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박태준 선생의 가곡 '동무생각' 배경지
근대사 품은 챔니스·블레어·스위처·선교사 주택
드라마·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대표 관광 코스
지역 기독교 선교 발자취 남아 있는 '은혜정원'
대구 최초 서양 사과나무 자손목도 볼거리

상공에서 내려다 본 청라언덕 전경.

대구(大邱)는 대구(大丘), 달구(達丘), 달구벌(達句伐)로 불리는 등 지명 변천사만큼 상징해온 별칭이 많았다. 특히 많은 것을 품고 있는 이야기의 도시이기도 하다.

근대문화유산과 관련된 이야기가 도심 곳곳에 숨 쉬고 있고, 도심 외곽은 신숭겸 장군 유적지 등 역사문화 유적이 포위하듯 늘어서 있다. 긴 역사의 약령시 도시, 6·25 때의 피란도시, 1950년대 후반의 야당 도시, 그 이후의 여당 도시, 보수도시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교육도시, 문화도시, 미인 도시로도 불렸고 특화산업에 빗대어 능금 도시, 섬유 도시로도 불렸다.

대구의 역사성 속에 숨겨진 이야기는 각종 도시개발사업에 밀려 선대들의 삶이 녹아 있는 흔적이 하나둘씩 소리 없이 사라져 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유기체적 조직을 이루고 목표나 삶을 공유하면서 공존했던 마을 고유의 문화와 자산, 역사 등을 기록으로 남긴다. 선대들의 숨결을 되찾아 어제와 내일을 이은 ‘두 발로 투어-대구 이야기’를 시작한다.
 

1900년 초 제중원 당시 청라언덕 일대 전경. 계명대 동산의료원.

△‘찐’한 사랑 이야기의 배경

지난해 6월 24일 해리 해리스(64) 미국대사는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사투를 벌인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을 방문해 의료진을 격려했다. 대구가 낳은 작곡가 박태준 선생의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 ‘동무생각’ 노래비 앞으로 자리를 옮겨 의료진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을 담은 ‘덕분에 챌린지’ 캠페인에 동참하며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해리스 대사는 그렇게 대구의 몽마르트라 불리는 ‘청라(靑羅) 언덕’에서 색다른 추억을 쌓았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로 시작하는 한국인의 대표적 애창 가곡 박태준 선생의 ‘동무생각’도 ‘청라언덕’이 배경이다.

일제 강점기인 1911년부터 1910년까지 청라언덕 인근 계성학교에 다니던 박태준 선생이 신명여학교에 다니던 유인경을 보고 첫눈에 반해버린 곳이 청라언덕이다. 아담스 선교사가 1910년 10월 15일 세운 서문시장 주변 계성학교에서 올려다보면 선교사주택이 늘어서 있는데, 선교사주택을 휘감은 ‘푸른 담쟁이 덩쿨’ 때문에 ‘청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청라언덕에 자리 잡은 박태준 선생의 가곡 동무생각 노래비. 계명대 동산의료원.

내성적인 성격 탓에 끝내 고백하지 못하고 짝사랑으로 그친 박태준 선생의 러브스토리는 1922년 가곡으로 다시 태어났다. 22살 무렵 마산 창신학교 음악 교사로 근무하면서 애틋한 첫사랑의 이야기를 동료 교사 이은상에게 들려줬고, 막역한 친구 이은상은 그 자리에서 가사를 붙여 ‘동무생각’을 완성했다. 벗을 생각한다는 뜻의 ‘사우(思友)’라는 제목이 붙여졌던 ‘동무생각’이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노랫말 중에서 ‘백합’은 하얀 얼굴의 여학생 유인경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참고로 박태준은 이은상의 고종사촌 여동생 김봉열 여사를 아내로 맞았다.

우리나라 근대음악의 선구자인 박태준의 삶과 음악, 사랑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화 한 창작오페라 ‘청라언덕’이 2012년 대구국제오페라축제 개막작으로 무대에 올랐고, 대구문화재단이 기획은 음악 연극 ‘박태준과 청라언덕’이 동무생각 노래비 앞에서 4차례 공연되기도 했다.
 

대구시 유형문화재로서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청라언덕의 챔니스, 스위처, 블레어 선교사주택 전경. 박영제 기자.

△한국·대구를 사랑한 선교사들의 흔적

대구 도심 한복판의 별천지와 같은 청라언덕은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만 간직한 장소만은 아니다. 언덕에 산재한 붉은 벽돌의 선교사주택은 마치 동화책에나 나올 것 같지만, 우리의 근대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1906년에서 1901년 사이 지어진 이후 지금은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는 스위처, 블레어, 챔니스 주택이 그것인데, 대구에 기독교가 뿌리내릴 수 있게 한 선교의 전초기지이기도 하다. 대구시가 지정한 유형문화재이기도 하다.

스위처 선교사의 집은 기와지붕이라는 전통 한식과 양식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대구읍성 철거 때 가져온 돌로 기초를 다진 스위처 주택은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인 스위처 여사를 비롯해 계성학교 5대 교장인 헨더슨, 계명대 초대학장 켐벨이 살았다. 1층에는 커다란 성경과 다양한 성경·선교유물, 2층에는 3500년 전 모세 시대에 쓰였던 등잔과 이스라엘 현지에서 구매한 구약·신약 소품이 있다.
 

제중원 초대 원장을 지낸 존슨 선교사가 들여온 대구 최초의 서양 사과나무 2세목의 고사하기 전의 모습. 계명대 동산의료원.

의료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벽돌 쌓기의 2층 집인 챔니스 선교사의 집은 제중원으로 시작해 오늘의 동산의료원을 만드는 데 평생을 바쳐 헌신한 마펫 선교사가 살았는데, ‘대구는 나의 집’이라는 유언을 남길 만큼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대구를 그리워했다고 전해진다.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상아 청진기를 비롯해 일제강점기 때 사용한 미생물 배양기, 1950년대 동산병원이 최초로 도입한 인공호흡기 등의 다양한 의료기기기가 있다. 교육·역사박물관이 된 블레의 선교사의 집은 대구 3·1 운동의 발자취와 일제 만행에 관한 자료를 갖춘 3·1 운동 역사관이 있어서 유난히 학생들이 많이 찾고 있다.
 

대구·경북에 기독교를 전하러 왔다가 순교한 선교사들과 자녀 16명 묻혀있는 은혜정원. 박영제 기자.

청라언덕에 자리한 선교사주택은 건축사 측면에서도 중요한 유산으로 손꼽힌다. 미국인 선교사들의 주거양식과 당시 생활양식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다. 실제로 미국에서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대구에서 미국에서도 찾기 힘든 선조들의 건축양식을 접할 수 있다는 데 놀라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청라언덕에 산재한 선교사주택 덕분에 영화와 드라마 촬영이 줄기차게 이어졌다. 드라마 각시탈과 한반도, 사랑비, 영화 강적이 선교사주택을 배경으로 삼았고, 심지어는 예능프로그램 1박 2일도 대구의 대표적인 관광코스로 이곳을 다루기도 했다.

선교사주택 앞마당에는 태평양을 건너 머나먼 이국에 와서 배척과 박해를 무릅쓰고 혼힘을 다해 복음을 전파하고 인술을 베풀다가 삶을 마감한 선교사와 가족이 고이 잠든 ‘은혜정원’이 있다. 대구·경북에 기독교를 전하러 왔다가 순교한 선교사들과 자녀 16명 묻혀있는데, 20대 젊은 나이에 순교한 선교사를 비롯해 태어난 지 10일 만에 숨진 선교사의 갓난아기도 있다고 한다. 은혜정원은 서울의 양화진 외국인 묘지와 같은 순교 성지로서 대구·경북 기독교 선교의 발자취를 찾는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대구 최초의 사과나무

청라언덕에 자리한 동산의료원 100주년을 기념해 세운 100주년 기념 종탑과 스위처 주택 사이 정원에는 계명대 동산의료원의 전신이자 영남지역 최초로 서양 의술을 도입한 제중원의 초대 원장 존슨 선교사가 들여온 대구 최초의 서양 사과나무의 자손목이 있다.

대구를 사과의 고장으로 명성을 떨치게 한 시조목으로서 2010년 10월 19일 대구시 보호수 1호로 지정된 2세목은 안타깝게도 2018년 6월 고사했다. 2007년 2세목의 가지를 잘라 다른 사과 나무에 접붙이를 해 대구수목원 방촌묘포장에서 기른 3세목 3그루가 2013년 5월 31일부터 2세목 옆에서 자라고 있다.

배준수 기자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