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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구 근대미술사] 25. 살아있는 인문학, 시작은 기록이다
[경북·대구 근대미술사] 25. 살아있는 인문학, 시작은 기록이다
  • 박경숙 큐레이터 화가
  • 승인 2020년 12월 01일 18시 32분
  • 지면게재일 2020년 12월 02일 수요일
  • 1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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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되지 않은 이야기 불러내니 경북·대구 문화 불모지 옛말
1980년대 포항일요화가 전시회 오픈사진 (장두건, 박원식, 김두호, 박수철)포항문예공간

‘불모지(不毛地)’라는 사전적 의미는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거칠고 메마른 땅. 또는 어떠한 사물이나 현상이 발달돼 있지 않은 곳을 이르는 말로 정의되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우리 지역사회에서 귀가 닳도록 들어 왔던 단어가 있다면 바로 ‘문화예술의 불모지’라는 단어였다. 지역방송이나 언론에서 우리 지역 문화예술 환경을 평가할 때마다 단골 언어로 사용되어졌고, 지역 원로들도 항상 입을 모아서 말씀하셨다.

1987년 포항미술협회 승인 자축 사진(오른쪽 이창연, 왼쪽 박인호,조희수, 배원복, 신정기 뒷쪽 오른쪽부터 이원창, 김두호, 배현철, 강문길, 명동수, 류영재, 김미지

또한 모든 공기관에서 문화예술 행사를 시작하는 서문에는 우리지역 문화의 불모지를 운운하면서 시작했다가, 후문에는 이번 행사가 지역 ‘문화예술의 불모지’에 큰 기여가 될 것이라는 문구로 끝을 맺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마치 한국 모든 음식에 반드시 들어가는 된장과 간장의 양념처럼 우리 지역 곳곳에 쓰이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감쪽 같이 ‘문화예술의 불모지’란 단어가 쏙 들어 가버렸다. ‘언제 그러한 단어를 사용했느냐’라는 반문을 해 올 정도로 ‘문화예술의 불모지’라는 단어가 완전히 자취를 감춰 버렸다. 그만큼 우리지역이 문화예술의 양적인 팽창과 질적인 성장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세계인이 사랑하는 화가는 빈센트 반 고흐이다. 우리들은 고흐의 작품보다 오히려 그가 남긴 주변 인물들의 관계, 수많은 자료와 사건이 고흐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 지역에도 근대미술사에 중요한 화가들과 거기에 얽힌 수 많은 살아있는 이야기, 즉 인문학적인 가치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인물과 작품들이 묻혀져 있었고, 알리려고 하는 의지가 그동안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자가 쓴 『경북·대구 근대미술사』 연재 글은 지역민들에게 지역 문화예술사에 대한 관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돼 무척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된다. 포항미술의 발자취와 인물, 그들의 작품제작 동기 등 각종 자료와 함께 살펴봄으로써 대도시와의 경쟁에서 우리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화된 문화예술적 자원으로 쓰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이러한 자료들은 지역민들이 당연히 교양적인 측면에서 숙지해야 되는 사항들이고, 내가 숨 쉬는 이곳이 행복의 근원임을 알리고자 했다. 글의 내용은 우리 지역의 근대미술 이야기를 시각적 재미와 잊혀질 뻔한 인문학적 내용을 첨가해 재미를 동시에 부여함으로써, 과거가 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는 역사적 인식을 쉽게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1978년 두꺼비 다방 전시전경(왼쪽 강문길, 김두호, 오른쪽 이방웅 등)

큐레이터라는 직업은 풍성한 작가들과 다양한 작품성으로 맛있는 전시기획을 만들어내는 직업이다. 1991년 1월 대백갤러리에서 첫 큐레이터 직무를 펼쳐오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이라면 우리 지역의 빈곤한 작가층과 미술사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던 사실이다. 이러한 환경은 작가들에게 지속적인 전시 활동을 어렵게 만들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했다. 그래서 먼저 시작한 것이 지역 문화예술사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는 일이었고 관심을 가져야 되겠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첫 정보를 제공해 주었던 자료는 ‘포항시사’와 ‘영일만시사’였고, 이를 바탕으로 문화예술의 흐름과 원로작가들의 조사를 시작하게 됐다. 이 자료에는 이름만 대략적으로 언급할 뿐이지 구체적인 내용은 간과돼 있었다. 그래도 포항시사와 같은 자료가 없었더라면 필자가 경북·대구 근대미술사 연재가 어렸웠을것이라 짐작된다. 그러고 보면 기록이라는 작업은 모든 학문의 시작이요 문화예술사의 바탕이다. 기록이 있음으로 해서 다음 세대에게 전수되고 이를 계기로 새로운 문화예술이 재창출되고 살아있는 인문학이 성립된다.

1950년대부터 2009년 이전까지는 우리지역 화단은 ‘포항미술의 오디세이’였다. 비록, 미숙한 우리지역 화단이었지만, 60여년간의 영세한 전시공간에도 개인전, 단체전, 기획전시가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그동안 미술사라고 불릴 만큼 체계적인 기록은 없었고, 원로예술가들에게 들은 파편적인 기억과 선배들의 구술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전부이었다. 그래서 우리지역 미술사 수집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평소 틈나는 대로 기술하는 작업을 시도해 왔었지만 쉽지가 않았다. 지역작가들에게 불과 10년 전의 자료 수집의뢰를 해 보았으나 보관하고 있는 이가 드물었고, 또한 지나간 추억에 대한 회상은 강렬했으나 진작 기록에 있어서는 희미한 대답뿐이었다. 지난한 자료 수집과 기억에 의한 정확한 기술 작업이 엄두가 나지 않아서 몇 번이나 생각을 접었다가, 시작하기를 번복했다. 어렵게 생각하면 어렵고 쉽게 생각하면 쉽다는 생각에 우선은 30년간 큐레이터와 화가로서 생활해왔던 생각들의 파편을 기록하고 맞추고, 또한 발품을 팔면서 하는 데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기록해 보자는 의도로 지역미술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포항의 미술문화는 표면적으로는 깊이가 없는 빈곤한 미술사를 생각할 수 있다. 겸재 정선을 제외한 곽석규를 시발점으로 보면 근 100년사를 가진다. 우리지역 출신 작가들을 포함해 국내 유명작가가 우리지역 풍경을 작품으로 남긴 작품들이 미술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유명한데 진작 지역민들은 거의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었다. 하지만 이번 연재 글을 통해 거론된 근대작가들은 현대작가로서의 위상과 함께 교육자로서, 지역미술 발전을 위한 행정가로서의 걸어온 길이 국내에도 괄목한 업적으로 인해 우리지역도 자연스럽게 위상이 올라 갈 수 있는 충분한 자료가 되고 문화인적 자원으로서의 경쟁력은 매우 크다.

1900년대 활동했던 영일 출생인 곽석규, 포항출신 한국현대미술의 거장 장두건, 장석수들을 포함해, 김종영, 황술조, 손일봉, 서창환, 김우조, 이경희, 최종모, 조진수, 조희수 작가 등은 타 지역 출신으로 지역에 머물거나 우리지역을 사랑해 직·간접적으로 포항미술사에 영향을 크게 끼친 작가들이다. 또한 배원복, 권영호, 김두호 작가들을 초기 포항 화단 형성에 일조와 더불어 지역을 지키며 차세대를 길러온 포항 출신 지역작가들의 개인사를 게재해 좀 더 친근감을 엿 볼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일면은 그동안 한 번도 다루지 않았던 측면에서 미술문화를 좀 더 재미있는 문화로 다가가기 위해서 괜찮은 시도였다. 이들을 통해 포항만이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의 힘을 지역민들에게 알리면서 우리가 어디에서 살고, 어떠한 일이 있었고, 그들의 우수하고 인간적인 면을 부각해 우리 주변 문화를 알아가는 역할을 제공했다. 이번 연재 글을 통해 우리지역 문화적 인적 자원이 스토리텔링화 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고, 지역 전통예술을 살아 있는 학문으로 전승 되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박경숙 큐레이터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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