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했던 흉물 도심 속 명물로

포항 철길숲 항공사진.포항시

세계의 모든 문물이 집약돼 누구나 찾고 싶어 하는 도시 뉴욕. 그곳 중심부인 맨해튼 남서부에 고가형태로 놓인 화물철도가 있었다. 한때 산업 발전 상징물처럼 여겨졌던 이 고가 화물철도 노선은 그러나 이후 도시 산업구조가 금융 산업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쓸모없는 애물단지가 돼버렸다. 뉴욕시는 이 버려진 고가철도에 꽃을 심고, 나무를 심고, 조명과 세련된 조형물을 설치해 하늘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복잡한 뉴욕 도심에서 오히려 조용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고 멋지게 디자인된 벤치에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야생화를 볼 수도 있다. 또 고가도로를 걷다 보니 지상에서 볼 수 없던 것들이 다른 각도에서 다가온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하이라인(High Line)이다. 도시미관을 해치던 흉물로, 그 누구도 가기를 꺼려 하던 곳이 이제는 시민은 물론 도시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러보고 싶은 명소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 서울시에서 이를 모방한 사례가 있다. ‘서울로 7017’이라 이름 붙였다. 1970년에 만들어진 차량이 다니는 고가도로를 2017년에 사람이 다니는 인도로 바꾸었다 해서 연도의 뒷 숫자를 연결한 7017이라는 숫자가 붙었다고 한다.

서울역 북쪽의 왕복2차선 고가차도가 노후되자 이를 시민들이 걸을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서울로’의 바닥은 뉴욕의 하이라인과 달리 시멘트 바닥 그대로이다. 녹지가 없다. 그러다 보니 콘크리트 화분을 길에 이리저리 변화를 주면서 두었는데 그늘이라고는 생길 수 없는 식물들이다 보니 오히려 화분 사이를 피해 걸어야 하는 느낌이라 그리 마음에 와 닿지는 않는다. 그늘 없는 시멘트 바닥이면 여름철에 과연 걷고 싶을까라는 의구심도 든다.

뉴욕의 폐철도를 활용한 사례는 포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동해안 최적의 항구 도시 포항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철도가 만들어졌다. 동해중부선으로 1917년에 경주에서 포항 노선이, 그리고 1919년에 포항에서 현재 동빈내항 근처의 학산역까지 철로가 놓였다. 뿐만 아니라 포항 북쪽으로 23km 떨어진 송라면까지의 노선은 1942년 비록 노반이 깔리긴 했지만 개통되지는 못했다. 포항역 북쪽으로는 우현동에 유류저장고가 있어서 포항역을 지나서도 철도가 이어져 있었다. 포항의 옛 모습을 기억하는 분들은 나루끝에 철로가 놓인 고가다리를 기억하실 테다. 그러나 광복 이후 포항~학산 간 노선은 폐지되고, 경주~포항 노선은 동해남부선으로 편입됐다.

철길숲 전경. 포항시

포항시가 노선폐지로 없어진 철도 구간을 걷기 좋은 숲 공간으로 만든 것은 2009년부터이다. 우현동 유류저장고에서 서산터널을 지나 신흥동 안포건널목까지 나무를 심고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를 만들었다. 철로 주변도 쾌적하게 꾸몄다. 특히 옛날 우현동 철길 일대는 연탄공장까지 있어 도시의 후미진 곳이었는데, 철길숲이 조성되면서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그리고 2015년 KTX 신역사로 포항역이 이전함에 따라 기존의 포항역에서 효자역까지의 구간 또한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도가 됨에 따라 이 구간에서 역시, 철도를 걷어내어 나무를 심고 조형물을 설치하는 등 시민들이 걷기 좋은 산책로의 숲을 조성했다. 도심의 기능을 갈라놓았던 과거 철도가 이렇게 사람이 다니는 철길숲으로 다시 태어남으로써 도시에 활력을 주는 장소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봄철 철길숲 전경. 포항시

그러한 점이 높이 평가돼 포항 철길숲은 2019년 국토교통부 주관 ‘대한민국 국토대전 경관부문 우수상’과 대통령 직속 균형발전 위원회 주관 ‘균형발전사업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포항시는 산림청이 주관한 2019년 녹색도시 우수사례 공모에서 도시숲 부문 최우수단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숲의 가치와 효용에 대해서 우리는 이젠 익히 잘 알고 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듯이 멀리 있어 자주 못 보는 친척보다 가까이서 자주 보는 이웃이 더 가까운 것처럼 숲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유서 깊고 좋은 숲이라도 일부러 시간을 내야 한다면 그렇게 자주 이용하지는 못할 것이다. 예전에는 마을 자체가 숲이었고, 숲이 마을과 함께 있었다면, 지금의 도시는 숲과 너무도 동떨어져, 도심에서 제대로 된 숲을 찾기가 꽤나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도심에 숲이 만들어지는 것은 그만큼 귀하고도 중요한 일이다. 마을숲은 마을 사람들의 삶과 관련해 마을 주변에 조성돼 온 숲을 의미한다. 하지만 농촌사회가 붕괴되고 기존 마을에 사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찾지 않는 마을숲은 보호해야 할 대상이 됐다. 새로이 사람들이 사는 공간에는 새로운 마을숲의 기능을 할 숲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철길숲은 어쩌면 현재의 마을숲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기존의 마을숲이 마을 사람들의 역사, 문화,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것처럼 새롭게 조성된 철길숲 역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철길숲이 조성된 후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걸어 다니고, 또 가족들이 함께 나무 아래 앉아 즐기는 모습을 보며 도시숲의 가치를 새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아쉬움도 없지는 않다. 철길숲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돋보이게 할 구 포항역 건물이 철거됐기 때문이다. 모든 철로의 출발점이자 종착지였던 역이 없어졌다. 구 포항역 건물은 새로이 지어지기도 했지만 1918년부터 포항시민들과 애환을 같이 해왔다. 1935년에 먹고살기가 힘들어 만주로 떠났던 이들이 이용한 곳도, 1950년 총알 자국이 뚜렷하게 남은 곳도 포항역이었다. 많은 해병대원과 그의 가족이 떠나며 눈물을 흘렸을 곳 또한 포항역이었다. 이렇듯 100여 년 동안 포항을 지켜왔던 포항역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앞서 예를 들었던 뉴욕의 하이라인은, 1930년대 ‘뉴욕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공 발전 시설’로 칭송받았던 고가철도가 쓸모가 없어져서 철거 여론이 나올 때 이를 보존하고 가꾸어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예술적으로 새로이 탄생한 고가의 보행도로도 아름답지만, 철거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 좋은 사례의 의미도 크다.

포항역의 철거된 후, 철길을 가로지르는 방향으로 차량이 다니는 도로가 생겼다. 교통의 흐름이 좋아진 장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포항역 앞의 광장을 잃게 된 점 또한 아쉬움이다. 역 앞 광장은 기쁜 일이어서든, 슬픈 일이어서든 포항 시민들이 모이는 광장 구실을 톡톡히 해오고 있었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이 서울시민들에게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살펴본다면, 사라진 포항역 광장은 더욱 아쉽게 다가온다. 만약 보존되었더라면 기차가 다니던 철길이 사람들이 다니는 철길숲으로 되살아난 지금에 더욱 광장의 기능을 발휘했으리라. 전통 마을숲도 마을 공동의 열린 공간으로서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의 역할을 하지 않았던가.

효자역에서 이미 기존에 조성된 우현동까지의 철길숲 총 길이는 6.6㎞이다. 서울역 앞 서울로의 길이가 1㎞ 정도이고 뉴욕의 하이라인이 2.3㎞인 것에 비해 무척 긴 거리다. 이 정도 길이라면 산책뿐만 아니라 운동도 충분히 되는 거리다. 아쉬움도 있지만 도심을 가로지르던 삭막한 철도가 숲속에서처럼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도심 숲길로 재탄생하게 된 건 포항의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뉴욕에 하이라인(High Line)이 있다면 포항에는 철길숲이 있다.

이재원 경북 생명의 숲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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