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성지를 찾아서’ 이번 시간 찾아간 호국 성지는 대전리 3.1만세촌과 대전3.1의거 기념관입니다. 이 곳 대전리 마을은 3.1운동 때 영일 지역의 만세운동의 근거지가 된 마을이며 이 곳에서 14명의 3.1의사가 난 곳으로 전국에서도 유례를 찾아 볼수 없는 호국성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시호 유족회장님의 설명을 들으며 14인 3.1의사분들의 손길이 담긴 물건들과 우리 포항지역에서 일어나 3.1만세 운동의 소중한 유산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세명고 WeWe동아리 학생들이 대전3.1의거 기념관에서 안시호 대전3.1독립운동 유족회 회장으로 부터 전시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세명고 WeWe동아리 학생들이 대전3.1의거 기념관에서 안시호 대전3.1독립운동 유족회 회장으로 부터 전시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어쩌면 평범한 생활민속 자료 일수도 있는 엿가위, 목수공구, 벼루, 성경책등 이 모두가 대한 독립을 외쳤던 3.1만세 운동을 위해 쓰여졌던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되어 놀라웠고 조상님들에게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대전3.1의거 기념과 옆에는 이준석 의사의 생가가 복원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3.1만세운동에 쓰였던 태극기를 만들고 만세운동을 계획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세명고 WeWe동아리 학생들이 안시호 대전3.1독립운동유족회 회장에게 이준석 의사의 복원된 생가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세명고 WeWe동아리 학생들이 안시호 대전3.1독립운동유족회 회장에게 이준석 의사의 복원된 생가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이준석 의사의 생가에서 짧게나마 안시회 유족회장님과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습니다.

Q. 유공자 어르신께서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르셨는데요 후손으로써의 심정은 어떠신가요?

안시호/대전3.1독립운동 유족회 회장
나라를 위해서 그렇게 하시다가 옥고를 치르셨는데 사실은 가슴이 멍하죠. 저 같은 경우에는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래요. 저희 아버지가 그 당시에 6살이었어요. 6살이었는데 옥고로 인해 일경들의 고문에 의해 (할아버지가)옥고를 치르시고 나와서 2년 만에 돌아가셨어요.고문 여독으로.. 저희 아버지가 그 당시에 8살이었는데 아버지 없는 자식으로서 자라왔다는게 좀 그렇잖아요. 그런 거 생각하면 참 가슴이 멍해요. 멍하고 어른들이 진짜로 나라를 위해서 고생을 하셨구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Q. 현재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이 있으신가요?

안시호/대전 3.1독립운동 유족회 회장
요즘 학생들은 좀 신세대다 보니깐 국가에 관해서는 독립운동 이런 거에 대해 제가 생각했을 땐 그렇게 깊게 생각 안 하는 거 같아요 국가가 어떤 건지 국가 형성된 그런 것들을 공부를 좀 하고 나라에 대해서 나라에 대한 고마움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생각했으면 하는 그런 바램이 있습니다.

대전3.1의거 기념관과 이준석 의사의 생가를 둘러보고 대전리 3.1만세촌 광장을 걸었습니다.

광장 담벼락에는 태극기와 그 당시 3.1만세 운동의 모습을 재현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광복이 있기 까지 3.1운동의 정신을 바탕으로 독립을 위해 많은 조상님들이 독립운동을 하셨다고 안시화 대전3.1독립운동 유족회 회장님이 알려주셨는데요. 독립운동 정신의 바탕이 된 3.1운동이 이곳 포항 대전리가 근거지가 되어 퍼져나갔다는 사실에 감사함과 자부심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특별한 날에만 감사함을 전하고 생각하기보다는 평소에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치신 많은 독립유공자들분과 조상님들에게 감사한 마음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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