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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을 걷다] 8. 두 곳서 뻗어 나온 물이 계곡으로 떨어져 우렁찬 소리에 발 담가보네
[팔공산을 걷다] 8. 두 곳서 뻗어 나온 물이 계곡으로 떨어져 우렁찬 소리에 발 담가보네
  • 임수진 수필가
  • 승인 2020년 05월 07일 21시 00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5월 08일 금요일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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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비들 풍류 즐긴 명연폭포 골짜기 속 시원한 바람은 여전
상류지점에서 내려다 본 명연폭포

대왕재가 있는 선명학교서 여행을 시작한다. 대구 구간 끝이자 칠곡 구간 시작지라 할 수 있다. 초입은 야트막한 오솔길이다.

대왕재 &선명학교 서 출발
아기자기 예쁜 명성학교 학생 야외 학습장

선명학교 학생들의 야외활동 장소로 이용되는 곳이라 아기자기하게 꾸며졌다.

당정마을에서 시작된 길과 교차점

500m쯤 걸어가면 당정 마을에서 올라온 길과 만난다. 겹벚꽃이 화사한 교차지점에 이정목이 나무인형처럼 서 있다.

대구시 동구와 경북 칠곡 경계지점

동산 느낌의 산책길에 햇살이 축복처럼 내리고 찔레꽃은 얼굴이 뽀얀 아기만큼이나 사랑스럽다. 그쯤에 대구시 동구 5구간과 경상북도 칠곡군 6구간 경계 표지판이 있다. 경계라는 의미가 주는 뉘앙스가 참 오묘하다. 이것과 저것, 어제와 오늘, 새벽과 저녁 사이. 그러고 보면 한 생을 살아낸다는 건 수많은 경계를 경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계를 통해 경험이 쌓이고 나이를 먹고 마지막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다.

경계가 선명한 바위

갑자기 왜 경계로 생각이 넘어갔을까. 대구시와 칠곡군 사이, 교집합이랄 수 있는 근처 어디쯤에서 정확하게 반으로 쪼개진 바위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둘로 나눠졌다는 건 원래 하나였다는 전제가 성립할 때 가능한 일이다. 삶이 없다면 죽음도 없는 것처럼 그것과 이것이 있어 모든 것이 분명해진 건 사실이다.

기성마을로 접어들며

숲길로 내려가면 왼쪽에 공사 중인 견성사 철골 구조물이 보인다. 명연폭포를 가려면 기성마을로 내려가야 한다. 이곳 역시 이미 지나쳐온 수많은 마을처럼 전원주택이 참 예쁘다. 마을 앞 도덕산은 둥글둥글 순하고 애기똥풀은 노랗게 웃었다.

팔공산로

마을을 내려와 팔공산로를 따라 부계 방향으로 계속 걸었다. 가좌 삼거리를 지나 법성 교차로에서 한티 방향으로 가서 팔공 요양원 앞을 지났다.

허공을 가로지른 가양천교
테크길과 자연, 가양천교의 조화

좁다란 임도 끝 지점에 이르면 허공을 가로지른 가양천교가 보인다.

명연폭포 & 계곡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

그 아래가 조선의 선비들이 시를 지으며 풍류를 즐겼다는 명연폭포이다.

두 개의 물줄기가 합쳐져 계곡으로 떨어지는데 그 소리가 워낙 웅장해서 조선의 어느 학자는 석종이 울린다 하였고 또 다른 학자는 하늘이 숨겨둔 기이하고 절묘한 승지라며 감탄했다. 한때 영남지역을 대표한 학자 조병선(1873~1956)도 이곳에서 벗들과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 한다.

모임에 늦게 와서 옷깃을 바로잡으니
울소의 물과 돌이 맑은 소리를 실었네.
골짜기 바람이 시원하게 얼굴에 살짝 스치고
산위에 걸린 해는 숲으로 들어가네.
수작 못해 부끄러워 모과를 던지니
그대는 뜻을 알고 거문고를 안았네.
세간의 푸른 체증이 끝내 병이 되어
죽은들 이 마음을 가련하다 여길까.

명연폭포 데크길

물소리는 그때만큼 울림통이 크지 않지만 계곡은 깊었고 골짜기에 살고 있는 바람은 여전히 시원했다.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데크길은 계곡을 굽어볼 수 있게 설계되었고 높다란 가양천교와 거대한 대치를 이뤘다. 계곡 상류에 발을 담그고 잠시 앉아 있었다. 아직은 발이 시리지만 바위를 타고 흐르는 물소리는 청명했다.

명연폭포서 한티로 가는 길

이 물줄기는 천주교 한티 순교지와 참샘이 농원에서 시작되어 이곳에서 합쳐진 후 다시 동명 저수지로 흘러간다. 만물은 시작점과 끝점이 있기 마련이라 어떤 것의 마지막은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하여 세상은, 과거에서 현재, 현재에서 미래로 순환을 거듭한다.

득명교에서 바라본 팔공터널

다시 시작된 여행은 산길과 도로, 임도를 교차했다. 가 볼 곳이 많아 득명교를 지나면서 조금 빠르게 걸었다. 가로수 길은 그늘이 짙었다. 벌써 그늘이 반가운 계절이다. 진남문보다 철쭉이 여행객을 먼저 맞는다. 생활 속 거리두기에 들어가면서 주차장엔 차가 제법 많았고 몇 개월 만에 등산객도 보인다.

가산산성
철쭉과 가산산성

가산산성은 사적 제216호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국방의 중요성을 절감한 경상도 감찰사 이명웅이 앞장섰다. 인조 17년의 일이었다. 장정 10만 여명을 동원하여 이듬해인 1640년에 내성이 완공되었다. 하지만 살아 있거나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러하듯 이곳도 1895년 고종 때 폐성이 되고 이후 한국전쟁을 겪었다. 풍파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아 1954년에는 큰 홍수가 나면서 성내의 많은 건물과 성벽이 무너졌다

정면에서 찍은 진남문
정면에서 찍은 진남문

. 다행인 건 굴곡 많은 세월에 비해 그나마 진남문은 보존이 잘 된 상태이다. 성곽을 볼 때마다 겸허해진다. 돌 하나하나가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호흡과 숨결, 피땀과 희생이 담겼을까 싶어서다.

한티순교성지
한티순교성지 성당 앞 조각상

진남문을 끝으로 오늘 둘러볼 둘레길 6코스는 끝났지만 한국의 아름다운 길에 있는 한티순교성지에 잠깐 들렀다. 순교자들이 살고 죽고 묻힌 곳이라 왠지 조심스러웠다. 1801년 신유박해가 끝났음에도 나라에서는 천주교 신자들을 자주 박해했다. 신앙이 노출된 사람들은 신변의 위협 때문에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안전한 곳을 찾아 경상도와 강원도를 떠돌았다. 을해박해(1815)와 정해박해(1827)를 전후해 이곳으로도 신자들이 숨어들었다.

한티순교성지 순례자 성당 앞 마리아상
한티순교성지 순례자 성당 앞

하지만 병인박해(1866)가 시작되면서 배교하지 않은 신자들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이 시작되었다. 발각이 되는 즉시 죽였고 그들이 살던 마을은 불태웠다. 이곳 역시 안전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확인된 순교자의 묘는 모두 37기라 한다. 가실에서 한티재까지 45.6킬로는 십자가의 길이다. 돌아보고 비우고 뉘우치고 용서하는 길로 구성되어 있다. 성모상은 순례자 성당 앞에 순백의 차림으로 서 있다.

송림사 대웅전과 오층전탑
송림사 대웅전 석가모니 삼존불

멀지 않은 곳에 송림사가 있어 그곳도 들렀다. 보물 제189호인 오층 전탑이 보고 싶어서다. 흙으로 구운 벽돌을 사용하였고 통일신라시대 작품이다. 1959년 해체보수 과정에서 화려한 금제 전각형 사리기와 목불, 녹색 유리잔, 청동불 등의 보물이 발견되었다. 무엇보다 금동의 상륜부는 신라시대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는 평이다.

송림사 오층 전탑

섬세한 아름다움이 고고해서 고개를 젖히고 한참을 올려다보았더니 목이 아프다. 대웅전엔 석가모니 삼존불이 모셔져 있고 편액은 조선 숙종의 어필이다. 사찰 앞에선 계곡바람이 불고 주변엔 소나무가 울창하다. 송림사를 두고 옛 선인이 숲에서 절이 우뚝 솟았다 하였다더니 딱 그 느낌이다. 오색찬란한 연등이 세상사 둥글둥글, 근심을 잊게 한다. 임수진 수필가

임수진 수필가

주변에 가 볼만한 곳

▶명연폭포
팔공산 둘레길 6구간에 위치
예전엔 울소폭포라고도 불렸으며 조선조 시인묵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한티순교성지
경북 칠곡군 동명면 한티로 1길 69
가실에서 한티재까지 45.6킬로는 십자가의 길이다.

▶송림사
경북 칠곡군 동명면 송림길 73
신라의 건축물인 오층전탑과 효종 8년에 조성된 목조석가삼존불좌상이 대웅전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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