를 구분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 수면상태, 얼굴 표정, 식욕과 대변상태 그리고 엄마를 쳐다보는 눈빛으로 어린이의 속마음을 읽어 질병의 경중을 구분하고 회복 시기를 미리 예측할 수 있는 것을 익히게 된다. 즉, 말로 표현하지 못하므로 90%는 표정과 정확한 진찰로 전신을 읽어야 한다. 그래서 수석 전공의가 되면 입원한 어린이가 고열이 지속되더라도 병이 중해서 그런지 항생제에 의한 과민 반응(drug fever)인지 구분할 수가 있게 된다. 즉, 항생제를 바꿔야 할지 중단해야 할지를 알게 된다.

의학은 인류가 탄생하면서부터 함께 한 질병에 대한 치료경험을 바탕으로 오래전부터 연구되며 발전되어 왔다. 진료는 가르치지 않은 것을 스스로 깨우쳤다고 해서 실행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공인되지 않는 의료행위는 법으로 엄격하게 규제를 해 왔다. 하물며 전문의과정을 통하지 않고 얻은 의학지식은 의과대학만을 졸업하고 의사면허증을 획득한 일반의에 불과하다. 항상 진료행위는 객관적인 자료로 인정을 받아야 하고 생명윤리에 어긋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필자가 미국 UCLA 병원에 연수를 갔을 때 이야기이다. 혈액학을 전공한 젊고 유능한 내과 의사가 콘퍼런스에는 참석하나 진료는 할 수 없었는데, 주변에 있던 의사가 살짝 귀띔을 해주었다. 즉, ‘허가 받지 않은 약을 환자에게 투여했다가 의사윤리위원회에 회부되어 영구적으로 환자 진료의 자격을 박탈 당했는데 실험에는 참여할 수 있어서 이 병원에 남아서 콘퍼런스에 참석한다’는 이야기였다. 워낙 똑똑해서 강의료를 많이 주면 해외에도 기꺼이 간다고 했다.

감기 철이 되면 ‘코가 막히니 코 분비물을 흡입(catheter suction)시켜 달라’고 이야기하는 엄마에게 필자가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흡입술은 특수한 목적 외에는 해서는 안 되는 진료 행위인데 그 이유로는 (1) 어린이는 심한 고통과 공포를 호소하면서 심리적 불안상태는 오래 지속된다. (2) 코 안의 정상적인 구조는 점액과 코털, 그리고 융모로 구성되어 외부 이물질의 침입을 막는 생리적 현상인데 흡입술로 인해서 이물질을 인위적으로 깊숙하게 밀어 넣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3) 점막은 딱딱한 물체에 의해서 자극을 받으면 쉽게 염증을 일으켜 더 부풀어 올라 궁극적으로는 코가 더 막히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4) 그래서 이 흡입술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수 없는 무의식 환자 즉, 뇌 손상, 수술직후에 의식 회복기에 환자의 흡인성 폐렴을 예방하기 위해서 하루에도 수 십 번씩 해야만 하는 진료행위이다, 라고 설명을 한다.

힘들게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1차 진료기관인 소아청소년과 의원을 개설한다고 해도, 이미 비전문의에 의한 어린이진료가 활발하게 이뤄져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역할은 90%가 잠식된 현실이다. 예방접종이 그러하고, 감기치료가 그러하다. 중학생만 되어도 다 큰 줄 알고 내과로 가 버린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미래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는 것을 진료과를 선택하는 의학도들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무지하면 용감하다’ 라는 말도 있지만, 잘못된 것은 미래를 위해서 국가가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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