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수 전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장·경북대의대 명예교수
이건수 전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장·경북대의대 명예교수

해외 학회에 갈 때 미국과 유럽일 경우에 기간이 보통 6~7일 걸리게 된다. 12~14시간 탑승 중에 두 끼 식사를 포함해서 학회장에서 베푸는 만찬이나 현지 식당에는 거의 육류 중심으로 되어서 평소보다 많은 단백질과 지방질 섭취로 인한 칼로리 증가로 인해서 짧은 기간 여행 후 귀국 시 보통 1~2kg의 체중 증가를 보인다. 그러나 칼로리가 증가하면 신체는 더 힘이 생겨야 되는데 왠지 평소 같지 않은 무기력으로 현지에 도착한 후 2~3일이 지나면 벌써 집 밥 생각이 나게 된다. 장거리 비행으로 인한 피로나 시차로 인한 무기력과는 다른 ‘까라짐’의 의욕 저하인데 현지의 한국 식당을 찾아 김치라도 한 조각을 먹게 되면 눈빛에 힘이 생기며 평소의 총기를 회복하는 것을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의 원인을 의학적으로 밝혀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을지 모르나 경험을 통해서 추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각 나라에 살고 있는 인종들은 수 만년 내려오던 식생활 습관이 있기 마련인데, 인체는 여기에 적응을 하면서 살았고 그것들을 유전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자식들에게 전달하게 된다. 다윈과 월리스가 1858년 동시에 제기한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설을 통해서 자연에 적응하는 자 만이 생존의 확률이 높아지며 이런 사람의 유전자가 후세에 대를 이을 기회가 많아진다고 설명하였다. 그래서 생명체는 자연에 순응하고 동화되어 살기 마련이다. 그런데 각 민족들은 음식들 중에서 각각 독특한 발효식품들을 개발해서 먹고 있으며 건강식품이란 인식도 있다. 우리나라 발효식품은 종류도 많다. 간장, 고추장, 된장을 비롯해서 각종 채소류와 해산물의 젓갈류 등이 있다. 외국에도 요거트, 낫도(일본), 치즈, 올리브, 포도주 등 다양하며 매일 섭취하는 특징을 갖는다. 그래서 이 발효식품들은 각종 대사과정에 작용하는 효소(enzyme)의 조효소(co-enzyme)로 작용하여 신체에서 필요한 에너지 생성이나 저장 상태로의 물질들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추정된다.

음식물 대사과정에 필요한 각종 효소들은 유전자의 배열(DNA)에 의해서 적절하게 만들어지며, 다양성은 있을 수 있으나 유전자의 이상에 의한 생성 결핍이나 이상 단백질 생산 그리고 과다 생산은 해당 분야의 대사를 그르치게 된다. 이런 유전자이상의 대부분은 상염색체(1~22번 염색체) 열성 유전방식에 의해서 유전된다. 이 유전양상의 특징은 각각 보인자 부모로부터 각각 물려받은 염색체의 해당 부분(one gene, one enzyme theory)이 같은 이상이 있을 때 발현이 된다. 즉, 두 개의 염색체 중에서 하나의 염색체만 정상이라도 정상 효소를 만들 수 있으나 두 개의 염색체 모두 이상일 경우에는 정상 효소를 만들 수 없게 되어 이 효소가 작용해야 할 부분의 대사 산물은 결핍되거나 과잉 생산되는 질환을 앓게 된다. 이렇게 해서 생긴 질병을 열성 유전질환이라고 하며 상염색체에 유전인자가 있으므로 상염색체 열성유전질환으로 분류하게 된다. 열성유전의 특징은 25%의 확률로 형제간에 많이 발생하게 되며 당연히 가까운 친척끼리 결혼했을 때 자녀에게서 발명율이 현저하게 증가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래 동안 동성동본이라도 금혼시키는 지혜로 유전질환의 발생을 낮춘 높은 선견지명의 민족임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4촌 이내면 금혼이라는 완화법으로 되어 의학유전학자의 한 사람으로 걱정이 된다. 과거 고대 그리스, 유럽의 왕가를 비롯해서 이스라엘, 일본 등에서는 근친혼(가까운 친척끼리 결혼)으로 인해서 이런 열성유전질환이 상대적으로 증가하였다. 유전자 이상에 의한 증상은 출생 전에 사산의 형태로도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왕가에서는 왕위를 이을 자식에 대한 기대가 일반 가정에서 보다 더 절실할 수가 있다.

애리조나 주, 투산(Tucson) 시에 위치한 애리조나 주립대학 암센터병원에 2주간 파견 근무할 때 1986년의 일이다. 우연하게 만난 한국인 여의사(그 당시 치료방사선과 전공의)의 도움도 컸지만, 그곳에 기거할 때 한국인 식당의 여종업원은 나와 유일하게 한국말로 대화할 수 있는 동포였다. 변함없이 저녁 식사 때 찾아 갔었는데 ‘이번 주말에 시간이 되면 같이 한국인 교회에 가자’고 해서 동행하게 되었다. 설교는 곽규석(후라이 보이) 목사로 특별하게 초청되었다고 했다. 필자가 어리고 젊었을 때, 탑(top) 코미디언으로 항상 웃음보따리를 선사하는 바람에 그의 표정 하나하나가 필자를 기쁘게 했다. 2시간 가까이 자신의 성장기와 공군에 군복무를 하면서 영어로 통역했던 경력, 코미디언으로서의 전성기, 경영자로서의 실패담과 피신 그리고 목사로서의 인생 전환기(turning point)를 마련한 뒤 마음의 평온을 찾았다는 자신의 일대기를 하나님의 말씀과 비유하면서 설교를 하는데 엄숙함과 폭소로 2시간이 언제 흘러갔는지 모르게 평생 기억에 남는 시간을 가졌다. 참석자로는 그 지역 한국인 교민과 외국인 가족 포함해서 200명 정도였으며, 목회 후 친교 시간에는 필자와 마주앉아 한 시간 동안 다과도 같이 하면서 인사도 나눴다. 그 후에 한국 뉴스를 통해서 1999년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필자에게는 울고 웃기며 했던 그때의 설교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게 자리 잡고 있다. 아쉬운 게 있다면, 그렇게 유명했던 분과 같이 사진을 찍지 못했다는 것과 sign을 받아 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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