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수 전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장·경북대의대 명예교수

어린이를 진료하면서 다문화가정 자녀를 가끔 만나곤 한다. 나라도 다양해서 베트남, 태국, 필리핀, 중국(연변), 일본 등이다. 대부분은 할머니가 손자, 손녀를 데리고 오지만, 가끔은 외국인 엄마가 자녀를 데리고 와서 의사소통을 해 나간다. 그러나 아직까지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구나’라고 느껴 본 적은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큰 어린이는 자신이 먼저 이해하고 엄마에게 설명하는 때도 있다. 그만치 우리나라도 이미 다문화가족이 많이 늘고 있다고 생각되며 따라서 많은 어린이가 해외에 있는 외가에 갈 기회가 많아졌다. 일반적으로 국제적 대도시 여행지는 현행 우리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예방접종만으로 충분하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일 경우에는 여행 전에 지역별 풍토병에 대한 필요한 예방접종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다. 웹 사이트로는 1)질병관리청에서 운영하는 ‘해외감염병now.kr’, 2)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 http://wwwnc.cdc.gov/travel/ 3) 세계보건기구 http://www.who.Int/trvel-advice를 참고하면 된다.

지금까지 영유아 예방접종에 대한 설명은 국내에 거주하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설명했다고 한다면 이제부터는 장, 단기적으로 해외여행을 하는 경우에 추가로 더해야 할 사항들을 알아보기로 한다. 2014~2015년 서아프리카 나라를 통해서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과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MERS)이 세계를 놀라게 한 예이다. 물론 여행국가에 따라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사항과 권고하는 사항이 다르다. 단, 국가예방접종 프로그램(NIP)을 계획대로 완수했다는 전제하에 이야기이며,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따라잡기(catch-up) 예방접종이 선행되어야 한다. 따라잡기 예방접종이란 제때 예방접종을 하지 못했을 경우에 추가로 최소한의 보충을 해서 질병을 예방하는 계획 프로그램을 말한다.

황열, 장티푸스, 콜레라, 수막구균, 공수병, 말라리아에 대한 설명으로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에서 발간한 ‘예방접종지침서(제10판, 2021년)’를 참고하였다.

황열(yellow fever)은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질병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앙골라와 콩고(2015년 961명 발생 137명 사망)와 남아메리카의 브라질(2017년 723명 발생 237명 사망)에서 연중으로 유행하는 토착지역이다. 2018년 브라질 외국인 방문자 중에서 10명 발생 4명 사망하였다. 감염모기에 의해서 전파되며 3~6일의 잠복기를 거쳐 발열, 오심, 서맥, 탈진, 토혈, 황달 핍뇨, 단백뇨의 증상이 나타난다. 예방접종은 약독화 생백신(yellow fever 17D)을 1회 피하주사로 하며 위험지역 방문 10일 전까지 완료해야 한다. 대상은 9개월 이상 어린이는 반드시 접종해야 하고 6개월 미만은 접종하지 않으며, 계란단백과 젤라틴 앨러지가 있으면 금기이다. 항체 치는 10년 이상 유지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2만 건 접종하고 있으며 전국 국립검역소나 국제공인 예방접종지정기관(대구의료원, 경북포항의료원)에서 시행한다. 2012년 황열백신을 접종한 한국인 1,415명 중 몸살, 두통, 발열감, 근육통 등을 호소한 경우가 37% 있었다. 드물지만 신경학적 질환 2례와 내장영양질환 1례도 황열백신 관련 질환으로 보고되었다.

장티푸스(Typhoid fever, Enteric fever)는 병원균이 Salmonella typhi이며 수인성 질환으로, 필자도 1974년 12월 전공의 1년차 시절에 걸려서 치료받은 병력을 가지고 있다. 학생 때 배웠던 대로 특징적인 증상이 나타나 스스로 진단을 붙이고 입원하였다. 40도 고열에 해열제 투여로 열이 내리지 않아, 한겨울에 욕조에 찬물을 가득 담고 스스로 그 속에 전신을 담구었는데, 금방 탕의 물 온도가 올라가면서 해열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1년차의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었던 상황에서 3일 경 해열되기 시작하자 바로 퇴원을 자원했는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혈변을 두 번 보았다. 재래식 화장실에서 순간 급성 출혈에 의한 저혈압으로 현기증이 온 것을 느끼고 바로 재입원하게 되었다. 절대로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질병임을 자각하였다. 1년 선배가 주치의였는데 완치에 늘 감사드린다. 지나와서 생각하면, 일생에서 질병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위태로울 때가 없으면 좋겠지만, 때로는 위기에 놓일 때가 있을 수 있다. 사망률이 높은 혈변을 보는 순간이 한 예일 것이며, 항생제 클로람페니콜 장기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치명적인 재생불량성빈혈 유발인데 다행히 지금까지 안전한 것이 다른 예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풍토병처럼 많은 사람이 이환되었고 때로는 사망(1.5%)하는 감염병이어서 각별한 주의를 필요로 하였다. 시간이 지나서 질병의 근원지로 인근 식당의 종업원이 장티푸스 만성 보균자였던 것이 밝혀졌는데, 이로 인해서 병원 직원 다수가 이 질환을 앓았다. 만성 보균자는 담낭에 살모넬라균이 있어 수시로 대변으로 배설되는데 위생이 철저하지 않으면 음식을 통해서 전염된다. 옛말에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듯이, 그 때는 요즘처럼 보건소 위생 점검이 철저하지 못하였던 모양이었다. 증상은 단계적(step ladder)으로 열이 상승하여 고열이 있으면서 무기력 감, 복통, 설사의 장염 소견과 심한 경우에는 혈변과 장천공에 의한 복막염으로 사망 위험이 높다. 혈변은 장의 한 군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장 전체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어서 장천공의 위험도가 상당히 크며 수술로도 회복이 어렵다. 치료는 항생제(그 당시에 chloramphenicol이었으며 자금은 fluoroquinolone, 3 세대 cephalosporin)이며 만성 보균자는 fluoroquinolone 4주간 복용으로 90% 효과가 있어서 과거의 담낭절제술을 대체하고 있다. 최근에는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등 동남아시아 지역 여행자에게 걸릴 위험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이 지역에 여행하는 경우에 예방접종이 필수적이다. 예방백신으로 피하주사용과 경구용이 있으며 유행지역에 가기 2주 전까지 접종을 해야 된다. 25년 전에 국내 생산되었는 장티푸스 예방접종 약의 임상시험을 필자가 책임자로 담당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연구를 위해서 6개월 동안 경남 양산 지역에 5회 방문하여 혈액 채취 등 심혈을 기울여서 완성한 논문(Typhoid Vi capsular polysaccharide vaccine의 임상시험에 관한 연구. 경북의대지 38:41-47, 1997)이었으므로 감회가 남다른데, 고속도로 내리자마자 나타나는 언양 불고기 집의 잊지 못할 맛과 현지까지 가는 길의 강둑 양편에 활짝 핀 벚꽃의 화려한 멋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뇌리에 잔영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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