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수 전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장·경북대의대 명예교수
이건수 전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장·경북대의대 명예교수

기내 환자들의 문진 결과 홍콩에서 수산물을 남매가 같이 먹고 구토, 설사가 있었다고 하였으며 탈수로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혈압도 떨어진 상태로 복통으로 진땀이 흘리고 있었다. 우선은 응급수술이 필요한 경우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였다. 승무원 사무장은 응급 수술이 필요할 경우에는 전체 항로 중에 1/3 지점에 운항하고 있으므로 회항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하면서 응급 구조함이 있는 기내 앞자리 쪽으로 안내하였다. 비행기는 난기류를 만나 안전벨트 경고등이 켜진 상태여서 앞으로 걸어가는 동안에 여러 번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였다. 이 느낌은 비행기 조종사는 물론이겠고 경험해 본 사람은 알 수가 있을 것이다. 거북스럽지 않은 이상야릇한 좋은(?) 느낌이었으며 내려올 때 균형만 잘 잡으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 후에 번지점프로 높은 다리 난간에서 생명을 담보로 하고 뛰어내릴 때 비명을 지르면서 느낄 수 있는 쾌감을 운동으로 개발되기도 했다. 최근 이런 무중력 상태에서의 느낌을 맛보기 위해서 거금을 주고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우주선과 비슷한 비행기에 탑승을 하여 대기권을 벗어 난 아주 높은 상공으로 올라가 기내에서 유영을 하면서 위험을 감수하면서 즐기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응급 구조함에는 내용물은 외국인 건강상태를 감안해서 만들어진 규정에 맞게 70%가 고혈압과 심장에 필요한 약이었으며 수액세트도 딱 2개 있었다. 그런데 주사약 중에 사용할 만한 약인 9년 전 추억(?)의 아트로핀 황산염(atropine sulfate)주사 앰플을 찾았다.

“필자는 소아과 전문의로 내과 환자를 진찰했던 경험은 4학년 임상실습 때와 인턴 때였으며 전문의 획득 후에 군의관 3년 시절, 전 국민 의료보험 확대로 군의 가족진료소가 폐지됨으로, 소아과 과장의 직함 외에 호흡기내과 과장과 외래과장 때의 성인 진료 경력이 있었으니 이미 9년 전의 일이다. 10주의 군의관 훈련 후 자대 배치가 되어 근무를 시작한 첫 주말 당직을 맞게 되었는데 조용하던 일요일 아침 상급부대 사령관의 왕진 부탁이 있다고 당직 행정관이 알려 왔다. 심한 복통과 설사 구토로 후송병원까지 내원하기가 힘 들어서 요청을 타진한 것이었다. 행정관은 난처한 입장으로 필자가 선택할 문제라고 강요를 하지 않았다. 병원일은 부 당직 군의관에게 맡기고 20분 거리의 관사로 간호장교를 대동하였다. 기진맥진한 환자를 침착하게 문진과 시진 그리고 촉진으로 응급수술을 필요해서 상급병원으로 후송을 보낼 것인지 필자가 치료할 것인지 결정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의사가 그렇게 하겠지만 일단 환자는 남녀노소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환자는 환자이다. 이 말은 책과 경험에서 나오는 냉철한 판단력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응급수술을 필요할 경우에 나타나는 진찰소견으로 복부 장기의 이상 유무를 판단해야 한다. 과거 병력과 특이 체질 유무를 확인하였고, 다행히 복부는 유연(soft)하였으며, 장음(bowel sound)은 증가되어 ‘꼬르륵’ 소리가 잘 들렸으며 반동 압통(rebound tenderness)도 없었다. 일단 응급 수술을 필요로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가지고 간 약통에서 0.9% 생리 식염수와 아트로핀 황산염 반 앰플 만을 주사를 하고 혈압과 맥박을 체크하였다. 복통이 사라지고 속이 편안 해 지니 금세 코를 골며 취침 중이다. 한참이 지난 후 기운을 회복한 사령관은 지난밤 과식을 후회하였다. 필자는 이렇게 군의관 생활의 첫 주말 당직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에 대해서 지금까지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기내 환자도 9년 전과 비슷한 상황으로, 수액치료와 아트로핀 주사로 같은 처치를 하였다. 주사 전에 금기 사항 등 약 설명서를 다시 한 번 필독하였다. 치료 후 반응도 똑같았다. 5분마다 화장실을 들락거리던 20대 남매는 사령관 경우와 같이 편안한 수면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기내가 조용해지니 수석 승무원은 외국인 간호사와 필자에게 그 당시에 처음 보는 1등석 승객용 각종 열대과일 접시를 제공하면서 감사의 표시를 하였다. 특히 나에게는 한국말로 자리가 불편하시면 1등석 자리로 옮겨 드리겠다는 제안도 하였으나, 2~3시간 자리를 비워 옆에 있던 중학생 이민자의 소식도 궁금하여 사양하였다. 간호사도 필자의 처치에 대단히 만족하고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환자들을 보살핌에 긍지를 느끼면서 고국에 살고 있는 손자들의 사진을 보여 주면서 가족 이야기를 쉬지 않고 하여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공산국가의 국민도 가족사랑은 우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일말의 상황이 성공적으로 종결되는 것을 직감한 수석 승무원은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필자에게 늘어놓았다. 만약 의사가 응급수술 등 응급상황이라고 판단하였다면 비행기는 회항해야 되는데, 그렇게 되면 태평양 횡단을 위해서 가득 급유한 1등 항공유를 착륙 전에 상당량을 공중에서 살포해서 착륙 시 바퀴에 무거운 하중이 실리지 않아야 안전 착륙이 가능하다고 알려 주었다. 물론 이런 경우를 위해서 보험이 들어 있겠지만 자원의 낭비는 엄청 클 수밖에 없고, 필자를 포함한 탑승객 전원의 여행 계획 차질은 아무런 보상을 받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첫 해외여행에서 아주 특이한 의사로서의 값진 경험을 행하는 동안 비행기는 어느새 LA공항에 도착하였다. 그 후 가끔씩 신문과 방송에는 기내 응급 환자 발생으로 회항할 수밖에 없다는 뉴스가 필자의 기억을 되살리곤 하였다. 지금까지 이런 경우가 2회 더 발생하였으며 모두가 국적기(?)에서 일어난 일로 회항하지 않고 기내 치료로 완료할 수 있었다. 의사의 사명은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보람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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