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수 전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장·경북대의대 명예교수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전문의 자격은 의과대학 졸업 후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하고 전문의 과정4~5년(인턴 포함)의 교육을 받고 전문의 자격시험에 합격한 자에게 한하여 수여하는 제도이다. 그래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와 타과 전문의는 교육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다. 어린이를 이해하고 적절하게 진료하기 위해서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자격을 갖춘 교수에 의해서 전문의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제도는 오래되었지만 실상 교육내용을 살펴보면 그렇지가 않다. 수련기간 동안 가정의학과 수련의가 소아청소년과에 파견되어 교육받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책만 가지고 독학하였거나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교육하는 곳이 아닌 곳에서 배웠다고 할 수밖에 없다. 당직을 서면서 입원 환아를 주치의로서 지켜보지 않아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으므로 질병에 대해서 깨우친 바가 없다. 질병의 경중과 경과에 대해서 경험을 할 기회가 없었다. 제대로 된 수련을 하려면 내과, 소아청소년과, 외과, 산부인과에 각각 파견되어 각과의 전문 교수로부터 각 과에 해당되는 전문 의학 지식을 습득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 가정의학과 전문의(family doctor)로서의 1차 진료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절대로 의학은 배우지 않고 스스로 깨우쳐서는 안 되는 특수 분야여야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세일 것이다. 소아청소년은 국가와 인류의 미래를 이끌어 갈 소중한 인재이다. 이들이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 사회적 인격체가 형성되도록 성장하게 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며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이것을 수행하고 있다.

전문의 수련과정을 살펴보면 소아청소년과 교육에는 어린이 예방접종이 필수항목이지만 타과는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시험에는 예방접종에 관한 문제가 자주 출제되지만 타과는 그렇지가 않다. 그런데 대구지역 어린이 예방접종프로그램(National Immunization Program)에 참여하고 있는 410개의 의원 중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고작 125명(30%)에 불과하다. 일반의, 내과, 이비인후과, 가정의학과, 외과 전문의 등 다양한 의사들이 참여를 하고 있다. 더더욱이 예방접종을 아주 많이 하는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전국에 13곳 운영되고 있으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진료하는 곳은 6곳에 불과하다. 과거에 유료로 예방접종을 시행했을 때에는 소아과 주도였는데 국가가 무료로 확대 운영하면서 많은 어린이들이 쉽게 가까운 의원에서 맞출 수 있도록 편의를 봐 주면서 의사면허증 소지한 의사라면 국가에서 제공한 인터넷 강의 몇 시간을 청취하면 참여할 수 있도록 간소화했기 때문이다. 국가어린이예방접종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역할이며 이것이 어려운 지역일 때 차선책으로 타 의사가 수행해야 할 것이다.

더 한심한 일이 있다. 영유아 검진은 66개월까지의 어린이에게 8회에 걸쳐서 성장과 발달에 대한 국가 검진제도이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과 발달을 거듭하면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총체적 건강상태를 확인하여 이상이 발견되면 정밀검사를 해서 원인을 조기 발견할 수 있는 필수적인 제도이다. 당연히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영역인데 이것도 인터넷 강의 몇 시간만 청취하면 모든 의사면허증 소지자에게 개방되어 있다. 정신 나간 대책이 아닐 수 없다. 국가 의료제도가 낭떠러지로 떨어져서 소생 불가능 상태인데 아무도 해결하자고 소리치는 사람이 없다.

이것은 의료 사각지대일 수밖에 없다. 스스로가 전문의 제도를 무력화한 꼴이 된다. 국가가 생각을 바로잡지 않으면 의료는 후퇴하게 되고 국민 건강은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지 못한다.

국가는 멍청하지만 장래에 무슨 과 전공의를 선택하려고 하는 의대생들은 똑똑하다. 소아청소년과의 미래는 엉망으로 되어 간다는 것을 이미 오래전부터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문의에 의하지 않는 진료 현상은 이미 시작이 되었는지 오래다. 도심지를 조금 벗어나면 친절한 소아청소년과 또는 외과 전문의가 할머니 고혈압 환자도 진료한다고 한다. 친절하게 진료한다는 것과 전문의에 의해서 진료한다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한마디로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뒤섞여 가고 있다. 물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교육과정에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이 포함되어 모르는 질환들이 아니다. 그러나 18세가 넘는 신환은 내과전문의가 진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서 건강심사평가원에서는 질병별로 바람직한 치료를 한 의원을 선정해서 전국 우수병원이라고 성과급을 주고 표창을 한다.

여러 전문의가 진료영역이 겹쳐서 서로 자기의 진료영역이라고 주장한다면 ‘왜 소아청소년의 진료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해야만 되는가?’를 공개 토론회를 제의한다. 국가가 모른 척하고 방관한다면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와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앞장서고 이를 지지하는 시민단체가 함께 해야 한다. 국민이 몰라서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면 이것을 바로잡을 책임은 지도자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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