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수 전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장·경북대의대 명예교수

근친혼의 결과로 인한 상염색체 열성 유전되는 대사이상 질환으로 이스라엘의 한 민족(Ashkenazi)에서 많이 발생(3,500명 중 1명)하는 질환인 Tay-Sachs병은 이상 지질(ganglioside)의 축적으로 신경과 운동의 퇴행과 특이한 얼굴, 경련, 시력과 청력 소실이 진행되면서 사망하는 질환이다. 여기에 관계되는 유전자(Hex-A)는 염색체 15번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인은 타민족에 비해서 책에 나오는 유전질환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므로 다행스럽게 생각되지만 10년 전부터 증가하기 시작한 다른 민족과의 국제결혼으로 인한 2세의 출생은 그 나라에서 발생하는 유전질환의 출현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동남아 국가에서 발생률이 높은 혈색소이상 질환이 한 예로 ‘탈라세미아 증후군’인데 ‘선천용혈빈혈’을 일으켜 정상발육에 지장을 초래하며 정상 생활이 어렵다. 의학용어 설명에서 ‘선천성’이란 출생 시 증상이 있다는 뜻이고, ‘용혈성’이란 적혈구가 정상 수명(120일)을 살지 못하고 조기에 파괴되어 적혈구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고, ‘빈혈’이란 적혈구의 수나 크기가 정상치 보다 낮으므로 장기에 산소 공급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즉, ‘선천성 용혈빈혈’이란 출생 시부터 적혈구가 조기 파괴되어 일으키는 빈혈을 의미한다. 혈구 중에서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의 기능은 각각 체내 산소공급, 세균 탐식, 지혈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적혈구는 호흡으로 폐 속에 들어온 산소와 결합하여 신체 모든 장기에 필요한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업무를 갖고 있다. 어떠한 원인이라도 산소 보급에 문제가 발생하면 신체 장기 전반의 부실로 건강을 지키는 것은 어려우며 대표되는 질환이 빈혈이다. 적혈구의 숫자가 정상 이하이거나 충실하지 못한 적혈구가 다수를 차지할 경우에 빈혈을 초래한다. 즉, 출혈이 많았거나, 적혈구가 수명이 짧아 조기 파괴가 일어났거나, 골수에서의 생산이 저하되었을 경우, 그리고 정상 적혈구 형성에 필수 영양소인 철분, 비타민 B12 등이 부족하면 빈혈이 발생한다.

빈혈은 누구나 조금은 있을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해서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환자분들에게 이해를 돕기 위해서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광부가 갱도에서 매몰되면 구조될 때까지 온 국민은 살아 돌아오기를 기대하는데, 30일이 지나서 구조된 사람은 ‘밥은 없어서 먹지 못했지만, 지하수만으로 한 달을 버틸 수 있었다’고 이야기해서, ‘한 달간 밥 없이도 살 수 있구나’ 라고 알고 있다. ‘어떠한 일이 관철되지 않을 때 흔히 정치인들은 단식에 돌입하게 되는데 항상 옆에 물을 비치하고 있다. 물까지 마시지 않으면 탈수로 7일을 버티기 힘들기 때문이다.’ ‘전쟁영화를 보면 은밀한 작전 때 적군의 뒤에서 목을 조르며 5분 간 숨을 쉬지 못하게 하면 상대는 생명을 잃게 되는데 이유는 심장과 뇌는 5분간 산소 공급을 차단하면 돌이킬 수 없는 주검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명 유지에는 밥보다 물보다 더 필요로 하는 것이 산소 공급이고 이것을 위해서 적혈구(빈혈 해소)가 필수적이다.’라고 강조해서 설명을 해 준다. 빈혈은 모든 장기에 필수적인 영양소이며 수치가 낮을수록 신체 모든 기관은 기능이 떨어져 성장과 발육저하 뿐 아니라, 질병에 취약하게 되고, 급성 심정지의 원인(2018년, KBS-1TV 뉴스 방영)이 되기도 하며, 치매의 주 원인이기도 하다. 살 찐 사람은 영양이 풍부해서 빈혈이 없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살이 쪘다는 것은 체내 지방층이 많아 졌을 때 생기는 결과이고 철분 등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철결핍빈혈의 발생과는 무관하다. 그 외에 빈혈의 원인은 다양해서 적혈구내 이상으로 인한 효소이상 질환은 선천성 용혈(적혈구의 조기 파괴)을 일으켜 심한 빈혈 소견을 보이며 이 역시 유전자 이상으로 유전되는 특징을 가진다. 유전적 요인이 없이 적혈구 외적인 문제로 용혈이 증가하는 경우에 면역 기전이 원인이 된다.

6·25 전쟁 후, 1960~70대 신문에는 특히 겨울철에 안타까운 기사를 접하게 되는데, 연탄가스 중독과 복어 독에 의한 사망 소식이었다. 재래식 온돌을 따뜻하게 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시커먼 구공탄이다. 화력이 좋아서 하루에 한 번 교환하면 추운 겨울 아랫목을 뜨겁게 달굴 수가 있어서 웬만한 가정집에서는 필수적인 난방 도구였다. 형제들은 모두가 한 이불 속으로 발을 집어넣고 오손도손 그 날 있었던 모든 일들을 이야기하며 서로를 위로하며 지냈던 가족 화목의 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가끔은 바닥에서 새어 나온 일산화탄소(CO 가스, 무색무취)의 누출로 인한 참으로 애석한 일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일산화탄소는 산소보다 수백 배 적혈구와 친화력이 높아서 정상적인 적혈구(빈혈이 없더라도)가 있다 하더라도 체내 산소 공급의 저하로 쉽게 생명을 잃게 된다. 그러나 1970년대 고압 산소통 기기의 개발로 응급실에 일찍 도착하면 그나마 살릴 수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러나 응급실에 비치된 고압 산소기의 숫자가 많지 않아서 일가족 중독 시에는 누구를 먼저 치료하느냐가 의료진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온돌의 개량으로 이런 일의 발생은 크게 줄어 들었지만, 인위적으로 밀폐 공간내에서 부탄가스 흡입에 의한 사망은 해결해야 할 또 다른 사회적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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