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코드 인증 막막"…비대면 시대 장애인 소외·고립 심화
<글 싣는 순서>
△프롤로그
△몸은 멀어도 마음은 가까이
△사랑이 꽃피는 착한 바이러스
△집콕 부작용…사회의 뿌리 흔들
△'보이지 않는 불편' 더 가혹한 세상
△요행·사행성 쫓는 불확실성 사회
△일상회복 ‘희망 꿈’은 계속 된다
“안 그래도 좁은 활동반경이 코로나19 때문에 더 좁아진 것 같아요”
2019년 12월 중국 우한시에서 처음 발병해 전 세계로 번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지구촌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백신이 개발됐지만 여전히 마스크 없이는 외출할 수 없고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약속의 틀 안에 온 가족이 모이지 못한 지도 어느덧 1년을 훌쩍 넘기고 있다.
장기화한 코로나19시대는 우리 사회에서 보다 더 취약한 장애인의 삶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출입명부 작성부터 시작해 무인자판기 등 비대면 시스템으로 바뀐 각종 변화된 사회 규칙을 활동보조인 없이 혼자 힘으로 해내기 힘들어서다.
시각장애인인 임 모(48) 씨는 코로나19 이후 외출이 두렵다. 지팡이를 챙겨 매일 걷던 길을 걷지만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승강기에서부터 고역이 시작된다. 평소 승강기 버튼에 새겨진 점자로 층수를 파악했지만 코로나19 이후 방역을 위해 두꺼운 항균 필름이 붙여지면서 점자를 알아볼 수 없어져서다.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도착하더라도 또 다른 난관이 이어진다. 전자출입명부(QR코드) 등록은 혼자 힘으로 엄두도 내지 못하고 출입명부 작성조차 주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비대면 시스템이면 관계자나 다른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임 씨는 “예전에는 혼자 힘으로 외출하기도 했지만 제 모습을 보고 종종 주변인들이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면 지금은 거리 두기 때문인지 도움을 주는 분들도 잘 없다”면서 “방역 수칙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꺼려지고 그렇다고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늘 도움도 요청할 수 없는 상황이라 웬만하면 집에 있거나 누군가와 동행할 수 있는 곳만 가려고 한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코로나19 확산 우려 탓으로 지난해부터 원격 수업이 이어지면서 발달장애학생을 비롯한 청각장애학생들도 수업에 이중고가 이어지고 있다. 발달장애가 있는 초등학생을 둔 한 학부모는 “화면을 통해 출석을 부르고 수업이 진행되지만 아이가 화면을 보기는커녕 자리에 앉아 있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수업시간마다 계속 옆에서 아이를 타이르며 수업을 하다 보니 아이가 수업을 받는지 내가 수업을 받는지 모르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청각장애를 가진 학생의 한 학부모는 “아이가 수어만 하거나 구화만 하거나 하는 경우가 있는데 온라인 수업이 이런 점에 대한 준비가 철저하지 않고 작은 화면으로 수어·구화를 모두 알아봐야 하니 아이가 금방 지쳐 보였다”며 “무엇보다 온라인 수업 속도를 따라가기도 쉽지 않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고용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장애인 고용법 조항에 따라 공공기관과 50인 이상 민간사업체에 3.1%의 장애인을 의무고용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기준 고용사업체의 장애인 고용률은 2.96%에 불과했고 장애인 경제활동 인구 역시 2019년에 비해 3.9% 감소한 것으로 추산되면서 코로나 19로 인한 장애인 실업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밖에도 서로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는 장애인 복지관이 코로나 19로 인해 휴관하거나 프로그램이 중단 또는 축소되면서 이들의 사회적 고립은 더욱 심화하는 상황이다.
장애인 단체를 비롯한 사회복지전문가들은 코로나 19 방역조치 과정에서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며 이들에 대한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경북지체장애인협회 탁호찬 사무처장은 “자가격리 명령을 받은 장애인이 활동보조인 지원을 받지 못해 2주간 버틴 사례와 발달장애인 가족이 함께 입원해 격리하겠다고 지원한 경우도 있다”며 “혼자서 자가격리가 불가능한 장애인 등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백신 접종이 시작됨에 따라 활동보조인의 지원을 받는 장애인이나 스스로 손을 씻거나 소독제를 사용할 수 없는 장애인, 손을 사용해 이동하는 장애인, 표면을 만져 정보를 습득하는 시각 장애인, 시설에 수용된 장애인 등을 감염병예방법상 취약계층에 포함 시켜 우선 백신 접종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