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경북일보 청송객주 문학대전

김진혁 작

막사발이 무수한 알을 품었다. 둥글게 살아온 생도 궁핍한 뒷골목의 삶도 따스하게 껴안는다. 뜨거움을 삼켜 향기로 스미면 투명 알이 꿈틀거린다. 껍데기는 말랑해지고 복아는 부푼다. 크고 작은 알, 뭉그러지고 당실하고 길쭉한 알들이 부화해 제자리를 찾는다. 흙빛 양수 속에서 볕내가 난다.

막사발 안과 밖에 실금이 가 있다. 빙렬氷裂이다. 흙이 가마 안에서 화마의 시련을 이겨내고 얻은 표식이고 유약이 화신에게 하사받은 문신이다. 모두 불이 잉태하고 낳은 생의 지도다. 사발에 작은 물고기 알 모양으로 금이 갔으니 어자문魚子紋이라 칭한다.

반달을 닮은 막사발을 만든다. 내가 원하는 대로 빚고 고유의 색채를 지닌 그릇은 편안하고 소담하다. 달 안에 빛이 담기면 금 간 상처들이 서로를 쓰다듬고 보듬어 그림자로 스민다. 넓은 속은 낙낙하고 너그러우며 높은 굽은 거친 듯 든든하다. 어느 솜씨라도 제각각의 멋이 살아나고 쓰임새 또한 따로 있지 않다. 선반에 올려놓으면 홍시 담는 간식 바라기로, 밥상 위에서는 나물 보시기로, 새참 바구니 안에서는 막걸리 잔으로, 찻상에 오르면 말차 찻사발로 자리를 따로 묻지 않는다.

달항아리를 보면 둥싯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그녀가 뜨면 동네는 화사하게 빛나고 연붉은 생기가 감돌았다. 단아한 몸매를 감싼 벨벳 원피스에 진주 목걸이와 팔찌를 차고 올림머리를 한 모습은 시골에서는 볼 수 없는 먼 나라 사람 같았다. 뽀얀 낯빛에 주황색 립스틱을 바른 얼굴 또한 끌어당기는 마력이 낯선 명화만큼 설레었다. 선물꾸러미에는 알리바바의 동굴에나 있음직한 액세서리가 뭉텅이로 쏟아져나왔다. 커다란 큐빅이 박힌 반지부터 루비 귀걸이와 두꺼운 체인 목걸이나 나비 핀 등이 어린 마음을 홀딱 빼앗아버렸다.

침착한 몸짓과 선뜻 다가설 수 없는 사늘함을 지닌 그녀는 늘 주인공이 되어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손짓도 섬세했다. 잡티 없는 투명한 손은 기다랗고 미끈했다. 말을 할 때면 손동작도 따라 왔고 입을 가리고 웃거나 앞머리를 쓸어올리면 손가락이 발레의 쿠페 동작처럼 느리고 부드러웠다. 나는 그 손끝이 향하는 지점을 집중해서 바라보는 게 좋았다.

달항아리를 휘둘러본다. 내가 구운 항아리 중에는 유려한 곡선과 매혹적인 자태의 보름달이 없다. 만월의 몸은 기우뚱하고 이지러져 인공적인 멋이 겉돈다. 달빛의 은은함보다 수은등 같은 푸르스름한 빛만 내뱉는다. 무엇보다 도자기 표면에 새겨진 어자문은 달 뒷면의 구멍 뚫린 알처럼 조잡하고 산만하다. 품 안에 지니고 싶지만 내 것이 될 수 없는 월광처럼 애젖하다.

그녀 손마디가 나무 옹이처럼 울퉁불퉁하다. 수시로 혹을 물어뜯지만 뜯겨나가는 일부보다 자리 잡은 굳은 살점이 훨씬 넓다. 말캉하던 손마디가 처음부터 딱딱해지는 건 아니다. 주방세제에 오랫동안 잠긴 손은 간지럽다가 붉게 부어오른다. 퉁퉁한 손의 가장자리에 작은 알집이 잡히다가 서로 뭉쳐지고 종래에는 커다란 물집이 실리고 터지고 다시 생기기를 반복하다 보면 감각이 둔해진다. 그러면 굳은살이 되고 그 위에 또 굳은살이 앉으면 일혹이 된다.

손바닥이 엉그름으로 채워졌다. 메마른 땅처럼 바삭한 흙내가 난다. 향긋한 핸드 로션 냄새를 맡은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희미하다. 손가락 끝 살은 베이고 벌어져 생살이 보이고 푸성귀의 즙이 스며 검은 줄기가 생겼다. 그 또한 살이 두꺼워져 가시 돋친 두릅을 다듬거나 억센 비름나물을 훑을 때 살갗에 느낌이 없을뿐더러 차갑거나 뜨거운 것에도 별 반응이 없다. 손바닥을 가로지르는 손금은 어자문에 가려 운명을 점치지 못한다.

액세서리 공장을 하던 남편이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고 큰아들이 아프기 전까지 그녀의 손은 하얗고 아름다웠다. 검은 반점 하나 없는 손은 늘 촉촉하고 말랑한 손바닥은 굴곡 없고 손마디는 매끈했다. 그러던 손바닥이 뒤집어졌다. 세상 물정에 어두웠던 까막눈은 현실을 깨닫기도 전에 공장과 집을 잃었다. 큰아들은 병원에 입원시키고 둘째와 막내는 친척집에 맡기고 일거리를 찾아 나섰다. 음식솜씨가 뛰어난 그녀는 한정식 식당의 찬모가 되었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재료 다듬기와 음식 만드는 일은 늦은 밤 설거지로 마무리되었다. 슬퍼하거나 상황을 정리할 시간이 없었다. 세 자녀의 학부모이고 아픈 아이의 엄마였다. 남편의 그늘은 사라졌다.

언제부터인가 그녀 손에 어자문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실핏줄이 내비치던 고운 손은 실금이 가고 크고 작은 굳은살이 생겼다. 가슴에도 빙렬이 갔다. 급작스러운 남편의 죽음과 큰아들의 뇌전증 그리고 아이들과의 이별이 온몸에 수많은 빗금을 그어댔다. 그러나 그녀는 울지 않았다. 망연하게 정신 줄을 놓지도 않았고 아이들을 살뜰히 챙겼다. 독하다는 말도 나돌았으나 되려 무덤덤해 보였다. 작은 달항아리 같은 아이들이 금이 가거나 깨지지 않고 당당하게 빛을 낼 수 있게 해야 했다. 그때까지 슬픔의 힘은 기운을 잃지 않고 눈물을 내보내지 않을 것이라 다짐 또 다짐했다.

그녀가 일하는 음식점에는 손님이 많았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그들의 삶은 따뜻하고 정갈해 보였다. 집 조명은 밝고 화려하며 반려견은 털에 윤기가 돌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들려주며 해맑게 웃을 것이다. 예전의 그녀가 그래왔던 것처럼. 하지만 누구나 빛 그림자 하나쯤은 그으며 살아간다. 멀리서 보는 달은 화사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곳곳에 흠집이 파인 것처럼. 그들의 이마 미간에는 한이 깊고 입가의 둔덕은 팔八자를 쌓으며 손의 바닥은 흠결의 시간이 두텁다. 형형의 빗금선 또한 그들 삶의 일부다.

백자를 닮은 그녀였다. 장식장 속의 귀한 도자기는 손을 타지 않는다. 눈으로 즐기고 분위기로 매료되며 형태감에 사로잡힌다. 교교한 백자나 격조 넘치는 청자 한 점이면 주인장의 품격을 말해주기도 한다. 유리장 안에서 빛을 발하던 그녀가 막사발을 닮아간다. 담담하고 완곡하다. 슬픔과 원망을 녹여 품에 새기고 자신 삶에만 집중됐던 시야를 넓혀 타인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어느 곳이나 잘 어울리는 투박한 그릇이 되었다. 막사발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삼키고 뜨거움을 눌러 무늬를 새겼을까.

세상에 두 발을 올려놓기가 만만치 않다. 중심을 잡고 살아가기란 더더욱 힘들다. 한쪽으로 쏠리면 다른 쪽은 기우는 법칙, 멈출 수도 떠날 수도 없는 삶의 반복이다. 둥근 무대 위에서 각자 몫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세월이 돌아갈수록 어깨의 무게는 눌리고 등의 부피는 버겁다. 그래도 삶의 중력을 이겨내며 나만의 발자국을 남긴다.

삶은 동심원 가장자리의 사람들에 의해 돌아간다. 인생의 목표에서 밀려나지 않으려 있는 힘을 모아 박차를 가한다. 원심력을 극복하며 중심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 세상의 모양과 균형을 맞춘다. 비스듬한 자전축에서 구심을 잡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다. 자칫 한쪽으로 치우치면 금이 가고 비틀어지기도 한다. 깨진 인생은 제자리를 찾기까지 힘든 시간을 보낸다. 사람을 담지 못하고 연을 맺지 못한다. 그래도 오늘의 기울기에 미립나도록 매 순간을 다잡는다.

어자문이 빼곡한 막사발을 들여다본다. 사발은 무명 앞치마를 두른 그녀처럼 무심한 듯 강인한 성정을 지녔다. 옹이 진 손길로 아이들의 버팀목이 되는 어미의 손을 닮아있다. 삶의 하중을 가누며 자식을 품고 인연을 품고 오늘을 품은 모습, 그 안에서 생의 지도가 어자문으로 깊고 짙게 그려진다. 뒤안길에서 흘리던 속울음도 눈물방울로 아로새긴다.

새벽녘, 그녀 손이 아침을 맞이한다. 햇살문이 촘촘한 그릇에 바다 생물이 싱싱하고 들판 푸성귀가 향긋하고 산골 뿌리들은 쌉싸름하다. 매번 반복되는 일상은 고되고 외롭지만 초심을 다잡는다. 하루의 허기를 채우는 사람들의 포만을 생각한다. 막내의 웃음을 떠올리고 영원히 어린아이로 남은 큰아들의 눈빛도 기억한다.

하늘을 품고 물도 감기고 그림자도 젖는 닳은 지문이 하루의 낙관을 찍는다. 고졸한 어자문이 안도의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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