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경북일보 청송객주 문학대전

이런 사람들과 섞여 사느니 차라리 어머니가 있는 주문진으로 돌아가 배나 탈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 남의 집 가게에서 오징어 배를 가르느라 굽어버린 손가락, 그러고도 몇 푼 들어오지 않는 어머니의 얇은 주머니가 아프게 밟힌다.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가면 나는 또 어머니의 근심이자 통증이 될 것이다.

짐은 풀지도 못한 채 낙원의 1층 계단에 앉아 반나절을 고민하다가 힘들면 그만두자 다짐하고 툴툴 털고 일어나 창밖을 본다. 밖은 새로운 낙원을 건설하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마지막 노른자 땅이라는 장점에 역세권이라는 부록까지 더해져 높은 분양가에도 경쟁이 치열했다는 이곳은 원래 고만고만한 노후 주택이 밀집해 있던 지역이었다. 높은 건물이라고는 오래된 낙원 여관 그리고 작은 병원 한 동, 도로를 물고 있는 1층짜리 낡은 상가 몇 개가 전부였다. 조합이 구성되고 보상에 합의 한 사람들은 빈집만 남기고 모두 떠났다. 시공사는 먼저 떠난 집부터 허물었다. 저녁이 되면 불빛이 새 나오던 창문들, 찌개가 끓던 부엌이 뜯겨 나가고 골목을 누비던 아이들의 발소리가 뜯겨 나갔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주택과 상가는 모두 허물어졌고 비교적 도로와 가까운 여관 건물과 병원만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아 남았다. 주인들은 서로 적정한 보상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합의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함께 버티며 오래 외로운 싸움을 하던 병원 건물도 얼마 전, 합의를 해주고 나갔다. 옥상으로 올라간 포클레인이 과자집 뜯어 먹듯 한층 씩 헐어 나갔다. 사람은 없고 폐건축 자재를 실어 나르는 트럭만 드나드는 길에는 전깃줄이 엉켜 있는 몇 개의 전봇대와 숨어다니던 길을 뺏겨버린 고양이들, 그리고 제대로 된 보상을 하라는 플랜카드가 절규하듯 나부끼는 낙원 여관만 마지막 투사처럼 버티고 있었다.

합의될 때까지 몇 달만 버티면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여관 관리원 일을 해보지 않겠냐고 함께 일하던 트레이너 형이 말했다. 주변에 대형 스포츠센터가 생겨 운영하던 헬스장 경영이 어려워졌다. 트레이너 중 몇몇은 떠나야 했다. 그런 나를 내보내며 소개해 준 일자리가 여관 관리원이다. 헬스장 여자들은 몸집이 큰 나를 부담스러워했지만 여관 주인 여자는 나보다 내 몸집을 더 반가워했다.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낙원여관에는 시공사 측과 조합원들이 자주 찾아왔다. 낙원 건물 때문에 공사가 늦어지자 그들은 수시로 찾아와 주인을 협박하거나 회유했다. 낙원여관은 여관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건물 자체가 노후 되어 퇴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집 없는 사람들에게 월세를 놓아 겨우 운영해 오고 있었는데 주변 집들이 모두 부서져 폐허로 변하자 그나마 월세 살고 있던 사람들이 차례차례 떠났다. 낙원이 비워지고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불시에 포클레인으로 밀고 들어올 수 있으므로 살던 사람들이 나간다는 것은 주인에게 또 다른 악재였다. 주인은 세입자들이 나가지 못하도록 월세를 아주 싸게 받았다. 건물에 사람이 살고 있으면 법이 우선이라 해도 함부로 못하기 때문이다. 정작 주인여자 집은 도로 건너편에 있고 세입자들은 볼모였다. 낙원에서 지난 4개월간 관리원 일을 했던 남자는 낙원의 내력을 설명하고 난 뒤 건물 구조에 대해 알려줬다. 지은 지 오래된 낙원의 외관은 당시만 해도 신식 건물이라 할 정도로 잘 지은 건물이다. 하지만 내부는 그때 지어진 그대로 지금까지 손보지 않고 이어져 오는 듯했다. 그때는 빛났을 계단의 붉은색 카펫은 언제부터 손보지 않았는지 군데군데 찢긴 흔적과 얼룩이 있고 벽에는 빗물 자국과 손때가 오래된 벽화처럼 남아 있었다. 1층에는 카운터와 세탁실, 화장실이 있고 2층과 4층까지는 손님방 12개가 있다. 이 중에서 쓰는 방은 몇 개 되지 않는다. 전임 관리원은 나가기 전 내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 한 달에 몇 번씩 조합원들이 오므로 여관을 비우면 안 된다. 쌀과 반찬 및 필요한 것은 주인여자에게 연락하면 가져다준다. 종종 조합원들과 싸움이 나기도 하는데 그때는 주인여자와 함께 싸워야 한다. 총 12개의 방중에서 2층에 여자 전용 두 개 3층에 남자 전용 두 개 2개 4층 1개의 방에만 사람이 살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층마다 복도를 쓸어주면 된다고 했다. 어두워지면 사람이 많아 보이게 여관 입구와 빈방에도 불을 환하게 켜두라고 했다. 조합 측 사람이 오면 대응하는 법 등 여러 가지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을 알려주었다. 사람이 세 든 방은 몇 개 되지 않지만, 월세 내는 날짜가 달라 각 방마다 받아야 할 날짜와 금액이 적힌 종이를 주며 친절하게도 세 든 사람에 대한 정보도 전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여자 전용 2층에 두 개의 방에 사람이 살고 있는데 비교적 불빛이 잘 보이는 도로 쪽 201호에 사는 여자는 선술집에서 일하는 여자다. 수면제를 자주 복용하므로 오후 2시 이후에 일어나지 않으면 두드려 보고 조용하면 강제로 문을 열어 깨워야 한다. 가끔 지나친 수면제 복용으로 병원으로 실려 간 적 있다고 했다. 2층 복도 끝에 사는 204호 여자는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가는 여자다. 역에서 노숙한 것을 자랑처럼 말하는, 아무나 보고 실없이 웃는 정신 이상한 여자라고 했다. 남자 전용 3층의 301호 남자는 일용직이다. 그 남자는 몇 년 전부터 낙원에 사는 사람으로 주인여자와 친분이 있으며 관리원의 게으름을 자주 고자질하므로 조심하라고 일렀다. 3층 304호에 사는 또 다른 남자는 할아버지였다. 살아온 과거 이야기를 거의 매일 반복하므로 그 할아버지를 만나면 바쁜 척하거나 전화 받는 척해야 한다. 그리고 여자들이 기거하는 2층을 마다하고 계단의 불편함을 딛고 4층에 살겠다고 우겨서 사는 여자, 문제는 그 여자였다. 항상 첼로를 메고 다닌다고 했다. 방세만 5개월째 밀려 있다. 여자가 자주 첼로를 켜는데 그 일로 아래층 할아버지와 다투는데 낙원을 시끄럽게 하는 주요 요인은 이 두 사람의 싸움이다. 일주일에 두 번은 언성이 오고 간다는 것이다. 모른 척하고 있으면 알아서 정리된다고 친절하게 대처법까지 일러둔다. 낙원에서 4개월을 일하며 이곳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고 오로지 자격증 공부만 했다는 남자, 그는 여기 세든 사람들에 대해 알아야 할 것, 알지 않아도 될 것까지 알려주고 떠났다.



짐을 풀고 천천히 낙원을 살핀다. 현관 입구 쪽에 카운터가 있고 그 옆에 침대와 TV가 있는 방이 하나 있다. 그 방이 내가 기거하는 방이다. 오래 관리하지 않아 건물 구석마다 거미들이 집을 짓고 그들의 낙원처럼 살고 있다 탕비실에는 가스렌지와 작은 냉장고, 라면과 쌀이 놓인 선반 그리고 개수대가 전부다. 불을 켜지 않아 어두운 2층 복도에는 오래된 이발소그림 같은 산수화와 커다란 거울이 중간에 걸려 있다. 여기에도 이미 거미들의 낙원이다. 3층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4층은 더 지저분했다. 옥상까지 한 바퀴 돌고 내려오다 2층에서 여자를 만났다. 여자는 2층 복도 창 앞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오십 대 초반쯤 되어 보였고 방금 깬 듯 부스스한 얼굴로 나를 봤다. 전 관리원이 말하던 선술집에서 일하는 여자다.

“자기도 여기 세 들어 온 거야?”

“관리원입니다.”

“뭐야, 걔 그만뒀어? 좀 오래가나 싶었는데 요즘 애들은 버틸 줄을 몰라...... 어머! 이 근육 봐, 운동 좀 했나 봐.”

여자가 팔뚝을 만지려고 다가왔다.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여자가 겸연쩍은 듯 웃으며 등을 살짝 쳤다. 그리고 빨래한 것들을 들고 옥상으로 향했다. 스포츠센터에 오는 여자들은 상류다 향기도 좋다. 여기는 환경도 사람들 수준도 다 심란하다. 나도 이들과 함께 점점 바닥으로 하류로 내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우울했다.

저녁 무렵, 2층 술집 여자가 나가며 카운터 쪽창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나는 홍이야, 미스 홍이라 불러, 잘 지내봐, 우리.”

나는 이곳 사람들과 우리라는 단어 속에 묶이고 싶지 않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직 2월이라 어둠이 일찍 온다. 간판과 빈방에 불을 켜고 라면을 먹기 위해 물을 끓이는데 말쑥한 차림에 베레모를 쓴 남자가 들어왔다. 목례했다.

“사람 새로 온다더니 너야? 몸이 좋구먼, 나도 왕년에 한 몸 했지. 인사도 할 줄 알고 자네는 참 예의가 바르군. 앞에 있던 것들은 눈도 안 맞췄어. 버르장머리 없는 놈들!”

나이며 고향 등 세심한 면접관처럼 이것저것 묻던 할아버지가 계단을 올라가다 말고 돌아본다.

“첼로 들어왔어? 첼로.”

첼로라면 4층에 사는 여자를 말하는 것 같았다.

“아직 안 왔습니다.”

“다행이구먼, 오기 전에 잠이라도 한숨 자야지, 월세 사는 주제에 첼로가 뭐야 첼로가, 방세도 못 내면서 택시를 자가용처럼 타지를 않나, 언젠가 내가 그 첼로 분질러 버리고 만다.”

그는 계단을 지팡이로 친 후 중얼거리며 천천히 올라갔다.

어두워지자 백 미터쯤에 도로를 물고 있는 환한 불빛이 여기까지 오지 못하고 낙원의 주변은 캄캄하다. 먼 불빛을 지켜보고 있는데 한 남자가 들어왔다. 일용직 남자였다. 그는 힐끗 보더니 나를 아래위로 살폈다.

“새로 온다더니 더 큰 덩치를 데려왔군, 아주 든든하겠어. 우리 누님.”

그는 별말 없이 계단을 올라갔다. 잠시 후 접은 박스를 움켜쥐고 또 한 여자가 들어왔다. 관리원이 말한 박스여자였다. 나갔던 그들은 둥지에 차례대로 깃드는 새들처럼 낙원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새로 왔나 봐, 여기 계단 밑에 있는 건 건들지 마.”

몇 개 남지 않은 치아 사이로 말이 새고 있다. 쪼그리고 앉아, 주워 온 박스를 계단 밑에 개켜 쌓더니 방으로 올라갔다. 책상에 앉아 메모지에 긁적거린다. 그만둘까? 방세는? 당장 뭐 먹고살지? 갈등의 문장들이 메모지에서 심란하게 엉킨다. 몸의 근육은 키워도 삶의 근육은 키우지 못해 작은 일에도 의지가 무너진다. 그때 커다란 첼로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 카운터 창을 옆으로 밀자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얼른 뛰어나가 첼로를 받아주려는데 여자는 어깨를 돌렸다.

“괜찮아요.”

새로 온 관리원에게 관심 없는 듯 계단을 올라갔다.

새벽 두 시쯤 간판의 불을 껐다. 잠자리가 바뀌자 좀처럼 잠이 들지 않아 뒤척였다. 책상 하나, 침대 하나 마치 관속에 누운 듯한 고시원에 비하면 이 방은 넓고 안락하다. 그럼에도 잠이 오지 않는 건 이 주변의 폐허 때문일까 아니면 폐허 속에 누울 수밖에 없는 나 때문일까......, 새벽 3시경 술집 여자가 들어왔다. 잔뜩 취한 여자는 불을 꺼버렸다고 투덜거렸다.



날이 밝기도 전 빈 트럭이 줄을 서 있다. 포클레인은 트럭 위에 폐자재들을 싣느라 요란한 소리를 낸다. 한 대가 실어 나가면 또 한 대가 줄을 서고 흙먼지를 줄이느라 뿌려 대는 물 위로 아침 햇살이 먼지처럼 앉는 광경을 물끄러미 본다. 당분간 아침마다 봐야 할 풍경이다. 계단이라도 쓸어볼까 하고 빗자루를 찾고 있는데 누군가 계단을 둔탁하게 내려온다. 발소리와 부록으로 따라오는 할아버지의 지팡이 소리다. 인사를 꾸벅했다.

“그래 그래야지, 그전에 있던 것들은 인사는커녕 나가는지 들어가는지 쳐다보지도 않고 벌레 보듯 말도 잘 안 붙였지. 내게도 304호! 이렇게 부르더군. 여기가 감옥인가? 나쁜 놈들.”

할아버지는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이라는 전 관리원의 말이 생각나 벌써 지루해졌다.

“자네 재령 이씨라고 했던가? 우리 집도 왕년에는 함경도에서 양반이었지 전쟁만 안 났어도 피붙이 하나 없이 이리 살지는 않아.”

자신의 피난 시절의 이야기부터 시대별로 꺼내 놓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아, 네, 대단하네요’ 하는 추렴을 넣었다. 그때 박스여자가 내려와 계단 아래에 모아둔 박스를 꺼내며 할아버지를 힐끗 본다.

“애들 붙잡고 옛날이야기 그만 좀 해, 애들 올 때마다 붙잡고 저 지랄이야. 요즘 애들은 그런 이야기 듣기 싫어해. 영감탱이야!”

할아버지의 과거사를 오래 아주 많이 들어왔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집도 없이 거지꼴로 역에 돌아다니는걸, 주인여자에게 말해서 데려온 게 누군데, 너는 나한테 그러면 안 돼!”

할아버지가 박스여자를 향해 지팡이를 탕탕 쳤다.

“저년이 내가 은인인 줄 모르고 까분다. 역에서 노숙하는 남자들 틈에 앉아 술을 받아 마시고 있길래 불쌍해서 차를 한 잔 사주었더니 나를 따라가겠다고 난리 치는 거야, 어쩌겠어, 남자도 아니고 여잔데 역에 둘 수 있나. 마침 주인여자가 여관에 들일 사람이 필요하다 해서 데려와 잠자는 곳도 마련해 주고 박스나 주워 먹고살라고 손수레까지 사준 게 누군데 네가 나를 무시해!”

할아버지는 박스여자와 곧 싸울 기세였다. 박스여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으며 나갔다.

“참, 관리원 올 때마다 말하는데....... 첼로 말이지, 4층 여자, 걔 좀 내보내, 시도 때도 없이 방에서 첼로를 켜대니 아주 시끄러워 죽겠어. 내가 그년 때문에 잠을 못 자, 여기가 자기 집인가? 달세 사는 주제에 첼로라니, 내가 왜 매일 나가는 줄 알아? 첼로소리 듣기 싫어서 그래. 쥐가 쇠 뜯어 먹는 소리 나 내고,”

내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모자를 고쳐 쓰고 할아버지가 나갔다. 늦게 들어온 술집 여자가 잠을 자는 사이, 일용직 남자가 아무런 눈인사도 없이 나간 사이 첼로 여자가 첼로를 안고 내려온다. 여자 한 칸, 첼로 한 칸, 마치 흰건반 검은 건반을 번갈아 두드리듯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오는 첼로 여자를 쳐다보면서 밀린 세를 받으라는 주인의 말이 생각나 여자를 불러 세웠다.

“월세가 많이 밀렸는데 정리를 좀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미안해요, 곧 드릴게요. 조금만 기다려 줄래요.”

여자는 눈을 맞추지도 않고 바닥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첼로를 매고 나갔다.

오후 2시가 지났는데 술집여자가 일어나지 않는다. 전 관리원의 말대로 가서 방문을 두드렸다. 대답이 없다. 혹시나 해서 가져갔던 비상 열쇠로 문을 열자 여자가 마네킹처럼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숨은 쉬고 있었지만 흔들어 보니 흔드는 방향대로 몸을 조금 움직일 뿐 좀처럼 미동이 없다. 구급차를 부를까 하고 전화기를 들고 망설이고 있는데 여자가 발목을 잡았다.

“괜찮아, 수면제를 먹어서 그래.”

모기 울음 만 한 목소리로 여자가 말했다. 물을 달라고 했고 찬물을 가져와 먹였다. 옷장에 기대앉은 여자는 동공이 풀린 듯 고개가 자꾸만 옆으로 기울었다.

“나 자주 이래,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자”

“......”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나 죽으려고 약 먹는 거 아니야, 자려고 먹는 거야 걱정 하지마.”

빈 컵에 다시 물을 따라준다. 여자는 갈증 난 듯 벌컥벌컥 마셨다. 세간이라고는 옷장과 TV, 일회용 버너, 냄비들, 접시들, 그리고 작은 냉장고가 있다 빨간 상자 위에 화장품이 소복하고 젊은 날의 여자가 작은 액자 안에서 웃고 있다. 하얀 꽃이 핀 화분도 놓여 있다.

“이쁘지, 저거 타이거베고니아, 철도 지났는데 꽃이 늦게 폈더라. 철모르고 살기는 쟤나 나나 똑같아.”

가만히 꽃만 들여다봤다. 긴 꽃대 위에 솜털 보송한 여린 꽃이 여자처럼 애처로워 보였다.

“별로 돌보지 않는데 죽지도 않고 잘 커, 이건 내 쉼표야. 그래도 이 적막한 방에 쟤라도 있으니 사람 사는 집 같지 않니?”

나는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여자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자긴 스물아홉 이랬지, 좋은 나이구나. 내 젊은 시절은 소나기처럼 지나간 것 같다.”

푸념인 듯 자조인 듯한 말을 하던 여자는 괜찮다고 나가라고 했다.

‘나도 지금 소나기를 맞고 있는 것일까’하고 메모지에 쓰고 방점을 찍는다. 낙원 사람들의 일상 뒤에 방점 찍는 일이 많아질 것 같다. 그들의 구질구질한 삶으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해놓고 나도 모르게 그들의 삶에 자꾸만 들어가는 것 같아 심란했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을 것 같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도시가 보여주는 활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오는 기운들이 여기는 없다. 트럭의 먼지로 하루가 시작되고 곧 철거될 몇 개의 전신주에 지탱해 있는 가로등 빛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일상만 있다. 그들이 차례대로 들락거릴 때 나는 매일 그만두겠다는 생각과 이 생각을 뒤집지 못하는 내 현실과 갈등하고 있었다.

그때 차들이 낙원 근처에 주차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조합 사람들과 시공사 사람들이 차에서 내렸다. 나는 입구 쪽에 뒷짐을 지고 서서 그들을 노려보며 주인 여자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들은 거구의 나를 보고 놀라는 듯했다. 연락받고 주인여자가 왔다. 주인과 조합원들은 선 채로 한참 동안 실랑이를 했다. 나는 주인여자가 다치지 않도록 호위했다. 그들은 주인여자에게 빠른 합의를 종용했고 여자는 악다구니를 쳤다. 그들은 강제로 집행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고 주인여자는 할 테면 해보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들이 돌아가고 여자는 법 따위는 상관없이 무조건 악착같이 버티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했다.

“이 여관은 도로와 가장 인접해 있는데 어떻게 저 오래된 주택들이나 안쪽 상가와 비슷하게 보상한다는 게 말이 되냐? 사람 없으면 포클레인 들고 와서 강제로 여관 부수려고 기회만 엿보고 있는 놈들이다. 그나마 몇 명이라도 여기 살고 있으니 못하고 있는 거야.”

함께 버티던 병원 건물도 강제 철거되었다고 했다.

다음 날 그들이 다시 와서 퇴거 명령서를 붙이고 갔다. 주인여자는 조합원이 놓고 간 종이를 갈기갈기 찢고 분하다며 울었다. 바닥에 뒹구는 종잇조각과 여자의 울분을 빗자루로 쓸어 담는다. 연이은 소란이 끝나고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빗자루를 들고 거미줄을 제거한다. 잡은 거미를 놓아주기 위해 빗자루를 털고 있는데 첼로 소리가 들렸다. 애끓게 끊어지다가도 힘 있게 당기는 선율에 이끌려 4층 계단 끝에서 연주를 듣는다. 복도를 쓰는 척하며 좀 더 가까이 가서 방 옆에 조용히 기댔다. 완전히 닫히지 않은 문틈으로 첼로여자가 보였다. 여자는 눈을 감고 시계가 걸린 벽을 향해 앉아 첼로를 켜고 있었다. 활과 손을 번갈아 가며 현의 위아래를 넘나드는 여자, 현을 뜯어낼 것처럼 강하게 또는 여리고 섬세하게 가지고 노는 듯했다. 저 작은 체구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 것일까, 그때 빗자루가‘툭’하고 넘어졌다. 첼로 소리가 멎고 여자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었다.

“방세 때문에 왔어요? 아니면 누가 또 시끄럽다고 하나요? 말일 되면 돈이 들어와요. 몇 달 치라도 줄게요.”

여자는 내가 몰래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방세 채근은 지쳤다는 듯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아닙니다. 거미줄 제거하다 첼로 소리가 좋아서 몰래 듣느라.... 전 가겠습니다. 계속하십시오. 모두 나가고 지금 낙원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급하게 내려가려는데 여자가 불렀다.

“첼로곡 좋아해요?”

여자가 고개를 내밀고 나를 쳐다봤다. 계단을 내려가려다 말고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사실 첼로는 모른다.

“전 음악을 몰라요...... 그...그런데 왠지 좀 전에 연주하신 곡은 갈피를 못잡고 있던 불안한 감정들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어서요.”

더듬거리는 말투에 여자가 살짝 웃더니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방문에 걸터앉았다. 벽에 걸린 옷가지들 일회용 버너, 몇 안 되는 식기들, 인스턴트 음식들, 책상도 없는 의자, 첼로케이스 그게 전부다. 심지어 TV도 없다. 내가 살던 고시원도 그랬고 한 칸짜리 월세방을 집이라 여기고 사는 사람들의 세간은 비슷했다.

“아까 연주한 건 졸탄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 8번이죠.”

“아, 네...... 졸...... 졸탄코다이요.”

“웃기죠, 방세도 못 내는 주제에 첼로라니.”

“아닙니다. 저는 다만.”

당신의 첼로가 폐허뿐인 낙원에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 말하고 싶었다.

“아래층 할아버지는 첼로 팔아 방세 내라고 다그치는데요, 가진 것은 없지만 첼로만큼은 팔고 싶지 않아요.”

여자가 첼로를 돌렸다. 뒤쪽에 선명하게 쓰인 글씨‘내 딸의 첫 연주회를 축하하며 아빠가’

“첫 연주회 때 아버지가 사주신 첼로에요. 파산할 지경까지 이르렀는데도 젤로만큼은 지켜주셨어요. 그런데 어떻게 팔아요.”

여자는 첼로의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아픈 가족사를 담담하게 말했다.

“첼로 메고 어디 가시는지, 매우 무거워 보이던데.”

“단원 시절 알고 지내던 분이 내 사정을 알고 파티나 결혼식 같은 행사가 있으면 불러주곤 해요. 거기서는 이런 곡 연주 안 해요. 요즘은 제가 몸도 아프고 또 젊고 예쁜 첼리스트들이 많아서 그 일도 많지 않지만, 아무튼 돈이 생기면 방세는 조금이라도 낼게요.”

여자가 웃었다. 씁쓸한 웃음 뒤에 있는 동질의 아픈 내력이 읽어져 쓸쓸했다.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다른 곡이 연주되었고 나는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끝날 때까지 연주를 들었다.

늦은 오후가 되자 할아버지와 박스여자가 들어왔다. 함께 술을 마신 듯했다.

“첼로 있어?”

“네, 오늘은 안 나갔습니다.”

“일찍 자긴 걸렀군, 방세도 안 내는 주제에 시끄럽기까지, 주인한테 당장 내보내야 한다고 말해! 안 그러면 내가 나가 버릴 거야. 갈 데가 없어서 여기 있는 줄 알아?, 주인이 사정사정해서 있어 주는 거야!”

박스여자가 할아버지를 말렸다.

“제발 좀 그만해라 영감아, 당신이나 나나 어디서 첼로 소리를 들어보기나 하겠어. 나는 평생 첼로 구경도 못했다. 402호에 돈 내고 들어도 시원찮아 영감아 헤헤.”

“먹고 살기도 힘든데 첼로는 무슨......”

박스여자가 술 취한 할아버지를 부축하며 계단을 올라갔다.

어두워지자 간판에 불을 켠다. 일용직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만취한 상태로 전화기를 붙잡고 누군가에게 욕과 막말을 하는 중이었다. 비틀거리던 남자가 바닥에 주저앉는다. 얼른 달려가 남자를 일으켜 세웠다. 계단을 혼자 올라가기도 힘들어 보였다.

“내가 이런데 살 놈이 아닌데 우리 누님이 보상받을 때까지만 여기 있어 달라고 사정사정해서 있기는 한데 나를 여기 사는 사람들이랑 똑같이 취급하면 안 된다. 나는 딴 데 집도 있는 놈이야, 퉤퉤.”

남자는 계단을 올라가며 창밖으로 침을 뱉었다. 눈이 내리고 있다. 하늘은 공평해서 이 폐허에도 눈이 내린다. 전날 저녁에 일을 나간 술집 여자는 들어오지 않았다.



조합 사람들이 다시 왔다. 덩치 큰 용역들을 데려왔다. 그들은 빨간 조끼를 입고 있었고 곧 몸으로 밀고 들어 올 기세였다. 포클레인도 한 대 끌고 왔다. 하지만 건물에 들이대지 않는 것을 보니 위협을 주기 위함인 것 같았다. 나는 어깨에 힘을 주고 다리를 벌린 채 출입문 앞에 서 있었다. 주인여자가 왔다. 손에 확성기가 들려 있었다. 용역들이 주인여자와 낙원 주위를 둘러 샀다. 주인여자는 확성기를 들고 억울하다고 소리쳤다. 대로변을 지나가던 차들이 서행하며 우리의 대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무관한 일인 듯 지나갔다. 경찰차가 오고 중재에 나선 뒤에야 그들이 돌아갔다. 목이 쉰 여자는 낙원 계단에 앉아 울었다. 주인여자 힘이 없다. 거대한 자본 앞에 낙원은 봄이 오기 전에 곧 부서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술집여자는 이틀 뒤 집으로 왔다. 급성 위궤양으로 입원을 했었다고 말했다. 여자가 돌아와 다행이었다. 뒤따라 박스여자가 엄청나게 많은 박스를 안고 들어왔다. 얼른 달려가 박스를 받아 안았다.

“길 건너에 새 마트가 문 열었는데 거기서 박스가 많이 나왔지 뭐야. 세 번이나 실어 날랐다니까, 근데 한 영감탱이가 수레를 끌고 와서 박스를 싣고 가는 거야, 여기는 내구역인데......., 뺏기지 않으려고 영감 머리를 쥐어뜯어 버렸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내가 이겼지. 오늘 완전 횡재했다. 매일 오늘만 같으면 나도 부자 되겠다.”

누군가 버린 박스 두고 치열한 싸움에서 이겨서 온 여자는 남은 박스를 정리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잠시 후 두 차례 첼로 연주가 들리는가 싶더니 요란하게 싸우는 소리가 났다. 첼로여자와 할아버지의 목소리다. 모른 척하면 알아서 정리된다고 하니 모른 척해버릴까 싶다가도 첼로여자가 궁지에 몰리는 것 같아 4층으로 올라갔다. 할아버지는 복도에서 첼로여자는 방에서 말다툼 중이었다.

“내가 방에 있을 때는 소리 내지 말랬지! 몇 번 말했어!. 너처럼 고집 센 년은 첨 본다.”

“여기 할아버지 혼자 살아요? 다 같이 없이 살면서 이것도 못 봐줘요. 내가 하루 내내 켜요? 그리고 할아버지가 집주인이에요?”

첼로여자의 악다구니도 만만치 않았다. 뭔가 홀린 듯 능란한 주법으로 연주하던 그녀가 아니었다.

“첼로나 켜고 앉아 있지 말고 나가서 돈을 벌어라! 돈을 벌어, 여기 너 혼자 사냐! 내가 너 때문에 집에 있을 수가 없어!”

“그럼 나가시던가요.”

“어디서 어른한테....... 너만큼 버릇없는 년은 첨 본다. 아비가 자식한테 예의는 안 가르치고 첼로만 가르쳤군.”

첼로여자가‘악’하고 길게 소리를 질렀다. 얼굴이 붉어지고 손을 부르르 떨었다. 분노와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전에도 말했죠, 우리 아버지 욕하지 마세요. 그런 소리 들을 분 아니에요. 할아버지는 얼마나 열심히 살아서 이런 곳에 살아요. 우리 아버지 욕할 자격 없어요.!”

부릅뜬 눈에 핏발이 섰다.

“저년이 미쳤군, 뵈는 게 없어, 내가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또 한 번 나 있을 때 첼로 소리 내면 내가 반드시 그 첼로 분질러 버린다.”

“고소 할 거에요.”

“고소, 어디 해봐라, 집도 절도 없는 년이 뭐, 고소, 내 이년을.”

할아버지가 들고 있던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나는 얼른 달려가 지팡이를 막았다. 처음부터 때릴 의도는 없었던 듯 바로 지팡이를 내려놓는다. 여자는 문을 세게 닫더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할아버지를 부축해 방에 데려다주고 내려오니 날이 저물었다. 자주 싸운다는 그들, 왠지 나는 그들의 싸움에 발톱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서로 치켜들고는 있지만 깊은 상처를 주지는 않을 것 같았다.

어두워지자 폐자재를 실어 나르던 트럭 소리가 멈췄다. 간판에 불을 켜고 빈방에도 불을 켜둔다. 주변이 온통 폐허인 낙원이 어둠으로 인해 비로소 빛나는 시간이다. 일용직 남자가 들어왔다. 여전히 통화 중이고 여전히 욕설이다. 그런데 자주 들으니 욕설이 아니라 배설 같아 그 욕이 친근하다. 바다가 조업을 나갔던 아버지와 형을 한꺼번에 데려갔을 때 하늘을 향해 무수히 욕을 해댔다. 얼마 되지 않는 시급을 주면서도 손님이 누르는 벨에 빨리 응답하지 않는다고 사장이 야단칠 때도 속으로 욕을 했고 벌겋게 타오르는 고깃집 숯덩이에 데인 손을 감싸면서 속으로 욕을 했다. 몇 푼 안 되는 돈을 주머니에 찔러주며 바다와는 멀리 떨어져 하고 싶은 일 하며 살라는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이 현실도 욕이 나온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박스여자가 카운터의 쪽창을 두드리며 인사를 하고 나가고 늦은 아침을 준비하는데 할아버지가 계단을 내려왔다. 외출하기 전 적어도 30분 이상은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늘 그래왔듯 카운터 문지방에 앉는다. 또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생수를 꺼내 미리 들이킨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쓸데없이 책상을 여닫았던 초반에 비하면 이제 오히려 담담하게 그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된다. 이제 그들과 함께 낙원의 주민이 된 것이다.

“자네 물 한 모금의 기쁨을 아는가?”

내가 물 마시는 모습을 봤으므로 오늘의 주제는 물이었다. 할아버지는 뉴스를 보다가도 어떤 주제에 꽂히면 끊임없이 이야기를 꺼냈다 한 이야기에서 나온 소재로 다른 기억을 불러내곤 했는데 이상하게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내가 월남전 때 물 때문에 동료들을 잃었어, 자네 베트남 가봤나?”

“아니요, 전 나라 밖을 벗어나 본 적 없습니다.”

할아버지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야기가 길어진다는 의미다.

“한국 군인이 한 마을에 들이닥쳤는데 누가 적인지 몰라서 남자건 여자건 때리고 죽이고 한 사건이 있었지. 우린 들 그러고 싶었겠어. 우리는 너무 지쳤고 힘들었지. 그런데 그 일에 원한을 품고 마을 사람들이 우리가 식수로 쓰려고 파 놓은 우물에 독을 넣었어 그것도 모르고 내 동료들이 그 물을 먹고 여럿 죽었지. 새로 우물을 파면 또 독을 넣고, 또 우물을 파면 또 독을 넣고...... 우리는 누구도 우물의 물을 먹으려고 하지 않았지, 땡볕에 목이 타들어 가도 함부로 먹지 못했어, 내 언젠가 동료들이 죽은 자리에 가서 우리나라 물 한 병씩 뿌리고 올 참일세.”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의 일이지만 그가 하는 이야기는 마치 내가 그 현장에 있는 듯 실감 나고 가슴이 아프거나 뭉클한 어떤 것이 치밀어 오르는 거였다. 긴 이야기를 마친 할아버지가 나가자 첼로 여자 생각이 나서 노크를 했다. 여자가 문을 조금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아래층 할아버지 나가셨어요, 첼로 연주하셔도 됩니다.”

여자는 알았다는 듯, 고맙다는 듯 눈인사를 했다. 그리고 4층 계단 입구에 쪼그리고 앉아 연주를 기다렸다. 한참 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다시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첼로 소리가 들렸다. 이번 연주는 지난번 것과 좀 달랐다. 아주 부드러운 선율, 품위 있는 고급 식당에서나 듣는 선율이었다 여자의 첼로 소리를 듣는 시간이 좋았다. 눈을 감고 선율에 몸을 맡기고 나도 모르게 내가 연주하는 것처럼 몸을 흔들었다. 앞이 보일 것 같지 않던 미래에 대한 우울과 불안이 앙금처럼 가라앉고 좀처럼 갈피를 못 잡는 생각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첼로 소리가 멈추더니 여자가 나를 불렀다.

“여기 와서 들어요.”

여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여자는 의자에 나는 벽에 기대어 섰다.

“방금 연주한 곡들은 주로 결혼식이나 파티에서 연주하는 곡들이에요. 익숙하고 밝은 곡들이죠. 이거 한번 들어볼래요?”

여자가 자세를 잡더니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조용하고 차분한, 웅장하면서도 절실함이 묻어 있는 그녀의 연주에 나는 어두운 우물 속에 있는 나를 꺼내 헹구는 느낌이 들었다.

“이 곡은 아버지가 좋아하던 곡이에요. 막스부르흐의‘신의 날’”

활짝 웃으며 곡 설명을 하는 여자, 부서진 콘크리트 더미에서 우연히 발견한 민들레처럼 여자의 첼로가 건조한 내 삶을 적시는 단비가 되고 있음을 여자는 알까. 그 후로 우리는 어떤 신호를 주고받는 사람처럼 할아버지가 외출하면 여자에게 알렸다. 덕분에 나는 첼로 연주를 들을 수 있었고 할아버지와 첼로 여자가 싸우는 일도 줄었다.



다시 열흘이 지났다. 조합원들이 또 왔다. 이번에는 더 많은 사람이 왔다 황량한 낙원 주변을 고급차가 에워 샀다. 조합원뿐만 아니라 용역들이 시공사 사람들과 함께 왔다. 경찰관도 지난번보다 많이 왔다. 나는 늘 그렇듯 낙원 입구에 버티고 섰다. 사람들의 숫자나 표정으로 봐서 이번에는 뭔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조합 측도 이번에는 작정한 듯했다. 신문사 차량도 한 대 와 있었다. 나는 눈에 힘을 주고 서 있었지만, 평소와 다른 규모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몇 번의 대치 한 적 있었어도 이토록 긴장감 있는 상황은 처음이다. 조합 측은 이번에는 작정하고 세입자들을 몰아내고 건물 철거에 돌입할 기세였다. 일용직 남자와 함께 달려온 주인여자는 또 악다구니를 쳤다. 그러더니 여관 안으로 들어가 옥상으로 올라갔다. 철거를 시작하면 여기서 뛰어내리겠다고 확성기로 소리를 질렀다. 몸집 큰 용역들이 나와 일용직 남자를 밀어내고 여관 안으로 들어왔다. 몸으로 그들을 막으려 했지만, 수적으로 우세한 그들은 옥상으로 올라가 주인 여자를 끌고 내려왔다. 주인여자는 죽어버리겠다고 소리치며 칼을 휘둘렀다. 용역들이 여자를 짓눌렀다. 나와 일용직 남자는 그들을 저지하기 위해 어깨로 용역들을 밀어내며 주인여자의 팔목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때 할아버지가 내려왔다.

“그 손 못 놔, 사람 사는 집에 와서 이래도 되는 거야, 여기가 우리 집이야 우린 더 갈 데도 없어. 우리 다 죽이고 이 건물 부수라 이놈들아!”

할아버지가 지팡이로 용역들의 등을 내리쳤다.

“할아버지도 여기 있는 거 불법입니다. 빨리 여기서 나가세요.”

주인여자가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박스여자와 술집여자가 주인여자를 어루만지다가 용역들이 주인여자를 끌어내려 하자 박스여자는 자신을 밟고 가라며 드러눕고 술집여자는 몸에 손 하나라도 대면 고소하겠다고 악다구니를 쳤다. 대열을 만들 듯 낙원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용역들과 대치했다. 조합원들과 용역들은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서서 담배를 피워대거나 같이 온 조합원들 그리고 용역회사 대표인듯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돌아갔다. 늘 그랬던 것처럼 조합 측은 여전히 낙원이 문제였고 주인여자는 무조건 버티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낙원에 세 든 사람들은 여전히 볼모였다.

다음 날, 새벽 2시경 술집 여자가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 잠이 들었다. 매캐한 냄새가 났다. 1층에 연기가 가득했고 박스를 쌓아 둔 곳에 불이 붙고 있었다. 식당 한구석에 소화기가 있었지만 이미 쓸 수 없을 만큼 오래된 것이었다. 비상벨도 작동되지 않았다. 신고 한 후, 물수건으로 입을 막고 방을 두드리며 불이 났다고 소리 질렀다. 사람들이 고함을 지르며 문을 열고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연기는 조금씩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첼로 여자의 방문을 열었다. 여자는 방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째 여자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다 내려갔을 거라는 생각에 연기 가득한 계단을 내려와 밖으로 빠져나왔다. 박스를 다 태운 불은 계단의 붉은 양탄자에 옮겨붙었고 순식간에 위층으로 번졌다. 소방차가 당도했을 때 2층 창문 밖으로 불길이 빠져나왔다. 소방관이 와서 건물 안 사람이 다 나온 거냐고 물었다. 낙원 식구들을 찾았다. 일용직 남자는 기침을 해대며 바닥에 앉아 있었고 박스여자는 울기만 했다. 술집여자가 놀란 박스여자를 껴안고 있었다. 첼로여자는 방에 없었으므로 보이지 않는 사람은 할아버지 뿐이다.

“할아버지 어디 있어요?”

일용직남자는 기침을 해대며 말했다.

“이상하다, 할아버지는 나하고 제일 먼저 나왔는데 어디 있지?”

“402호 못 봤어요?”

“304호 영감이랑 술 마시고 있는데 첼로도 없이 나가길래. 어디 가냐고 물었더니 아버지 기일이라 며칠 고향 다녀온다 했어.”

“그럼 할아버지는 어디 있지?”

술집여자가 불안한 얼굴로 나를 봤다. 분명 일용직남자가 함께 내려왔다고 했는데 할아버지는 어디 있는 걸까? 나는 소방관들에게 한 사람이 못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불길은 다행히 2층에서 잡혔다. 소방관들이 방 수색에 들어갔다. 할아버지가 기거하는 방에 갔으나 할아버지는 거기 없었다. 할아버지가 발견된 곳은 자신의 방이 있는 3층이 아니라 4층 계단 입구였고 첼로를 부둥켜안은 채 쓰려져 있었다. 불은 4층까지 번지지 않았지만 연기는 가득 찼고 할아버지는 연기로 인해 이미 숨이 멎어 있었다. 소방관들이 들것에 할아버지를 실어 내려가는 동안 나는 첼로로 안고 계단을 내려왔다. 3층 할아버지의 방문 옆에 지팡이가 그을린 채 여전히 고리에 걸려 있었다.



낙원 사람들 모두 경찰서에 불려갔다. 화재의 원인은 폐지에 던진 담배꽁초 때문이었다. 담배를 피던 술집여자가 의심을 받았지만, 그 담배는 여자가 평소에 피던 담배와 달랐으므로 일부러 화재를 냈을 거라 단정하기 어려웠다. 연락 받고 첼로 여자가 왔다. 무사한 첼로를 보고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쉬었다. 우리는 할아버지가 지켜 낸 첼로에 대해 여자에게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첼로여자가 아버지의 죽음 외에 또 안고 가야 할 하나의 죽음이 그녀의 남은 삶에 또 다른 슬픔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불이 나고 나서야 낙원의 사람들은 인사도 없이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다시 관 같은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못 준 월급을 주겠다고 연락이 와서 주인여자를 만나기 위해 다시 낙원 근처에 왔다. 반쯤 타버린 플랜카드와 검게 그을린 벽이 더 이상 여기는 아무도 살 수 없는 낙원이 되어버렸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낙원을 부수기 위해 크고 작은 포클레인만 여관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낙원에 있는 동안 친하게 지냈던 편의점 점원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들렀다. 캔 커피를 건네던 점원이 뭔가 말하고 싶어 하는 듯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두 달 남짓이지만 그래도 정들었는데 이렇게 헤어지네요.”

그는 여전히 무슨 말을 하려는 듯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제 낙원이 허물어지면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겠네요. 손님도 많아지겠어요.”

“저....... 지금 와서 이런 얘기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요. 그날 그러니까 불이 나기 전날요.”

“조합 측과 싸움 나던 날 말하는 건가요?”

“네, 편의점 출근하는 길에 경찰들이 많이 왔길래 구경하러 왔었는데......”

그는 여전히 뒷말을 주저했다.

“괜찮아요. 말해보세요.”

“그냥. 제 추측인데요. 그날 용역 중 한 사람이 조합원 대표인지 시공사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에게 한 말이 마음에 걸려서요.”

“뭐라고 했는데요.”

“그들은 내가 뒤에 서 있는 줄 모르고 작은 소리로 말했어요. 굴에서 여우를 밖으로 나오게 하려면 굴 입구에 연기를 피워야 한다고요. 심증이지만 그 이야기가 있고 난 후 불이 나니 꼭 그런 의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들이 다녀간 다음 날 새벽에 불이 났으므로 나의 추측도 그와 같았다. 1층 계단 옆의 창문은 추워도 항상 열어두었다. 그 창문은 내가 누운 방에서 가장 달이 잘 보인다. 방에 누워 하루하루 달이 커지거나 작아지는 것을 그 창을 통해 바라봤다. 그들은 그곳 통해 들어왔을 수 있다. 하지만 추측일 뿐이었다. 할아버지가 끝내 동료들이 죽은 자리에 물을 부어주고 오지는 못했어도 낙원은 시공사와 조합 측의 바람대로 아무도 살지 않는 낙원이 되었다. 누가 낙원에 불을 질렀는지 끝내 밝혀내지 못하고 사건은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투사처럼 펄럭이던 플랜카드가 바닥에 떨어지고 낙원은 천천히 무너졌다. 그리고 트럭에 실려 어딘가에 버려졌다. 덕분에 시공사 측은 아무런 저항 없이 터파기 공사에 들어갔다.



봄이 왔다. 더 밀려갈 곳 없는 낙원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할아버지가 지켜내려 했던 첼로를 들고 여자는 어디서 ‘신의 날’을 연주하고 있을까, 하얀 벚꽃 잎이 나의 이력서만큼 거리에 쌓이고 있다. 그 봄을 오래 서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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