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의 뜻 품고 걸었던 과거길부터 한국현대사 아픔까지 오롯이
△ 대구 영남대로 - 조선시대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반드시 통과.
조선시대 각 지역에서 서울로 가기 위한 주요 도로는 9개였다.
그중 영남 지방에서 서울로 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길이 영남대로다.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영남대로는 부산에서 시작해 대구-문경새재-충주-용인을 거쳐 서울로 도착하게 된다.
약 900리 길, 380㎞에 이르며 걸어서 갈 경우 14일이 걸린다.
대구는 영남대로의 한 구간으로 옛 대구읍성 앞밖걸이 대표적이다.
앞밖걸 주변은 서문시장과 남문시장이 만나 자유시장이 번창했다고 전해진다.
과거를 보기 위해 서울로 가는 유생들을 위해 흔히 볼수 없는 상품들이 판매됐고 숙박시설과 음식점도 자리 잡았다.
오늘로 치면 유동인구가 많은, 다른 지역에서도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로 상권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위치다.
다만 일제시대로 접어들면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1907년 대구읍성이 파괴되면서 큰길이 났고 1년 뒤 경상감염 객사도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약령시가 남성로로 옮겨지는 등 객사 앞 장터가 없어지고 앞밖걸은 골목 형태로 변화됐다.
약령시의 이동은 상권의 변화로 이어졌고 남성로 상인들이 몰려들었다.
앞밖걸은 영남대로의 기능보다 객주나 여각 등 약령시 배후기능으로 역할이 변경됐다.
약전골목에는 영남대로 과거길(한양가는 길)이정표가 설치 돼 역사의 현장임을 보여주고 있다.
도로를 따라 과거를 치기 위해 발길을 재촉하던 선비들의 모습이 벽화로 남아있다.
선비들의 준비물과 배웅하는 아내의 모습도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과거 급제 후 모든 것을 가진 듯 기쁜 모습으로 말에 올라탄 선비의 표정은 이동 거리만 14일이 걸리는 고단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밖에도 대구 영남대로 구간은 봉덕시장을 비롯해 염매시장, 약령시, 서문시장을 만날 수 있는 등 시장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이중 염매시장은 대구읍성 성벽이 사라지면서 형성돼 1984년 동아쇼핑이 들어서기 전까지 300여개의 점포가 자리잡고 있었다.
떡전골목은 피란민들이 염매시장 인근에서 떡 좌판을 하거나 행상을 하면서 형성된 뒤 상설화 되면서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후 동아쇼핑, 삼성금융프라자 등이 들어서면서 도심이 변화, 서서히 위축돼 지금은 종로 쪽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구의 중심 종로와 진골목 - 일제강점기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차츰 쇠퇴.
종로는 종을 쳐서 시간을 알리는 종루가 있던 거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대구읍성 남문인 영남제일관부터 조선시대 홍살문이 있던 지금의 만경관 앞 네거리를 지나 경상감영으로 이어진다.
도시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으나 1904년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일본인들이 진출하게 된다.
일본인들의 등장과 함께 요정 등 밤 문화를 이끄는 곳으로 변하면서 대구의 중심 통로 기능을 서서히 잃게 됐다.
화교들도 종로 상권을 장악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고 시대가 변화면서 서서히 상권도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후 방치되는 듯 했으나 도심 재창조를 통해 젊은 상인들이 몰리면서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
젊은 세대를 겨냥한 다양한 음식점이 속속 자리를 잡고 있으며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는 장으로 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종로에서 중앙로역 쪽으로 올라오다 보면 진골목을 만날 수 있다.
진골목은 1905년 대구읍성 지도에 표시돼 있으며 근대 초기 달성서씨 부자들이 사는 곳으로 유명했다.
지역 최고 부자였던 서병국을 비롯해 그의 형제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대기업 창업자와 유명 정치인의 대저택이 있던 자리는 현재 식당 등으로 변모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특히 1907년 2월 전국에서 국채보상운동에 여성들이 가장 먼저 참여한 곳이 대구며 시발점이 진골목이었다.
진골목에 살던 부인 7명은 패물을 내놓아 국채보상운동에 동참했고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를 결성한다.
‘경고 아 부인동포라’는 격문을 공포했으며 전국적으로 여성들의 참여를 이끌어 냈다.
이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국채보상운동 여성기념비’가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 설치됐다.
기념비에 부인들이 쓴 격문 전문이 담겨 있으며 7명의 부인의 성과 기부한 패물 내용이 적혀 있다.
290㎝의 쌍가락지 모양으로 만들어져 의미를 더했다.
△한국 현대사의 아픈 기억 - 당시의 생활을 생생히 들려주는 ‘마당 깊은 집’.
6.25전쟁 이후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김원일 작가의 ‘마당 깊은 집’의 배경이 된 곳도 대구 중구다.
김원일은 1988년 6.25전쟁 직후 피란민의 생활을 다룬 자서전인 소설을 발표했다.
아버지가 월북하면서 대구에 자리를 잡은 작가는 소설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 시선으로 당시의 사회상을 들려준다.
소설에는 종로·진골목·장관동 등이 등장해 더욱 친밀한 느낌을 주고 있다.
주인공 소년은 전쟁이 끝난 후 대구로 이사를 와 마당이 큰 집에 살게 된다.
마당은 크지만 다섯 가구가 세 들어 살던 집으로 지금의 기준으로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 많은 가구가 함께 살았다.
세입자들은 경기도에서 온 경기댁, 퇴역한 상이군인 가족, 양키시장에서 헌 군복을 파는 평양댁, 바깥채에서 풀빵을 파는 김천댁 등 다양한 사연을 가진 가족들이 존재한다.
세입자와 함께 여러 인물을 통해 당시 피난민들의 가난한 시절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주인공은 아버지가 없는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힘든 일상을 견디면서 성장한다.
가족들을 위해 신문 배달을 하면서 누볐던 골목이 아직 살아있다.
전쟁 중 행방불명 된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가 홀로 삯바느질로 힘들게 자식들을 키우는 등 현대사의 어려웠던 과거를 실감 나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의미를 되살려 마당깊은 집의 스토리와 등장인물, 피난민의 삶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문학 체험 전시공간이 들어섰다.
옛 남성동경로당 부지에 지상 1층, 대지 218.2㎡, 건축 80.58㎡의 규모로 한옥을 리모델링해 조성됐다.
전시관은 마당깊은 집 모형, 등장인물 소개, 50년대 풍경과 생활사진, 길남이네 방, 김원일 작가 기증품 아카이브, 작가의 방으로 구성돼 있다.

